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수익 시인 - 시집 우울한 샹송 .
우울한 샹송
이수익 시인
우체국에 가면
잃어버린 사랑을 찾을 수 있을까
그곳에서 발견한 내 사랑의
풀잎 되어 젖어 있는
비애(悲哀)를
지금은 혼미하여 내가 찾는다면
사랑은 처음의 의상(衣裳)으로
돌아올까
우체국에 오는 사람들은
가슴에 꽃을 달고 오는데
그 꽃들은 바람에
얼굴이 터져 웃고 있는데
어쩌면 나도 웃고 싶은 것일까
얼굴을 다치면서라도 소리 내어
나도 웃고 싶은 것일까
사람들은
그리움을 가득 담은 편지 위에
애정(愛精)의 핀을 꽂고 돌아들 간다
그때 그들 머리 위에서는
꽃불처럼 밝은 빛이 잠시
어리는데
그것은 저려오는 내 발등 위에
행복에 찬 글씨를 써서 보이는데
나는 자꾸만 어두워져서
읽질 못하고,
우체국에 가면
잃어버린 사랑을 찾을 수 있을까
그곳에서 발견한 내 사랑의
기진한 발걸음이 다시
도어를 노크
하면
돌아온 사랑을 맞이할까
ooo 선생님께
선생님 안녕하세요. 저 주현이예요.
고등학교 2학년때 선생님 처음 뵈었는데 벌써 대학교 2학년이네요.
시간이 빨리 지나가네요. ㅎㅎ
선생님께서 글쓰기를 가르쳐 주실 땐 글 쓸 일이 있을까? 했는데
대학을 와서 보니 글을 쓸 일이 너무나도 많더라구요.
봉사하고 일지를 쓰면서 선생님 생각이 많이 났어요!!
책과 벽을 쌓았던 저를 책을 읽을 수 있게끔 이끌어주셔서 감사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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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 선생님께
18살, 19살, 20살, 21살
선생님과 보낸 10대 후반과 20대 초반, 그리고 앞으로
더 많은 시간을 보내겠죠.
앞으로 보낼 수 많은 날보다 10대 후반에 보낸 2년이
가장 감사해요.
선생님의 기도와 격려, 따끔한 충고, 가르침이 저를 회복케 하고
그 길로 대학까지 갈 수 있었어요.
중간중간 고비마다 흔들릴 때도 많았지만요,
결국 그 순간 까지 주님께서는 선으로 바꾸셨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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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여름 나의 사랑스런 제자 주현과 금쑥이이가 각자 편지를 한 통씩 써서
나의 시골 작업실을 찾아왔었다.
지친 여름 밤이면 , 이 편지를 읽으며 올 여름 가장 힘들고 괴로운 시절을 보냈다는 것을
아이들은 잘 모를 것이다.
세종에서 만난 아이들은 수업 시간에도 내게 가끔씩 편지를 써오기도 하고 초콜렛이나 맛있는 과자나 케익을 사다 주기도 했다.
어찌나 기특하고 고마운지 아이들이
"쌤 이거 드세요" 하고 조그만 초콜렛이라도 하나를 내밀면
순간, 그날의 피로가 풀리는 거 같았다.
편지를 써온 아이들은 세종에서 만난 나의 글제자들인데, 지금은 둘 다 대학교 2학년생들이다.
세종을 처음 갔을때는 교육청에서 진행하는 캠퍼스공동형교육이란 프로그램에서 '방송작가반'을 맡아서
강의를 다녔는데, 나중에는 어찌 하다 보니 나는 논술교습소를 허가 내서 세종에서 제일 핫한 곳에서
초,중, 고 아이들을 가르치게 되었다.
코로나가 극성일 때 나는 논술교습소를 냈고, 코로나가 끝날 즈음 나는 문을 닫게 되었는데,
그곳에서의 아이들과의 만남이 이렇게 또 나의 전혀 다른 삶의 현장에 까지 이어질 줄은 몰랐다.
한 아이는 사회복지학과로 한 아이는 서울에 극작과로 대학을 간 것인데,
극작과를 간 아이는 아직도 수시로 전화를 하거나 서울에서 내가 문학 모임이나 영화 일로 서울에 갈때면
같이 밥도 먹고 모임도 데리고 가기도 한다.
이제는 가족의 일부처럼 아이들이 내 옆에 있어 줄 때도 있는 것 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그 이유는 아직도 내가 여러 장르의 글을 쓰고 강의를 다시 할 수 있을지에 대한 깊은 회의가 몰려올 때마다 나의 제자 쑥과 전화도 하고 수다로 나의 고충을 털어 놓을때도 많기 때문이다.
그러면 늘 나의 제자들은 하는 말이 있다.
"쌤 우리는 쌤이 80넘어서도 글을 쓸거라고 믿고요, 그때쯤이면 쌤이 대박나서 아주 우아하게 살거라고 믿어요. 그럼 우리는 쌤 집에서 벽난로 지피고 맛있는거 먹으면서 같이 시집도 읽고, 서로 작품도 나누고 그럴거라고 믿어요."
아, 언제 그런 꿈 같은 날은 올까?
언제나 사랑에 실패하고 인생에 마디 마디에서 쓰러지고 이제는 그 아이들을 만나지도 못하는
시골에서 하루에 두세명의 할머니 할아버지나 보는 것으로 내 삶의 울타리는 답답하기가 이를데가 없는데
그리고 나는 오늘도 마당에 널어논 깨를 빨리 가서 덮어 놔야 하고
요양보호사가 오후 3시 반이면 퇴근이니 5시 전에는 무조건 엄마 집으로 달려가야 하니
언제 내가 그리도 꿈꾸던 세계적인 작가 반열에 오르는 글을 써서
우리 제자들이 그리는 후광이 번쩍이는 그런 대작가 될 수 있단 말인가? ㅎㅎ
그래도 나는 올 여름 아버지의 말기암 투병이 시작 되고 난 후,
하루 종일 밥하고 반찬하고 식이요법으로 이것 저것 챙기며
하루에 8시간 이상을 주방을 떠나지 못하고 살던 것에 비하며
너무 감사하게 낮에 5시간 정도는 내 시간을 쓸 수가 있게 되었다.
그리고 이 시간에 내가 하루에 한 꼭지라도 브런치 글을 쓰던, 장편 소설을 이어가던, 3페이지도 못 쓴 시나리오의 뒤를 이어가던 ..... 아니면 문학지에 연재중인 뮤지컬을 끝내던 무엇인가를 나는 하리라 하고
글과 다시 마주하는 시간을 가져본다.
방송국에서 글을 쓰고 작가로 있을때는 내 마음대로 쓰는 글이 전혀 아니였기에
이런 방식으로 글을 쓴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였다.
그러나 지금은 돈은 못벌어도 내가 쓰고 싶은 글은 마음대로 쓸 수가 있다.
하지만, 좋은 글을 쓰고 싶고 좋은 글에 대한 기대를 원하는 독자들에게 무성의한 날 것을 날마다 쏘아
버린다면 그도 무책임한 작가가 아닐까 싶어서 브런치 글에 대한 나의 고민도 조금씩 늘어간다.
그러나 또 한편으로는 아름답고 훌륭한 시를 한 편씩 한 편씩 베끼는 것만으로도 가난한 작가의 삶에도 향기는 피어난다.
오늘도 이수익 시인의 '우울한 샹송'을 읽으며 그분의 시를 한자씩 베끼면서
이수익 시인이 계시던 KBS방송국의 어느 스튜디오나 사무실이 그리고 1층 커피숍이
그렇게 빛이 나던 때가 기억났다.
가까이에서 뵈어도 멀리서 뵈어도 너무나 단아하시고 깔끔하시던 시인,
내가 참 존경하던 시인이시다.
난, 20년이 넘도록 시인의 길을 놔버리고 살고 있지만,
내가 그렇게 시를 사랑하던 젊은 날,
나를 버티게 해준 가장 존경하는 시인이셨기에
오늘은 감히 그분의 시를 베끼어 올려본다.
그리고 반성한다.
나는 나에게 시를 가르쳐준 시인과 스승분들께 안부 전화도 거의 안하고 사는데
내가 과연 내 애제자들에게 이런 황송한 편지를 받을 자격이 있는가에 대해서.
그리고 나의 상처가 아직도 오롯이 남아 있는
나의 첫 시집에 줄을 쳐주고, 격려와 칭찬을 아끼지 않으셨던
이수익 시인님께 너무나 감사하다고 멀고 먼 곳에서나마 인사를 드리고 싶다.
선생님 감사드려요.
우울한샹송이 아니라면 저는 또 시를 잃어버리고 살 뻔 했어요.
시를 잃어버리고 헤맬때마다 제가 이 시를 얼마나 읽고 다녔는지
선생님은 모르시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