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누구요?에 대한

쇼펜하우어의 대답

by 권길주

어느 공원 벤치에 한 사람이 밤이 늦도록 앉아 있었습니다.

공원지기가 순찰을 돌다가 이 사람을 발견하고 물었습니다.

"당신은 누구요"

그러자 그 사람이 일어나면서 하는 말이

"내가 누구냐고? 아, 나는 그것을 몰라서 지금까지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는 바로 독일의 유명한 철학자 '쇼펜하워' 였습니다.


누군가 지금 나에게 "당신은 누구요?"라고 묻는다면 나는 나를 누구라고 말할 수 있을까?

'나는 누구인가?'

그 질문에 나는 나를 누구라고 말할 수 있을까 싶다.


낮설은 누군가가 나에게 갑자기 "당신은 누구요?" 라고 물을때

나 역시 순간, 많은 생각이 스칠 것이다.


겉에 보여지는 모습이나 환경이나 직업이나 뭐 이런걸 말해야 하나....

아니면 진실한 속마음이나 나의 고뇌와 아픔, 상처들을 말해야 하나....

상대에 따라서 이런 저런 망설임도 있을 수 있고,

진짜가 아닌 약간은 과장되거나 포장된 나를 상대에게 보여줄때도 많았던 것 같다.


오늘도 흙 위에서 맨발로 천천히 걸음을 걸으며

그 흙의 보드라운 느낌을 받으며 나는 생각해보았다.



모든 인간은 결국 흙으로 돌아간다 .... 내가 지금 밟고 있는 이 흙도 수백년 전에 이 땅에 살았던

누군가의 살과 뼈 그리고 인간이 가진 육체의 모든 것이 될 수도 있다는 걸 생각해 보았다.


'하나님이 땅의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 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되니라' (창세기 2장 7절)


성경은 내가 누구인지를 이렇게 명료하게 답을 냈다.

인간을 만드신 하나님 만이 인간이 흙에서 태어나고 흙으로 돌아가는 이치를

태초에 인간을 만들때 부터 계획하신 것이 놀라울 뿐이다.




나는 나를 그동안 방송작가라고도 말하고 시인이라고도 했고, 소설가라고도 했지만,

나는 내가 누구인지를 아직도 잘 모르겠다.


직업이든 환경이 나를 다 말하지는 못한다.

쇼펜하우어처럼 '내가 누구인가'를 생각하고 사는 사람만이

자신의 내면 안에 있는 나를 발견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나라는 존재는 첫째도 죄인이고 두번째도 죄인인 것이 분명하다.

하나님의 판단하에서만 죄인이란 말을 쓸 수는 없다.

내가 살아가는 하루 하루를 틈틈히 들여다 보면

내가 짓는 죄들이 속속히 보일 때가 있다.


오늘도 아침부터 뇌경색 환자인 엄마에게 바지에 똥싸지 말라고 일장 훈계를 하듯이

소리를 지르며 주의에 또 주의를 주고 기저귀 차라고 소리치는 내 모습

이런 지독한 자아의 속사람인 나는 언제 사람이 되려나 ....싶다.

엄마는 걸음이 느리고 괄약근이 조절이 않되는지 하루에 한 두번은 약간의 대변을

팬티나 변기에 흘리곤 한다.

내가 가장 싫어하고 짜증이 나는 상황이다.

그런데 그걸 방지하기 위해서는 기저귀를 잘 차고 있으면 사전에 그 일은 예방이 되는 것인데

엄마는 여름엔 더워서 기저귀를 안차고 어느 때는 하루에도 몇번씩 기저귀 차는 일을 까먹다

보니 나를 화가 나게 만드는 것이다.


그런 나를 보고 아버지는 아무렇치도 않게 엄마의 대변을 손으로도 치웠다며

나에게 네가 엄마 똥치우는게 뭐가 어려워서 소리를 지르냐고 야단을 친적도 있다.


우리 아버지는 자기 사춘형이 돌아가실 때 즈음에 아파서 혼자 빈 집에 누워 있을때도

아침이면 가서 사춘형의 대소변을 다 받아낼 정도였으니

사랑하는 아내의 대변 쯤이야 아무것도 아닐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나는 달랐다.

예전에 뇌병변 장애인을 업고 다니며 그 여자애의 대소변을 몇달이나 치운 적도 있고

그 애를 데리고 산 적도 있지만

그 때는 내가 하나님의 은혜를 엄청나게 입었던 때라

그런 일이 하나도 힘들지를 않고 기쁘고 행복한 적도 있었다.

그런데 이상하게 친엄마인 우리 엄마가 뇌경색 환자가 되서 4년이 되어가는 지금은

나도 지쳤는지 세종에서 엄마를 모시고 살 때 보다 지금은 더 사나워지고 냉소가 가득한 인간이 되서

환자를 닥달하듯이 엄마를 가르치고 야단칠 때가 더 많다.


그래서 나는 내가 날마다 순간마다 죄를 짓는 죄인이란 것을 안다.

사랑한다는 것은 무엇일까

사랑에도 .... 지쳐간다는 말이 있는 걸까

엄마를 향한 나의 사랑과 감사가 지치지 않길 바라지만 꼭 그렇게 인간이 성숙하고 더 성숙해지는 것이

아니라 어느 땐 곧두박질 치듯이 나는 내가 차가운 냉혈인간처럼 아무도 사랑하고 싶지를 않거나

가족을 사랑하는 것도 너무 버거운 것을 느낀다.


말기암 환자인 아버지는 오늘도 밭에서 들깨를 혼자 터신다.

내가 도와준다고 하니 내가 요즘 브런치 작가가 되었다고 했더니

그 일이 나를 무슨 일약 스타 작가가 되는 큰 일이 생기거나

아니면 돈이라도 벌 기회가 온 줄 아시고

아버지는 너는 윗집 작업실에서 이제 아침 , 저녁만 챙기러 내려오고

거기서 글만 쓰라고 하신다.


아휴, 이 일도 돈하고는 거리가 멀수도 있는 그동안의 나의 삶과 비슷한 일이 될 지도 모르는데,

아버지의 기대는 이번에도 크다.

그러나 아버지가 처음에 주식을 시작하고 얼마 않되어 빚을 산더미처럼 지어 놓고

서울에서 방송국에서 일하는 나에게 밤마다 전화를 해서

'아무래도 아버지는 농약을 먹고 죽어야 하나부다'하시며 울고 계실때

내가 아버지랑 제일 친한 친구인 방배동 아줌마에게 찾아가서 우리집 땅을 담보로 큰 돈을 빌려다

아버지의 급한 불을 꺼드리기도 하고, 시를 써서 천만원이란 거금의 상을 받아서

아버지게 700만원을 빚을 갚으라며 선뜻 주기도 했던 딸이다 보니 ......

아버지는 내가 글 잘쓰면 혹시라도 늦게 나마 뒷북이라도 터지지 않겠나 싶어하시는 것 같다.


언젠가는 내 육체도 이 세상의 삶이 끝나면 한 줌 흙으로 돌아갈 것이다.

그러나 나의 영혼은 천국을 바라며 오늘도 죄인 된 삶에서 나를 낮추고, 마음을 겸손케 하여

내 엄마가 똥을 싸도 그걸 아무렇치도 않게 손으로라도 치울 정도로 엄마를 사랑하는 딸이 되길

간절히 기도해본다.

그리고 난 안다. 진실로 사랑하면 그 사람의 똥이나 오줌이 내 손에 묻어도 아무렇치도 않다는 것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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