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개아저씨 (소설)

4. 봄볕

by 권길주

방개는 한 씨 어르신 과수원에서 봄을 다 보냈다. 방개는 한 씨 어르신의 안사람을 보면 먼 기억 속에 엄마 얼굴이 떠올랐다. 젊고 예쁘던 엄마 얼굴이었다. 분명히 다섯 살 이였던 어느 날 방개는 엄마가 장터에서 자신을 놓고 가는 걸 보았다. 긴 월남치마가 바람이 펄럭이며 시장 어귀를 돌았다. 엄마는 첩이었다. 나이가 많은 남자의 첩으로 살던 엄마는 방개를 버리고 달아났다는 것을 방개는 그 장터에서 알게 되었다.

“네 애미 년은 바람이 났어. 지독하게 가난한 머슴 딸년 내가 논 다섯 마지기나 주고 사 왔는디 날 배신하고 내 집 머슴하고 달아나, 그래서 핏줄은 못 속여, 머슴 딸은 머슴이 딱 맞는 거지, ”

방개의 아버지는 고래 등 같은 기와집에 살던 큰 부자였지만, 그는 첩으로 살던 방개의 엄마가 자기 집에서 일하던 머슴과 바람이 나서 나간 것을 평생의 수치로 여기며 방개만 보면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자기 본부인 자식들과는 방개를 한 상에서 밥도 주질 않았다. 본부인에게서 난 형들이 다섯이나 있었는데, 그 형들은 방개를 돌려가며 때리곤 했다. 어느 날은 다섯 명이 다 방개를 때리는 날이면 방개는 등짝이 부서질 것만 같고 뼈마디가 벌집처럼 쑤셨다.

학대와 냉대가 그의 어린 시절을 채웠다.

방개는 사람의 마음을 헤아리거나 적당히 분위기를 파악할 정도의 눈치는 남달랐다. 그러나 그는 마음이 다치거나 마음이 상하면 그 사람을 피하거나 떠나는 일이 대부분이었고, 어느 때는 상대방이 이유를 알 수 없이 일해 주던 집을 나갔다.

방개는 어릴 적 생각만 하면 지금도 마음이 봄이 오기 전에 부는 찬바람처럼 아리고 시렸다. 다섯 명의 형들은 지금은 다 서울에서 교수도 되고, 사장도 되고, 큰 회사도 다닐 것이다. 이제는 형들을 어디서 본다 해도 자기는 형들의 얼굴을 못 알아볼 것이고, 형들도 자기의 얼굴을 못 알아볼 것이다. 고향 집에 아버지가 돌아가신 것은 방개도 알고 있다. 하지만 형들을 낳아준 아버지의 본부인은 아직도 그 집에서 살고 있었다. 방이 일곱 개나 되고 바깥마당이 천 평이 넘는 너른 집이다.

몇 년 전 늦가을에 몰래 가보니 제일 큰 형이 서울에서 내려와 그 큰 집에서 몇 명의 머슴들을 데리고 쌀가마니를 수도 없이 창고에 들이고 있는 모습이 먼발치에서 보였다.

방개는 큰 형에게 자기 모습을 들킬까 봐 담 뒤에 얼른 몸을 숨겼다. 재수 없이 들통이 나면 아마도 큰형은 옛날 보다 자기를 더 심하게 때릴지도 모른다는 두려움과 공포가 방개를 그곳에서 천리만리 달아나게 했다. 어차피 첩의 자식은 한 핏줄이 아닌 거나 진배없는 사실이었다. 그토록 아픈 어린 시절이 있었기에 방개는 가끔 옛일을 전혀 기억하지 못했다.

방개는 한국 전쟁이 터지기 전에 태어났지만, 정확한 나이는 본인도 몰랐다. 그러나 그가 중학교 1학년 때 학교를 다니던 중 한국전쟁이 터진 것만은 도저히 지울수 없는 기억으로 늘 그를 따라다녔다. 그는 그 전쟁에 소년병으로 끌려갔었고, 그리고 그는 그 전쟁 통에 수많은 적군과 아군의 죽음을 보았다.

더구나 옆집에 살던 가난한 친구였던 헌병이의 죽음을 잊을 수가 없었다. 총이 아닌 포탄에 맞은 헌병이는 온 몸이 찢기어 죽었는데, 그 모습을 본 방개는 그 날부터 전쟁통에서 정신을 온전히 차릴 수가 없었다. 그리고 그는 한국전쟁이 끝나고 집에 돌아왔을 때 옆집의 가난한 헌병이 엄마가 아들의 시신을 찾지도 못하고 날이면 날마다 목놓아 우는 소리를 들을 때 마다 친구 헌병이의 갈갈이 찢긴 시신의 모습이 환영처럼 떠올라서 온 집을 돌며 머리를 흔들고 괴로워했다.

그러기를 3년하니 다니던 중학교도 중퇴를 하고 그는 집안에서도 전쟁후유증에 시달리는 온전치 못한 사람이 되어 있었다. 방개는 옆집의 헌병이 엄마의 방성대곡하는 소리가 들리기만 하면 집을 나왔고, 동네를 나와서 먼 길을 하염없이 걸어 다녔다. 들판을 벌처럼 쏘다니기도 하고 산속을 산짐승처럼 헤매고 다니기도 했다. 그러는 중에 그가 유일하게 하는 공부는 영어책과 일본어 책을 가지고 다니며 시간만 나면 외우는 일이였다. 그는 공부가 좋았었다. 공부하려고 책상에만 앉아 있으면 첩의 아들이라고 자신을 때리는 다섯명의 형들도 생각나질 않았고, 자기를 버리고 간 엄마도 전혀 기억이 나질 않았었던 것이다.

그러나 전쟁의 고통은 그에게서 공부의 즐거움도 앗아갔고, 영어 공부를 잘해서 미국에 가고 싶다는 꿈도 앗아 간 것이다. 헌병이는 그와 중학교 동창이였다. 비록 집은 가난했어도 그의 부모님도 큰 아들 헌병이에게는 큰 기대를 걸고 아들에게 중학교 교복을 입힐 정도로 기대가 컸던 아들이였는데, 그 집은 전쟁 통에 그 중한 아들을 잃어버린 것이였다.


방개는 전쟁의 후유증을 몇 년 동안 앓다가 자기가 몇 살에 아버지 집에서 나왔는지도 정확하게 기억에 없었다. 소년병 친구 헌병이의 죽음이 괴롭히는 날이면 집을 나와서 며칠씩 돌아다녔고, 그 후로 어쩌다가 집을 찾아가던 일도 어느 때 부터인가는 하질 않게 된 것이다.

형들이 하나 둘 장가를 가면서 얼굴도 모르던 형수들이 집에 드나들면서 형들은 어쩌다가 집을 찾아온 그에게는 대문도 열어주질 않았다.

그러기를 몇차례 하다보니 그의 아버지도 이제는 방개가 집을 나가기만 바라는 눈치였다. 방개는 아무것도 가지고 나오질 않았고 그저 중학교때 읽던 영어책 한권만 손에 들고 고래등 같은 아버지 집을 아예 나왔다.

영어책은 그의 기억 속에서 힘든 세상을 잊기 위한 하나의 통로였다. 먼 나라를 향한 동경이 그에게 그 영어책으로 동경심을 불러일으킨 것 이였다. 그렇게 떠돌던 방개는 스물을 넘겼고, 삼십도 이제는 훌쩍 넘은 나이가 된 것이다. 그러나 햇볕에 그을려 구리빛 얼굴을 한 덩치가 큰 방개는 얼핏 보면 잘 먹고 사는 집의 가장 같아 보이기도 했다.

그런 방개에게도 사랑이 움트는 마음은 인간이기에 똑같았다. 그 사랑의 대상은 이 마을에서는 십 리나 더 가야 하는 선동리라는 마을에 순자이라는 처녀였다. 그녀는 볼수록 예뻤다. 쌍까풀 진 눈매는 긴 속눈썹과 아주 잘 어울려서 그녀가 검은 눈동자를 반짝이면 세상이 다 환하게 빛나 보일 정도였다. 귀머거리인 그녀가 말을 못 해도 방개는 그녀의 입술에서 달콤한 향이 나는 듯해 그녀의 붉은 입술을 곧잘 훔쳐보았다. 그녀가 하는 말은 한참을 잘 새겨들어야 소통이 되는 수준이었지만, 방개를 보면 그녀는 말을 하기보다는 무섭다고 소리를 치듯이 도망을 가곤 했다.

그래도 방개는 봄볕이 잘 든 그녀의 집 앞에 갖다 놓을 진달래꽃을 따러 한 씨 어르신의 집을 나섰다.

방개는 한 씨 어르신네 소를 찾아오는 일에 동참한 대가만큼 그 집에서 겨우내 잘 먹고 봄이 오자 과수원에서 사과나무 가지 치는 일을 부지런히 해줬다. 그러나 그 집에서 더 이상 머물기는 싫어진 것은 순전히 선동리에 사는 순자를 보기 위함이었다. 매일 가서 얼굴이라도 보려면 아무래도 선동리에 박 씨 어르신 집에 가서 일하거나 그 동네에서 밥을 얻어먹고 살아야 할 것 같았다.

마음이 급해진 방개는 한 씨 어르신한테 인사도 못 하고 집을 나왔다. 저녁이 되기 전에 십리 길을 걸어서 순자이네 집 앞에 가야 했고, 산에서 진달래꽃도 한 아름 꺾어서 가지고 갈 요량이었다.

방개는 부지런히 왔다 싶었는데도 어둑어둑해질 때가 돼서야 산에서 진달래를 꺾어 내려오고 있었다. 산모퉁이만 돌면 순자네 집이 바로 거기서 얼마 멀지 않았다. 아무래도 진달래꽃은 밤에 몰래 마당 장독대 위에 올려놓고 와야 할 것 같다. 그때 어디선가 어린 듯한 여자애의 비명이 산을 쩌렁쩌렁 울렸다.

“아....악 아악 사람 살려, 이거 놔, 놓으란 말이야, 아악”

분명 너무 소름이 끼치는 외마디 비명이 들렸고, 잠시 후 여자의 입을 틀어막았는지 신음이 너무 슬프고 무섭게 들려왔다. 방개는 소나무 사이로 얼른 몸을 숨기고 주변에 정황을 살폈다. 바로 아래 산이 깊이 폐인 골짜기에서 어린 여자애의 비명이 들려오고 있었고, 다 크지 않은 변성기의 남자애들의 소리도 들려왔다.

“야, 빨리 시작해 새끼야, 다음에 나란 말이야.”

“에이 씨발, 왜 너야, 나지, 내가 먼저라고 했잖아,”

방개는 숨을 숙이고 그 어두워진 산속에서 세 명의 남자애들에게 둘러싸인 채 여학생 한 명이 웃도리가 벗긴채 누워 있는 것을 보았다.

순간 방개의 눈에서 파란 불꽃이 ‘확’하고 켜졌다. 방개는 앞도 뒤도 없이 세 명의 남자애들을 향해서 돌진했다. 검정 고무신이 산비탈에서 미끈거렸지만 그래도 방개도 신이 벗어지지 않게 발뒤꿈치에 힘을 줬다.

“야, 이 짐승만도 못한 눔들아, 당장 못 그만둬”

방개의 목소리가 천둥이 치듯이 산이 쩌렁쩌렁 울리자, 깜짝 놀란 뻐꾸기와 올빼미가 푸드덕하면서 산을 회 치며 달아났다. 여자애를 짓누르고 한 놈이 바지를 벗고 있었다.

다음 순서를 기다리던 두 녀석이 방개의 외침에 놀라서 국방색 학생 가방을 움켜쥐고, 허리춤으로 바지를 끌어 올리면서 총을 맞은 멧돼지들처럼 산비탈을 뛰어 내려가기 시작했고, 여자애를 짓누르고 있던 녀석은 너무 무서웠는지 발을 떼지도 못하고 주춤거리다 자신 앞에 태산 같은 바위처럼 떡 버티고 선 방개를 보자 갑자기 비웃기 시작했다.

“에이 씨팔, 방개 새끼여, 난 또 누구라고, 증말 재수가 옴 붙었다.

야, 이 머저리 같은 새끼야, 왜 남의 청춘에 뛰어들어, 너 같은 게.”

인근의 고등학생이 분명했다. 더구나 머리에 쓰던 검정 학교 모자를 보니 그 애들이 인근에 읍내에 고등학생에 다니는 남학생들이 맞았다. 방개가 이 인근을 떠돌고 산 지 십 년 가까이 되다 보니 웬만한 집 아이들이 클 때부터 대충은 알고 있었는데, 이 남학생도 어렴풋이 누구네 집 아들인지 알 것만 같았다.

갑자기 남학생은 화가 치민다는 듯이 주먹을 쥐더니 방개의 얼굴을 강타하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방개는 몇 대를 정신없이 맞고 나니, 대책 없이 맞기만 하다가는 흰 블라우스에 검정 교복 치마를 입은 여학생을 구해주기가 힘들 거란 생각이 들었다. 그는 일하면서 단련된 근육질의 호박 덩어리 같은 주먹을 움켜쥐고 남학생을 흠씬 두들겨 패버렸다.

남학생은 코에 코피를 줄줄 흘리면서, 분이 났는지 온갖 욕을 하더니 풀숲에 놓인 가방을 들고 꺼억 꺼억 울면서 내려갔다. 도망친 친구 녀석들이 산 아래서 있었는지 두런두런하는 소리와 함께 다시 세 녀석이 산 비탈로 올라와 방개 앞에 떡하니 버티고 섰다.

그 사이 여학생은 무협지를 보는 건가 하는 표정으로 방개를 쳐다보기만 하더니 옷을 주워 입고, 파리한 얼굴로 앉은 채 울기만 했다. 그 울음은 사슴이 호랑이에 잡혀서 죽을 위기에 놓였으나, 어디선가 온 사냥꾼의 총에 호랑이를 죽이긴 했는데, 그 호랑이가 다시 살아서 자기를 잡아먹을 듯이 노려보는 것처럼 생각되었는지 다시 나타난 세 명의 남학생을 보자, 정말 숨이 끊어질 듯이 통곡하면서 울기 시작했다.

방개는 두 주먹을 다시 불끈 쥐었다. 어린 시절 다섯 명의 배다른 형들이 돌아가면서 때리던 모습이 흑백 텔레비전에서 본 영화처럼 그려졌다.

“썅, 야 이 방개 새끼 오늘 우리가 죽여 버리자, 이런 머저리한테 우리가 당하문 우리가 고등학교 물 먹은 거 아니지, 더구나 우리가 셋다 학교 유도부 대표인데 이 새끼가 어디 우릴 깜보고 지금 멋도 모르고 말야, 지가 무슨 이순신이냐, 나라 구하게. 저 교장 딸년 오늘 내가 퇴학 맞은 보복으로 신세 망쳐 놓으려구 했는데 말여. 어디서 이런 개뼈다귀가 이 거대한 성사를 망쳐 놓냐구, 패 싸움 좀 했다구 날 퇴학시켜, 우리 엄마가 시장에서 콩나물 팔다 말고 와서 교장한테 손이 발이 되게 빌었는디 그래도 날 짤렀어. 우리 엄마를 보고 날 더 무시한거지, 이런 세상 나도 살기 싫으니께, 오늘 방개 저 바보 때문에 내가 막나가는 인생 기념 파티를 여기서 끝내문 안되지.”

“야, 긴말하지 말고 다 조져. 방개랑 저년이랑, 우리는 어차피 패싸움 하다 걸려서 학교 퇴학당한 인생들인데, 두 인간 산속에 묻어버리지 뭐.”

“우리 같은 인생, 부모가 배운 것도 없고, 돈도 없고, 빽도 없어서 우리 가 패싸움 좀 했다고 학교에서 퇴학 맞아도 누구 하나 건져주는 인간들도 없는데, 빽 있고 힘 있는 배운 것들이 우릴 열 받게 해서 보복 좀 하겠다는데 어디서 얼간이 중에 상 얼간이 방개가 나타나서 이 거대한 성사를 망치냐고. 자 셋이서 힘 좀 합쳐 보자. 우리 유도단 말이야.”

세 녀석이 침을 뱉으면서 방개에게 한 마디씩 무슨 씨름판에 나온 천하장사처럼 으름장을 놨다. 방개는 일단 검정 고무신을 벗었다. 아무래도 맨발이 앞차기를 하는데 쉬울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그는 숨을 먼저 한 번 골랐다. 그리고 기선을 제압하기 위해 먼저 공격하기로 했다. 그는 두 놈을 먼저 두 팔로 가슴을 격타하고 한쪽 다리로는 한 녀석의 허리춤을 돌려차기로 걷어차 버렸다. 순식간에 방개를 얕잡아 보던 녀석들은 기선 제압에 실패하자 정신없이 달려들었다.

방개는 다섯 명의 형들에게 매를 맞기만 하던 분풀이를 오늘, 이 나쁜 놈들에게 다 되돌려줘야겠다고 마음을 먹고, 인정사정없이 세 녀석을 걷어찼다. 세 녀석은 십 분도 안 돼서 싸움판에서 널브러진 채 다 쓰러져 버렸다. 수십년 된 체증이 내려간듯 속이 후련하고 못된 놈들 얼굴에 침이라도 더 밷어주고 싶었지만, 어찌나 맞았는지 순식간에 세 녀석이 땅에 코를 박고 코피를 쏟아내며 죽는다고 뒹구는 꼴이 기가막히게 보기가 좋아서

방개는 너털 웃음을 웃어댔다.

"이눔덜아, 유도부가 무슨 대수냐, 나는 이눔들아 머슴 당수다 짜식들 말야, 어디서 까불고 다녀, 남의 집 귀한 딸을 함부로 건드리고 말여, 한번만 더 이런 나쁜 짓하고 다니문 내가 느덜 다 경찰서 깜빵에 쳐넣을란다."

남학생 셋은 땅바닥에서 일어나지 못하고 신음소리를 내 밷으며 손과 발로 비는 시늉을 하고 눈물 콧물, 코피가 범먹이 되어 나자빠져있었다.

저 멀리 숲까지 달아나 있던 교장 딸이 놀라서 사슴처럼 뛰어나왔다. 방개는 뒤도 안 돌아보고 그 교장 딸의 손을 잡고 어두운 산길을 더듬으며 둘은 비탈을 신나게 뛰어 내려왔다.

교장 딸은 집이 읍내에 큰 집이었다. 교장 딸은 대문을 들어가지 못하고 한참을 울었다.

“아저씨, 제 평생에 은인이에요. 맞아서 많이 아프실 텐데. 아저씨도 많이 맞았잖아요.”

“저는 괜 괜찮아유. 이런 고생이야 아무 것두 아니지유”

“그래두, 이렇게 많이 맞았는데, 제가 집에 들어가서 병원비라도 타가지고 나올게요, 좀 기다리세요. ”

“아녀유, 학생이야말루 얼마나 놀랐겠어유, 어서 들어가서 그 나쁜 놈들 교장 선생님한테 말해서 학교 못 다니게 해야 혀유, 절대루 그런 녀석들은 학교를 다니문 안 돼유, 또 이런 일 저질러유. 그냥 놔두문.”

“어서 들어가 봐유, 나두 갈 길이 바뻐유. 얼른 가야 혀유”

방개는 교장 딸이 뭐라고 하든 말든 뒤도 안 돌아보고 그 집을 벗어났다. 여린 풀잎같이 가늘게 떨던 여학생이 눈물을 텀벙텀벙하고 땅바닥에 떨어뜨렸다. 교장 선생님 집의 높은 담 위로 하얀 목련이 어찌나 희고 환하게 피었는지 온 동네가 달빛 속에서 하얀 비단길 같았다. 방개는 그 꽃가지를 하나쯤 꺾어서 순자에게 갖다가 주고 싶을 지경이었다.

산에서 꺾었던 진달래 한 묶음이 어디로 갔는지 알 수도 없지만, 방개는 고픈 배를 움켜쥐고 걸어서 다시 선동리 순자가 사는 마을로 밤길을 걷고 또 걸었다. 그런데 이상하게 배는 고파도 마음이 따스한 게 뭔지 모를 봄바람 같은 것이 맴돌며 온종일 봄볕을 쪼이던 강아지처럼 그는 그 먼 밤길이 행복하기만 했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