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지된 섬에 봄이 왔다.

단편소설

by 권길주


섬은 고요했다.

유 교수에게도 섬의 끝자락에 피어오르는 아지랑이처럼 봄이 왔다.


유 교수가 준희의 체온을 느끼기 위해 아들의 등을 가만히 쓸어본다. 유 교수는 아들 준희의 휠체어를 바닷물이 좀 가까이 보이게 서서히 밀어준다.



19년 만에 만난 제자 재숙이 누워서만 사는 아들 준희를 남겨주고 세상을 떠났다. 처참할 것 같았는데, 아들 준희의 등을 어루만지며 그는 비로소 살맛이 났다. 그 이유는 재숙에게 속죄할 시간과 아들이 남아 있기 때문이었다.



어두움이 깃든 보랏빛 라일락 꽃나무에서 스무 살 청춘의 살 갓에서나 피어나는 달큼한 꽃향기가 진동했다. 그 향기의 은은함이란 한 번 맡으면 쉽게 발길이 떨어지지 않는 향기였다.



재숙은 어둠이 내린 교정을 보며 빠르게 화실을 나오기 위해 출입구에 있는 전등불을 껐다. 아무도 없는 화실이 공갈빵처럼 휑하니 부풀어 오른 것처럼 공허해 보였다.


화실의 불이 꺼지고 막 화실 문을 나서려는 그때 갑자기 유교수가 나타났다. 재숙은 순간 사람인지 환영인지 헷갈릴 정도로 놀랐다. 그러나 그의 얼굴은 환한 달빛처럼 수려한 얼굴이라서 재숙은 잠시 그에게 홀린 듯 서 있었다.



큰 키가 이젤 너머로 왠지 서양화에서나 나올 법한 인물화의 모델처럼 보이기도 했다. 잘생겼다라기보다는 흔한 얼굴이 아닌 뭔지 모를 이국적인 모습이 여학생들에게 인기를 한 몸에 받고 있는 미대 교수다웠다.



그는 약간의 미소를 지으며 재숙에게 어색한 손짓을 하듯이 손을 가볍게 들어 보였다. 그러나 그의 걸음은 서투르나 빠르게 화실 안을 들어왔고 불이 꺼진 화실은 갑자기 영화의 한 장면처럼 무섭고 괴기한 느낌이 들었다. 전등이 꺼진 화실이 문제였던 것이라고 재숙은 애써 생각하며 가슴이 두근거리는 것을 숨기려는 듯 가슴에 손을 모았다.


그리고 그녀는 어둠 속에서 본능적으로 남자를 본 것 때문이었는지 자신도 모르게 다시 화실 안으로 두어 걸음 뒷걸음질을 쳤다. 재숙의 하얀 운동화가 미끄러질 듯이 불안했지만, 그녀에게 유 교수는 무서운 존재는 아니었다. 그는 아주 선량한 미대 교수님이었고 미대생들이 한 번쯤 누구나 다 가까이에서 그의 조교라도 되고 싶은 열망에 싸여 있는 대상이었다.


유 교수의 빠른 걸음은 가죽 단화를 신고 가볍게 이젤 너머 재숙의 흰 운동화 앞에 섰다. 그리고 그는 또 특유의 착해 보이는 표정으로 화실 안을 조심스레 둘러보았다.



그의 몸짓은 갑자기 길 잃은 고양이가 먹이를 찾기 전에 낮게 몸을 수그린 듯이 왠지 어색하게 등이 구부러지기 시작했다. 그때 문밖에서는 늦봄이 가려는지 라일락은 소리 없이 벌써 꽃잎을 떨어뜨렸다.



아주 작고 엷은 꽃잎은 가여운 소녀의 소리 없이 흐르는 눈가의 아주 엷게 흐르는 눈물 줄기처럼 애처롭게 지기 시작했다. 그래도 라일락 꽃잎이 흩어진 자리에 달그림자가 슬며시 비추고 꽃이 진 자리에 피어 오른 나뭇잎 새가 밤공기를 싱싱하게 흔들었다.



유 교수는 불이 꺼진 화실의 창가로 가더니 어두운 유리창 너머 라일락꽃에 시선을 던지듯이 뒷짐을 지고 가만히 창가에 서 있었다. 그때까지 유 교수는 재숙이 있는지 없는지 관심도 없다는 듯이 멍하니 창가에 잠깐 서 있었다.



재숙은 그런 유 교수의 먼 시선에 안심을 하고 놀란 가슴을 살짝 붙잡고 강의실 전등을 다시 키려고 발을 옮기려는 때 유 교수가 고개를 돌리고 재숙에게 걸어와 그녀의 등 뒤에서 걸음을 멈췄다.



그 순간 이상하리만치 재숙은 등골이 서늘해졌다.

무서웠다. 갑자기 모든 공기가 땅 속 저 깊은 곳으로 들어가 버리고 화실 안에는 산소라고는 한 방울도 없는 듯 숨이 막히고 가슴이 콱하며 막혀왔다. 재숙은 자신의 인생 전체가 다시는 그 어두운 동굴을 빠져나갈 수 없을 것 같은 무서운 공포까지 들었다.



그때 재숙의 눈에 띈 것은 화실 출입구에 전등 스위치였다. 저것만 누르면 이 무거운 공기를 벗어나 인생의 환한 등불이 다시 태양처럼 빛나며 자신을 비춰줄 것만 같았다.



재숙은 이제 스무 살이었다. 대학 2학년. 유 교수의 강의를 이번 학기 처음 신청했지만, 복도에서 유 교수를 자주 마주친 적은 있었다. 그뿐이었다. 그런데 그는 몇 차례 재숙에게 심부름을 시키곤 했다. 주로 화실에 자기 그림을 정돈해 달라는 부탁이었다. 그의 그림은 교정에 피어있는 라일락꽃과 자신처럼 젊고 예쁜 여자들을 그린 그림이 아주 많았다.


라일락꽃을 덮고 있는 여대생들의 나체도 몇 편 있었는데, 그런 그림들은 이상하게 탐닉을 그리워하나 절대 탐닉을 하지 않는 절제가 숨겨진 신부님의 속내처럼 거룩한 빛까지 느껴져서 재숙은 도대체 이런 그림은 어디서 나오는 걸까 하며 속으로 감탄을 한 적도 있었다.



더구나 유 교수의 그런 그림들을 다른 친구들은 전혀 볼 기회가 없는데 자신은 교수님의 심부름으로 교수님의 화실을 정리하면서 그런 그림들을 볼 기회가 있다는 것이 큰 기쁨이었고 오만한 마음도 좀 들곤 했다.



그런 유 교수가 갑자기 전혀 다른 사람처럼 그녀를 바라보는 것이었다. 한 번도 스승과 제자의 자리에 있지 않았던 남녀의 느낌이 드는 눈빛을 보내고 있었던 것이다. 어쩌면 오랫동안 짝사랑한 여자 친구에게 구애를 하는 듯 약간은 능청맞은 남자친구 같은 느낌마저 들었다.



그때 밖에서 라일락 꽃가지가 부러지는 소리를 재숙은 들었다. 누가 이 밤에 라일락 꽃가지를 흔들어서 그 가지를 부러뜨린 단 말인가. 화가를 꿈꾸며 고등학교 내내 화실에서 밤늦도록 미대에 들어오기 위해 꿈의 날개를 폈던 시간들이 유리조각처럼 산산이 부서지는 소리가 마음속 깊은 곳에서 들려오며 자신은 어쩌면 다시는 그림을 그릴 수 없을 거라는 생각마저 그 순간 스쳐갔다.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이 늦은 시간에 교수와 학생의 신분으로 두 남녀가 화실에서 마주친 것만으로도 그녀에게는 본능적인 이상한 생각들이 오버랩되기 시작했다.


마네나 모네의 그림들.... 렘브란트의 그림들을 화첩에 흉내 내며 수없이 물감을 뒤집어쓴 채 밤을 하얗게 밝히던 화실에서의 시간들이 모조리 불이 다 꺼진 밤거리처럼 황량하게 자신 앞에서 그려지는 순간이었다. 꿈이 저 라일락 나무 가지처럼 부러지는 소리인가.... 그녀는 순간 괴로웠다. 빨리 이 자리를 피하고 싶었다.



자신이 평소에 좋아하고 존경하는 유 교수였지만, 밤이 깊어가는 화실에 둘만 있는 것은 평소와 달랐다.



자신은 분명 서울에서 이렇게 우수한 대학을 미대를 졸업하는 것으로 그치지 않고 서른 살이 되기 전에 꿈꾸던 대로 프랑스로 유학을 갈 것이고 그리고 서른다섯쯤이면 세계적인 신인 작가가 돼서 그룹전도 하고 마흔쯤에서 귀국해서 화려하게 언론의 찬사를 받으며 귀국 전시회도 열 것이라는 환상적인 꿈을 얼마나 꾸었던가,


그것이 스무 살 미대생 재숙의 누구에게나 자랑하고픈 자신의 청사진이었다.


재숙은 그날 밤 그 화실에서 서커스에서 곡예를 하던 곡예사가 천장에서 떨어진 것을 본 어린아이처럼 유 교수의 몸이 곡예사처럼 자신을 향해 높은 천장에서 떨어진 듯이 무겁고 죽을 것 같았던 순간 때문에 숨을 쉴 수가 없었다.



전기 줄이 끊어져 곡예사가 천장에서 떨어진 것처럼 유 교수가 그녀를 성폭행하던 그 순간에 세상의 모든 전기 줄이 그녀에게서 다 끊어져 버린 것이다. 세상의 모든 빛이 그녀에게서 다 꺼져 버린 상태가 된 것이다. 이전에 그녀는 온 데 간 데가 없어진 것만 같았다. 합격자 발표를 하던 날 교문 앞에 대자보가 붙어 있던 자리,

한 재숙.



장학생이란 이름까지 자랑스럽게 붙어 있던 00 미대 2학년 스무 살 한재숙의 인생은 사라진 것이다.

그날 이후, 재숙은 임신을 했다. 사실을 알게 된 것은 임신한 지 3개월째가 되어서였다. 여름 방학이었는데 더운 날씨보다 온몸이 더 나른하기만 했다. 두려움과 불안이 찾아오면 그녀는 무조건 냉장고를 뒤져 마구 먹어댔다. 짧은 여름방학이 다 지나가는 것이 두려웠다.



2학기 등록을 하자니 그녀는 도저히 용기가 나지 않았다. 분명 임심 한 채로 2학기를 다니면 친구나 교수님들에게 자신의 모습이 들킬 것 같았고, 무엇보다 유 교수를 만나고 싶지가 않았다.



그가 자신이 임신한 것을 알면 자기를 가만히 둘 것 같지가 않을 거라는 막연한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자신이 임신한 사실을 알게 될 부모님 보다는 유 교수가 더 무서웠던 것이다. 그는 냉혹하게 아이를 지우라고 할 것 같았고, 부모님은 혹시라도 자기 말을 들어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었다.



재숙은 불안한 날들을 견딜 수가 없어서 부모님께 우선 대학을 휴학한다고 했다.



“왜 대학을 휴학하는데, 집에 돈도 있고, 엄마 약국도 잘 되고 아버지 사업도 잘 되어 가는데 굳이 네가 휴학하는 이유는 뭐지?”

엄마는 예상하지 않은 딸의 휴학에 대해 조근조근 따져 물으셨다.



“엄마 나 남해안에 가서 바다를 좀 그리고 싶어요. 거기 가면 지금 학교 다니면서 그리는 그림보다는 더 좋은 바다 그림이 나올 거 같아요.”



“그림도 대학에서 훌륭한 미대 교수들에게 배워야 진짜 화가가 되는 거지

바다가 있다고 좋은 그림이 나오겠니? 너 엄마가 내 약국 물려줄 테니 약대 가라고 하니까 기어이 그림그린 다고 미대 가더니 지금 그림이 너한테 힘든 거 아니니 혹시?”



“아니야 엄마, 난 그림이 너무 좋고, 화가가 너무 되고 싶어요. 그런데 지금은 내가 그리고 싶은 그림을 그리고 싶어. 배우는 건 나중에 해도 되잖아. 난 내 그림에 충실하고 싶어요.”



여름의 끝 무렵 엄마 그리고 아버지는 긴 싸움을 했고, 재숙은 부모님을 설득하는데 결국 이겼다. 그러나 그 싸움은 그녀가 가장 고통스러운 삶을 선택하는 싸움이었지, 결코 이긴 싸움이 아니었다.



그녀는 임신한 사실을 숨기고 남해로 떠났다. 가벼운 화구만 들고 남해의 바닷가를 돌면서 숨어서 아이를 낳을 곳을 찾아다녔다. 그리고 엄마와 아버지에게는 적당한 핑계를 대기 시작했다. 한 곳에 정착하지 않고 살아야 그분들이 오지 않을 것 같아서 그녀는 이곳저곳을 이사하면서 살기로 작정한 것이었다.



그러나 그런 거짓말을 임신 8개월이 되었을 때 다 들통이 났고, 그 해 겨울 그녀는 치열한 진통을 치러야만 했다.



재숙이 찾은 남해의 바닷가 원룸에 주소를 엄마가 알아내고야 만 것이었다. 그녀는 임신 8개월의 배를 내밀고 그림을 그리다 말고 엄마의 예고치 않은 방문을 받게 되었다.



엄마는 재숙의 모습을 보고 경악을 금치 못했다.


“누구야 애 아빠는?”



엄마의 눈빛에서 살기가 나왔다. 태어나서 처음 보는 엄마의 눈빛이었고, 무섭도록 떨리는 엄마의 목소리였다.



태산보다 무거운 것이 진실을 벗겨내는 진실한 한마디라는 것을 그녀는 그때 처음 알게 되었다.



“우리 대학에 미대 유 교수님이라고 있어. 그 교수님한테 이렇게 됐어.”



“뭐, 그럼 너 교수랑 연애한 거야?”



“아니, 난 그 사람 속으로만 좋아했지, 연애한 거 아니야”



“그럼 어떻게 애가 생겼어. 연애한 거 아니면”

“그게..... 흑흑흑 ”



재숙의 가슴 저 밑바닥에서 8개월 동안 감추어 두었던 두려움과 고통이 한꺼번에 눈물로 쏟아지는지 끝도 없이 그녀의 볼을 타고 뜨거운 눈물이 흘렀다.



재숙의 어머니는 단번에 딸이 성폭행당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러자 그녀의 입에서 갑자기 원룸 전체를 날려버릴 듯한 고함이 터져 나왔다.



“유교수. 이 개새끼 내가 죽어버릴 거야”



엄마의 날카로운 그 비명 소리는 남해 바다의 푸르고 깊은 바닷속에 까지 도달할 듯 깊고 무겁고 아팠다. 재숙의 어머니 임 약사는 무조건 재숙의 팔을 잡고 원룸을 나섰다.



그리고 미친 듯이 운전대를 잡고 그녀를 태우고 달렸다. 그리고 도착한 곳은 다름 아닌 재숙이 다니던 대학의 미대 앞이었다.



재숙의 엄마는 재숙을 차에 남겨 놓고 대학으로 뛰어 들어갔다. 미대 강의실에서 강의를 하던 유 교수를 멱살을 잡고 나온 건 약대를 졸업한 약사인 재숙의 엄마가 할 행동이 전혀 아니었지만, 그녀는 남해에서 이미 이성을 잃어버렸었다.



재숙의 어머니와 아버지는 대학교수 한 사람의 목을 치는 일에 아주 빠르고 순조롭게 행동을 했다. 그리고 재숙의 아이를 유산시키려고 백방으로 산부인과를 알아보았다. 외출이 금지된 상태로 그녀는 산부인과를 이곳저곳으로 끌려 다녀야 했다. 그러나 임신 8개월의 임산부를 받아주는 산부인과는 없었다.



재숙은 날마다 아이의 태동소리를 들으며 신께 간절히 기도했다. 아이를 죽이지는 말아 달라고. 혼자서 잘 키울 거라고. 그리고 부모님 손을 벗어나게 해달라고.


재숙은 잠긴 방 안에서 아이를 임신한 몸으로 그림을 그렸다. 뭉개진 보라색 라일락꽃만 그리던 여름과 가을의 하얀 밤들이 수없이 쏟아지는 별무리가 되어 캄캄한 밤에 길을 비추는 것을 그때 보았다.



자신의 화첩에 수백 장의 뭉개진 보랏빛 덩어리는 결국 그녀에게 한 생명으로 피어나는 꽃이었다. 꿈조차 꾸지 않았던 스무 살의 엄마가 되는 생명이 잉태된 잉여의 시간들이었다. 유 교수에게서 한 통의 전화를 받은 것은 출산하기 며칠을 앞두고였다.



“미안해, 너에 대한 나의 생각이 너무 짧았구나. 내가 양심이 너무 없는 사람이었어. 죄를 지은 대가를 치르는 중이니 아이를 낳으면 나한테 와도 돼. 나 이혼했어. 난 남해로 갈 거야. 네가 아이를 지키면서 혼자 있던 곳에 가보고 싶어서야. 만약에 네가 나를 찾을 때까지 내가 살아있다면 그곳에서 너를 기다릴게. 아이를 너 혼자서는 키우기가 힘들지도 모르잖아.



재숙아 정말 내가 할 말이 없는 선생이구나. 이제는 나를 교수라고는 부르지 마, 다시 만나더라도.”



유 교수는 대학에서 제명을 당했고, 아내에게 이혼도 당했다. 그는 재숙에게 전화를 끊고 지난 일 년 동안 자신의 모든 감정이 한꺼번에 뒤채이듯 엉클어지는 것을 간신히 막으며 조용히 남해 바닷가로 가는 기차표를 끊었다.



서울을 떠나려니 갑자기 모든 것이 힘이 들었다. 43년 동안 쌓아온 탑이 와르르하고 무너지는 소리가 한꺼번에 들렸다.


명문대 교수로 화가로 그는 유명세를 내야 할 시기에 신문에 오명을 남기고 대학과 화단의 모든 것에서 자신의 이름을 지워야만 했다. 제자를 성폭행하고 임신시킨 폐륜 교수로, 그리고 화가로.

그러나 그도 할 말은 남아 있었다.



자신의 양심과 자신의 내면에 소리로만 자신은 스스로 할 말이 있었다. 유 교수는 어릴 때부터 별명이 미술 천재였다.



그는 벙어리 외할머니 손에서 자랐다. 아빠도 엄마도 하루아침에 교통사고로 죽자, 외손자를 데려온 벙어리 외할머니는 산골에서 나물을 캐고 더덕을 캐고 다 찌그러져 가는 외딴집 뜰에 닭도 키우고, 양도 키우고, 외양간에 소도 한 마리 키우면서 유 교수를 키웠다.



유 교수는 말도 못 하는 벙어리 외할머니 대신 동물들과 함께 대화를 하고 그들이 하는 모든 동작들을 온종일 구겨진 신문지 위에 연필로 그림을 그렸다.



그런 유 교수의 재능은 초등학교 때부터 전국대회에 매번 1등을 하면서 학교 선생님들로부터 그 재능이 뻗어나갔다. 그리고 그는 고등학교 시절 미술반 선생님의 도움으로 서울에 명문대 미대를 장학생으로 들어갈 만큼 뛰어난 미술천재로 시골에서 소문이 자자했었고, 그는 명문대 미대를 나와서는 바로 대학에 전임 교수가 되는데 많은 시간이 필요하지 않을 만큼 화단에 뛰어난 역량을 가진 젊은 작가로 교수로 일찍 발탁이 될 정도로 그의 그림은 큰 조명을 받았다.



그런 유 교수에게는 아내, 미진이 있었고 그녀는 서울에서 꽤 큰 병원장의 딸이었다.



세련된 몸짓과 고운 목소리가 그녀의 아름다운 미모에 걸맞은 옷 같았지만, 그 옷이 유 교수에게는 점점 사계절 내내 입어야 하는 겨울 코트처럼 무거웠다. 참 이해할 수 없는 노릇이었다.


모든 것이 부유하고 안정되었고 자신은 이제 거침없이 살아도 되는 환경이었는데, 그는 자꾸만 벙어리였던 외할머니와 살던 산골 소년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미진이 먼저 그의 부자유함을 알아차리고 다른 남자를 만나기 시작했다. 그는 그런 아내가 속으로 고맙다는 마음이 들 정도로 그 모든 일상을 50이 되기 전에 정리하기로 마음을 먹었는데, 그때 그의 눈에 들어온 여자는 대학 2학년 유 교수의 서양화 수업을 듣게 된 어린 제자 재숙이었다. 재숙에게서 이상하게 어릴 때 자신이 신문지에 그렸던 하얀 양의 모습이 보였다.



약간 꼬불거리는 하얀 털을 가진 양의 등을 쓰다듬어 주면 눈이 잘 보이지 않는다는 양은 순하게 자기를 따라 풀밭을 잘도 뛰어놀았다. 유 교수는 어릴 때 그 양하고 뒷동산을 뛰어다니면서 놀던 때가 제일 행복했었다.



그런데 이상하게 재숙에게서 그런 어린 날의 추억이 떠오르면서 재숙과 함께 그 뒷동산에 가서 함께 마음껏 소리치고 놀고 싶은 상상이 떠오른 것은 그녀를 처음 봤을 때 밝은 달밤에 뿜어져 나오는 환한 빛의 둘레처럼 은은하게 빛이 나는 검은 눈빛과 하얀 피부 때문이었던 것 같다.



재숙은 유난히 피부가 희고 맑아서 투명한 유리병처럼 깨끗해 보이는 여대생이었다. 그 유리병에는 산골에서 피어난 이름 모를 꽃을 꽂아놓아야 어울릴 것만 같이 청초한 아름다움이 재숙의 전체적인 모습이었다.


서울의 대학에서는 약간은 보기 드문 청초한 느낌의 그 여자 아이가 자꾸만 유 교수의 눈에는 띄어갔다. 그러나 그는 그 청초한 꽃을 한꺼번에 꺾을 마음이나 다치게 할 마음은 사실 전혀 없었다.



잘못한 것은 그날 일찍 강의를 마치고 온종일 마셨던 술이었다. 화가들과 종일 술을 마시고 화실을 둘러보러 늦은 밤 자신의 화실로 간 것이 잘못이었다. 그리고 그날 재숙에게 자신의 화실에서 그림을 정리해 달라고 부탁했던 것을 잊었던 것이 더 큰 실수였던 것이다.


인간에게 참을 수 없는 분노를 일으키는 것 중에 하나는 자식이 남자에게 성폭행을 당했을 때라는 것을 유교수는 재숙의 아버지에게서 배웠다.



재숙의 아버지는 유 교수를 죽이겠다고 학교 앞에 몇 날 며칠을 낫을 들고 서 있었다. 농기구로 그것도 시골에서 어쩌다 쓰이는 낫을 들고 재숙의 아버지가 나타났을 때 그는 차라리 죽는 편을 선택하고 싶은 마음도 들었다.


학교를 그만두고 이혼을 하고 유 교수는 배를 타고 남해의 이름 모를 섬으로 들어갔다. 그의 배낭에는 그때 농약만 한 병이 들어 있었다.



별이 까만 밤하늘에 수 없이 노란빛의 잔치로 환희와 웃음을 띠고 있는 이름 모를 섬의 한 구석에서 그는 밤새 혼자서 파도소리에 섞인 소주를 마셨다.



안주 하나 없는 소주를 세병쯤 마시자 그는 농약을 마실 용기가 생겼고, 그는 농약병을 따면서 하늘에 별똥별이 바다로 빠지는 것을 보았다. 그 별똥별에서 그는 오랜만에 벙어리 외할머니와 함께 저녁이면 언덕에 매어 놓았던 양의 궁둥이를 막대기로 치면서 집으로 돌아올 때 느꼈던 아궁이 속 불같은 따뜻한 온기와 행복을 느꼈다.


죽음의 순간에 이런 행복을 느낀 다는 것이 너무 이상할 정도로 오랜만에 느끼는 행복한 감정이 온몸에 취기처럼 퍼졌다.



그리고 그는 며칠 만에 어느 교회의 사택에서 눈을 떴다. 그 섬의 하나밖에 없는 교회에 사택이었다. 노 목사님 부부가 성도 몇을 놓고 목회를 하고 계시는 교회였는데, 그날 노 목사님 부부는 새벽 예배를 드리고 일찍이 바닷가를 산책하러 나왔다가 유 교수가 죽어있는 것 같은 모습을 발견했다고 한다.



유 교수는 처음에 발견되었을 때는 숨도 거의 쉬질 않았다고 한다. 그래서 목사님이 유 교수의 코를 빨고, 온갖 인공호흡법을 다하여 삼십 분 정도 되니 미세한 심장 박동이 시작되었고, 그가 온전히 깨어난 것은 노 목사님 사택에 업고 와서 따듯한 방에 눕혀놓고 삼일 동안 두 부부가 정성을 다해 기도하고, 몇 명 안 되는 온 성도가 새벽마다 기도한 덕분이라고 했다.



유 교수는 처음에 자신이 살아 있는 모습을 보고 신에게 불평을 가득 실어 노 목사님 부부에게 원망의 말을 쏟아냈다.



“왜 신께 묻지도 않고 사람을 살리셨습니까? 저는 이곳에 죽으러 온 사람인데 신도 실수 하신 거고, 목사님도 실수하신 겁니다.”



그런 말에도 노 목사님 부부는 빙그레 웃으며 안도의 한숨만 내쉬었다. 그리고 두 부부는 지극 정성으로 유 교수를 간호했다. 몇 명 안 되는 성도들도 유 교수에게 먹이라며 전복이며 미역을 따 가지고 왔고, 몸을 회복시키라고 파닥파닥 뛰는 생선들과 금방 잡아온 낙지나 멍게 해삼들을 들고 오느라 다들 바닷물 속을 드나들기 바빴다.


그렇게 남해의 이름도 알지 못한 섬에서 유 교수는 자신의 생명을 돕고 그 기쁨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을 새롭게 만나면서 그해 여름을 보내고 가을을 보내고 겨울을 보냈다.



그리고 그는 재숙이 아이를 낳았을 텐데 어떻게 살고 있을지 가끔씩 걱정과 근심으로 때로는 어떤 희망들이 싹이 나는 것들이 이상해서 먼바다를 보며 뱃고동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유 교수에 대해 노 목사님 부부도 몇 명의 교인들도 또 부둣가나 교회를 드나드는 그 섬에 사는 사람들이나 이웃에 사는 섬사람들도 이런저런 말을 하지도 않았고, 이상한 억측이나 시비를 거는 사람도 없었다.



그런 배경에는 노 목사님 부부의 영향이 큰 것 같았다. 노 목사님 부부는 이 섬에서 목회를 하러 오신 지 40년도 넘었고, 그들은 섬사람들의 등대지기 같은 분들이었다. 두 분은 먼바다를 돌다 길을 잃은 뱃사공들에게 등대처럼 이런저런 삶의 진자리 마른자리를 살펴주는 참 목자들이었다.



그래서 온 섬사람들은 그 노 목사님 부부를 사랑하고 신뢰하는 하는 분들이 거의 대다수였다. 유 교수는 자신의 신분을 전혀 밝히지 않고, 그들과 함께 바닷가에서 고기도 잡고 농사일도 거들고 교회의 비가 새는 지붕도 고치면서 저물녘이면 바닷가에서 노을을 보면서 혼자 오래도록 서 있었다.



그 시간만큼은 누구에게도 방해를 받고 싶지가 않아서 그는 늘 혼자 그렇게 노을이 지는 저녁 바다에서 오랜 시간을 해가 넘어가는 풍경을 보며 노을이 바닷속으로 완전히 들어가고 나면 캄캄한 바다를 걸어 노 목사님 부부가 사는 사택의 구석진 방으로 돌아왔다.



늙어서 등이 구부러진 사모님은 유 교수가 돌아오면 먹을 수 있게 교회 식당에 간소한 저녁상을 봐놓고 교회 예배실에서 목사님과 함께 두 분은 밤이 늦도록 기도를 하시고는 했다.


유 교수는 신의 가호나 신의 뜻을 전혀 알지 못하고 살았지만, 점점 교회의 찬송가에 가슴이 울렁이는 것 같고, 어느 새벽에는 자신의 방에서 몇 명 안 되는 교인들이 부르는 찬송가 소리가 벽을 타고 흘러 들어오면 하염없이 눈물을 흘린 적도 있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이 지은 죄에 대한 회개는 할 수가 없었고, 다만 재숙이 낳은 자신의 아이가 어떻게 되었을지 걱정이 된 적은 가끔씩 있었다.



그리고 재숙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던 정도였지, 그 이상은 생각을 할 수가 없는 괴로움이 자신의 폐부에 날마다 밀물과 썰물로 드나들었다. 그것은 괴로움이라는 밀물이었고, 고통이라는 썰물이었다.



그래서 그는 저녁노을이 지는 바닷가에 가 그 밀물과 썰물이 하나의 붉디붉은 노을로 퍼져 더 이상은 그것들이 보이지 않는 캄캄한 밤이 되면 그 하루의 고통도 괴로움도 끝이 나는 것만 같았다. 그리고 이런 고통과 괴로움은 자신의 삶이 다시 시작된 이 섬에서 언제 끝이 날지 전혀 알 수가 없이 하루를 살뿐이었다.



그러다 그는 어느 날부터 서서히 그 저녁노을 속에서 다시 그림을 그리고 싶다고 생각했고, 그 해가 다 지나고 새 봄이 왔을 때 그는 노 목사님의 준 노트 한 권을 들고 바닷가로 나가서 스케치를 시작했다.


유 교수가 다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던 봄, 재숙은 준희를 낳고 산부인과에서 몸을 풀고 있었다. 뜨거운 미역국을 먹으며 준희라고 아들의 이름을 지어줬다. 유준규 교수의 이름에서 ‘준’을 따왔다.



나중에 준희가 크면 반드시 아버지를 만나게 될 거라고 재숙은 믿고 있었던 것이다. 그가 어떤 모습으로 살았더라도 죽지만 않았다면 반드시 한 번은 아들을 만나러 올 것이라고 믿었던 것이다.



그런 준희가 식물인간이 되어 누운 지 삼 년 째다. 그런데 오늘 그 아들이 시를 써서 라디오 프로그램에 보냈는데, 아나운서가 아들의 시를 낭송했다니 재숙은 기뻤다.



그리고 그녀는 아들의 시가 참 좋았다.‘봄이 오는 소리’라는 제목도 너무 좋았고, 시의 분위나 시어들이 살아 있는 봄의 온갖 생명들 같아서 재숙은 오랜만에 가슴이 뿌듯해졌다.



준희는 자신의 시 쓰는 노트를 엄마에게 보여주는 걸 부끄러워했다. 그런데 어디서 그런 용기가 생겨서 라디오 프로그램에 자신의 시를 보냈는지 놀랬다.

유 교수가 요즘 그리는 그림은 양 궁둥이를 막대기로 치면서 산길을 걸어 내려오는 산골 소년의 그림이었다. 파릇한 풀들이 길가에 잡초처럼 누워 있었고, 양은 풀을 마음껏 먹었는지 평온한 얼굴을 했다.



그러나 그 양에 궁둥이를 치면서 오는 산골 소년의 얼굴만은 불만이 깃든 표정이 분명한 것이 양치는 일이 고되고 외로워 보이는 그림이었다. 양치는 소년은 자신의 어릴 적 모습이었다.



가난한 산골 소년, 벙어리 외할머니와 살던 그 고되고 슬픈 어린 시절이 불만에 가득 찬 소년의 얼굴로 그려진 것이다. 진실한 자신이 내면을 그대로 그림에 드러냈다.



그것으로 그는 어릴 때 자신을 투영해 보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그는 마지막 수정 작업을 하기 위해 판자로 만든 어설픈 이젤 앞에서 붓을 이리저리 움직였다. 그가 그림을 다시 그리기 시작한 지도 벌써 15년이 넘었다. 그는 교회 창고에 그림을 수 없이 쌓아만 놨지 팔거나 전시회를 하거나 할 생각은 전혀 하지 않았다.



그것은 그 창고에서 진주가 되기 전의 조개처럼 입을 다물고 그의 그림을 감추고 있을 뿐이었다.


다만, 60세를 바라보는 유 교수의 머리칼은 점점 하얗게 변해서 80이 넘은 노 목사님의 흰 머리카락의 절반 정도는 닮아 있었다. 노 목사님은 성도가 열 명도 되지 않는 이 섬에 새로운 목회자가 아무도 오지 않기 때문에 아직도 교회와 사택을 지키고 계셨다.



그러나 노 목사님이 젊어서 이곳에 부임하고 처음 한 십 년 동안은 새로운 목사님이 오시기를 간절히 기도했지만, 그 후에 50년이 넘도록 한 번도 새로운 목사님이 오질 않았기에 그분은 이제 새 목회자를 놓고 기도는 하지 않는다고 했다.



낡은 사택과 몇 명 안 되는 성도들 때문인지 면접을 본 새 목사님들은 다시는 섬에 오질 않았기 때문이다.



그림을 그리던 유 교수는 옆에 두었던 라디오에 볼륨을 높였다. 노 목사님이 교회 창고에서 그림을 그리는 그에게 심심할 때 들으라면서 갖다 준 오래된 구식 라디오였다.


그렇지만 성능만큼은 좋아서 전파만 방해받지 않으면 밤새도록 이 방송 저 방송 다이얼을 돌리면서 음악을 들을 수가 있어서 아주 좋았다.



주로 세미클래식이 나오는 한 음악프로그램에 주파수를 맞추고 그는 그림을 그렸다. 가볍지 않으면서도 부드러운 아나운서의 목소리가 전파를 타고 흘러나왔다.



오늘도 준희라는 중학생이 또 시를 보내왔는데요,

제가 한번 낭송해 드리겠습니다.

시가 아름답게 흘러나왔고, 아나운서는 준희라는 애청자의 사연을 짧게 전했다.

네 준희 학생은 중학교 1학년 때 학원 친구들에게 폭행을 당하고 온몸이 사지가 마비되는 병이 생겼다고 합니다.



그리고 지금은 침대에서 누워만 산지 3년이 지났고, 요즘은 시를 쓰면서 시간을 보내고 있다고 하지요. 준희 학생에게 청취자 여러분, 마음의 격려에 박수를 보내 주시길 바랍니다.



그런데 최근에는 자기를 때린 친구 중 한 명이 학원 건물에서 뛰어내려 자살을 시도했었다는 소식을 우연히 옛 친구들에서 들었다고 하네요. 준희의 마음이 너무 아플 것 같습니다.


화가를 하시다가 준희의 치료비를 벌기 위해 오늘도 미술 학원에서 열심히 아이들을 가르치고 계시다는 준희의 어머님께도 힘과 용기를 드리고 싶습니다.


유 교수는 순간 붓질을 하던 손을 캔버스에서 내려놨다. 무엇인지 커다란 망치가 자신의 가슴을 쿵쿵 치는 것처럼 아팠다.



재숙이 낳은 아이 분명 지금 컸다면 16살이 되었으리라는 분명한 나이를 그는 하루도 잊은 적이 없었다. 그런데 자신의 아이와 같은 나이에 사춘기 소년이 식물인간으로 살고 있다고 하고, 그것도 그를 폭행한 친구는 또 학원 건물에서 뛰어내렸다고 하는 충격적인 사연 때문인지 그에 엄마가 미술학원 원장이라서 그런 건지 모든 것이 종합선물 세트 같이 자신에게 갑자기 배달되어 온 것 같지만, 뜯어서 그 선물을 확인하기엔 어쩐지 너무나 두려운 선물 같은 느낌이었다.



그러나 유 교수는 이상하게 준희라는 중학생, 시를 써서 방송국에 보냈다는 청취자, 그 아이가 자신의 아들일지 모른다는 예감이 강하게 들었다. 이것이 예감이라면 기적인가, 아니면 엄청난 불행인가? 유 교수는 그런 생각을 할 수조차 없었다.


그저 오로지 준희가 자신의 아들이기만을 간절히 바라고 싶을 뿐이었다. 식물인간으로 누워서만 산다고, 그래도 그에게는 너무 간절히 만나보고 싶은 아들이 되어 있었던 것이었다. 유교수는 준희를 만나볼 방법을 찾아보기로 했다.



그러나 너무나 두려운 일이라서 그 시작은 아주 미세하게 하고 싶을 뿐이었다. 선뜻 그들 앞에 나설 용기는 전혀 나질 않았다. 그 조차도 이제 겨우 숨을 쉬고 사는 중이니까 말이다.



노 목사님이 산에 나무를 하러 가자고 아침부터 서둘렀다. 눈이 조금 쌓여 있긴 했지만, 오히려 산속은 눈 때문인지 포근하고 하얀 설원이 아름답기 그지없었다.



삭정이를 부러뜨려서 톱질을 하고 리어카에 싣고 오는 것이 둘이 하는 일이었다. 겨울이면 교회 안에도 화목 보일러에 불을 때야 하고 사택도 화목 보일러라서 양쪽에 불을 지피려면 땔감을 수시로 산에서 해야만 했다.



성도들이 노 목사님 힘들다고 나무를 해오기도 하고 전기난로를 사다 놨지만, 노 목사님은 틈틈이 유 교수에게 나무를 하러 가자고 하고 산속으로 그를 이끌고 들어왔다.


노 목사님은 유 교수에게 적당한 노동이 오히려 그림에 큰 정신적 해소 작용이 된다는 걸 아시는 것 같았다. 유 교수는 산속에서 삭정이를 부러뜨리고 톱질을 하는 것이 신선놀음이라도 되는 양 기쁘고 행복했다.



잔가지들이 저절로 부러져서 산속에 길을 막고 눈 속에서 번듯하게 누워서 얌전이들 있었다. 산은 그저 흰 눈 속에서 숨겨진 야생화처럼 평온했다. 노 목사님은 땀이 흐를 정도로 열심히 잔가지들을 주워 모으고 삭정이를 부러뜨리며 톱질을 해댔다.



두어 시간 산속에서 나무를 하다 보니 금세 리어카가 넘치도록 나무가 쌓였고 두 사람은 동아줄로 단단히 묶어서 유 교수는 앞에서 리어카를 끌고 노 목사님은 뒤에서 밀면서 교회 창고로 나무들을 끌어다 놨다.


유 교수는 나무를 다 내려놓고 노 목사님 에게 이렇게 말했다.



“제 아들인 거 같은 중학생의 사연을 알게 되었는데, 그 애가 식물인간이나 마찬가지로 사지가 마비되어 있다고 하네요. 찾아봐야 할 것 같아요. 기도해 주세요.”



“음.... 사람의 인연 중 가장 질기고 끈적한 것이 부모와 자식의 핏줄인데, 살아 있는 자식을 이제는 찾아봐야지. 그 애가 식물인간이 되었다면 더군다나. 더 빨리 찾아봐야, 무슨 사고가 났었나 보네.”



“네 학교에서 학폭을 당했다고 하네요. 그렇게 된 지 3년이나 되었다고 하니 애 엄마도 많이 힘들었을 거 같고, 제가 적극적으로 찾아 나서야 할 것 같아요.”



“그럼, 당연한 일이지. 어서 서둘러 보게나. 하나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고 했으니 자네가 움직이면 하나님도 아들을 만날 수 있도록 도와주시겠지.”



“네 알겠습니다. 떨리기도 하고 두렵기도 하지만 이젠 목사님이 그동안 절 보살펴주신 것처럼 저도 제 아들을 보살피고 살면 되겠죠.”



“내가 뭘 했다고 그러나. 다 하나님이 하신 일이지. 자네가 여기서 이렇게 썩고 있을 사람은 아니었지만, 그동안 그린 그림도 더 이상은 숨겨 놓지 말게나. 다시 실력 발휘를 하고 화가로 살아가야지. 언제까지 숨어서만 그림을 그려야 하겠어.



무슨 일인진 잘 몰라도 그동안 죄 값은 다 치른 셈이네. 여기서 숨어 살면서 회개도 많이 했고, 나와 교인들을 위해 수고도 많이 했으니 말이여. 그게 다 교회를 도운 일이니까 하나님이 그 속죄의 삶을 어느 정도는 용서하셨다고 보네. “




“부끄럽습니다. 저는 큰 죄인이었고, 앞으로도 사실 살아가는 동안 그 죄를 다 속죄하고 살기는 힘든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준희라는 사지마비가 된 중학생이 제 아들이라면 정말 하나님은 제 편이신 거죠. 저에게 또 속죄할 시간을 허락해 주시는 거니까요.”



“자네가 정말 많이 신앙이 성장하고 성숙했구먼. 난 이제 자네를 내 아들이라고 생각하고 살아서 그런지 오늘 또 손주까지 한 명 더 얻은 기쁨이 오네 그려. 어서 서둘러서 찾아보게.”



그 후, 한 달 후 유 교수는 준희와 재숙을 찾을 수 있었다. 방송국에 다니는 후배 국장에게 17년 만에 유교수가 전화를 했던 것이다.



그리고 그는 다짜고짜 모 방송국에 이런저런 프로그램에 사연을 보낸 준희라는 학생을 찾아 달라고 부탁을 했다. 그리고 그 후배 국장에게서 온 전화번호를 가지고 그는 재숙의 미술 학원을 찾아갔다.


눈이 하염없이 쌓이던 한 겨울에 재숙은 미술 학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었다.



재숙이 암으로 얼마 남지 않은 인생이란 것을 알고 유 교수는 재숙과 준희를 데리고 섬으로 들어왔다. 유 교수와 재숙과 준희는 교회의 사택 근처에 예쁜 집을 하나 새로 지었다. 마당이 넓은 집에서 세 사람은 일 년을 함께 살았다.



재숙은 그 집에 여러 꽃들을 심어 놓고 유 교수가 전시회를 열도록 도와주고, 준희가 시집을 낼 수 있도록 책 표지를 아주 멋지게 그려주고는 잠들 듯이 천국에 천사들에게 둘러싸여 평온하게 하늘나라로 갔다.


재숙은 유 교수에게 마지막 유언을 남길 때 이렇게 말했다.



“당신의 금지된 섬에도 봄이 왔나 봐요. 창밖에 봄의 소리들이 들려와요. 우리 준희의 ‘봄이 오는 소리’라는 시처럼.... 아이들 소리, 강아지 소리, 꽃이 말하는 소리, 새가 우는 소리. 이런저런 봄에 소리가 들려오네요.^




재숙은 그렇게 떠났다. 섬이 하얗게 잠길 만큼 폭설이 오던 겨울밤에.



그날의 폭설에는 19년 전 유 교수가 금지된 선을 넘어 양심의 버리던 날의 치욕을 다 덮어 주시던 노 목사님의 위로의 말이 남도 끝 섬마을을 고요히 덮어 내렸다.



“ 이 세상에 왜 왔다가 가는지 아세요? 하고 나에게 물으면 나도 답을 잘 못해요.

그런데 이 말은 해주고 싶어요. 주의 생각은 깊으시다 고. 그래서 우리 인간이 생각하는 것보다 그의 생각은 매우 깊으시다 말하고 싶어요. “




그 후로도 불장난 같은 봄은 언제나 멀리 떠나는 배들을 배웅하며 남해의 섬 자락을 자운영꽃으로 물들여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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