엉가엄마의 새 남자.

by 권길주

방개와 윤택은 일주일에 두세 번 바다에 나가 고기를 잡았고, 그들은 대체로 만선으로 고기를 잡아오는 날이 점점 늘었다. 윤택의 과수원도 이제 갓 피어나는 복숭아, 사과꽃이 봉우리가 지면서 올해는 첫 열매를 맺어가기 시작했다ㆍ


그렇게 봄이 무르익을 무렵, 온양으로 간 엉가엄마는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기로 마음을 먹고 한 남자를 만났다. 자기를 마음에 없어하는 방개를 기다리기만 한다는 것이 그녀로서는 자신의 고독의 문제를 해결하기에는 너무 고통스러운 일로 느껴진 것이었다.


엉가엄마가 만나기로 한 남자는 그녀의 양장점 바로 앞에서 약국을 하는 약사였다. 그 남자는 결혼해서 얼마 안 되어 아내가 사고로 죽고 혼자 몇 년을 살았는데, 그동안 여자를 보면 마음에 전혀 동요가 없었는데, 나이가 자기보다 훨씬 많은 엉가엄마에게 연민의 정을 느꼈던 것이었다. 그녀를 보면 자신이 보호해줘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하니 엉가엄마는 그 남자가 자기랑 도저히 맞는 처지가 아니라서 생각도 해본 적이 없다고 손사래를 치고 서천으로 달려가 방개를 만나 자신의 진심을 털어놓은 것인데, 그녀는 방개가 자기에게 그리도 무덤덤히 대하는 것을 보고 마음에 상처를 받은 것이었다.


엉가엄마는 자기보다 일곱 살이나 어린 남자인 약사와 아무도 몰래 만남을 이루어가기 시작했다. 엉가엄마는 결혼하고 남편이 죽고 그러는 사이 한 번도 누가 자기 이름을 불러준 적이 없이 오로지 엉가엄마로만 이름을 불러줬는데, 그 약사 남자가 처음으로 자기의 본명인 "윤희"라는 이름을 불러줬다.


"내가 약국에 아침에 출근해서 저녁에 갈 때까지 얼마나 윤희 씨 양장점을 바라보게 되는지

윤희 씨는 잘 모르시지요. 저도 이런 마음은 처음이라서 처음엔 당신에 대한 얘기를 여기저기서 들으면서 당신의 정신에 아직도 문제가 있는지를 알아보고 싶기도 했는데, 가만히 보니 당신은 지금은 아주 정상적인 사람이에요. 그리고 윤희 씨는 참 멋지고 아름다우세요. 당신은 타고난 솜씨가 있는 사람이고요. 전에 남편이랑 당신의 가족들은 그런 당신의 천부적인 손재주를 몰라봤기 때문에 당신에게 고통을 준거지요."


엉가엄마는 젊은 약사 민석을 만나서 엉가엄마라는 이름 에서 윤희라는 본명으로 돌아왔다. 그 세월을 가만히 보니 엉가가 태어나고 십 년이 넘은 것이었다. 윤희는 민석을 만나고서야 자기가 왜 그렇게 정신이 돌았을 정도로 고통스러웠던 삶을 살게 되었는지 원인을 깨달아갔다.


"제가 바보 지요, 제가 처녀 적부터 그렇게 옷이나 뜨게질을 잘해서 온 동네가 다 소문이 날 정도로 뛰어난 솜씨가 있었는데, 엉가아버지가 저를 때리고 할 때 처음부터 집을 나와서 양장기술을 배우거나 옷가게에 취직을 해볼 생각을 해보질 못했어요. 얻어 맞고 살다보니 사람이 바보가 됐고 제가 너무 세상을 몰라서 그랬나봐요."


윤희와 민석은 서로 무척 빠르게 가까워지기 시작했다. 민석도 윤희도 초혼은 아니었지만, 나이 차이가 크기에 온양에서 데이트를 하지는 못했다. 누구라도 알면 두 사람이 장사를 하는데도 무척이나 지장이 클 것이고 민석의 집에서 가만히 둘리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엉가엄마는 자신의 가야 할 길보다는 다른 길을 택하였지만 그것이 방개를 향한 복수에 마음도 있었기에 민석이 자신보다는 어린 나이에 향방 없이 달려오는 것도 막지를 않았다.


"우리들의 연애의 끝은 어디일까요?"


윤희는 가끔씩 민석에게 자신들의 관계가 어디서 끝이 날 것인가를 물었다.


"저랑 결혼하길 원하세요 윤희 씨, "


"그건 아니지만, 이대로 계속 만나기만 한다면 우리는 어떤 관계가 되는 것인가 싶어서요."


윤희는 깊은 속내를 드러내며 날씬한 몸매를 자랑하듯 입고 온 살랑거리는 분홍색 원피스를 손으로 매만졌다. 그런 윤희의 허리를 감싸 안은 민석은 자기의 사랑의 끝을 미리 가늠하기 싫은지 더 이상 말을 하지 않고 원피스 위에 올려진 그녀의 손을 매만졌다. 윤희는 생각했다. 이대로 만나기만 하다가 정이 너무 들어버렸을 때 방개가 자기를 찾아오면 그때는 과감히 이 남자를 버리리라 생각을 했다.


' 이 사랑은 내가 사랑을 못해봤기에 신에 나에게 잠시 기회를 준 것뿐이지, 이 땅에서 이루어질 수 있는 사랑은 아니잖아, 누가 알아도 큰일이 날 것이고, 민석 씨 집에서 날 가만히 두겠어. 이건 내가 너무 고독해서 이렇게 이 남자에게 나의 외로움을 호소하는 거뿐이야.'


윤희는 양장점에서 옷을 만들면서도 민석이 맞은편 약국에 서서 자기를 뚫어져라 보고 있는 것을 보면 얼른 고개를 돌리면서 이 사랑이 길지 않게 끝나기를 바랐다.

그러나 윤희의 마음에도 점점 민석이 차지하고 들어오는 부분이 많아지는 것은 어쩔 수가 없었다. 그것은 봄밤에 별들이 무리를 지어 하얀 목련꽃사이에서 소곤소곤 거리며 향기와 빛을 뿜어내는 것처럼 사람의 마음에

밝고 아름다운 빛이 비추이는 것 같은 설렘이었다.


방개를 만나서 거지처럼 떠돌면서 딸과 함께 밥을 얻어먹고 살 때 방개를 의지하고 그에게 인간에 가장 푸근한 정을 듬뿍 받고 살았던 몇 년 동안의 세월에서는 느껴보지 못한 또 다른 향기였다. 윤희는 자신이 새로 태어난 것이 이번이 두 번째라는 생각이 자꾸만 민석을 만날 때마다 들었다.


그 처음은 방개를 만났을 때였고, 두 번째는 이 남자 민석을 만났을 때라는 생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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