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자에게 진달래꽃을 한 아름 꺾어 갖다주고 방개는 다시 중골로 들어왔다. 며칠 전에 권씨 어르신이 며칠 있으면 자기 팔순이라고 잔치를 크게 며칠 동안 할 거라고 잔칫날 오라고 했기 때문이다.
권 대감 어르신은 그 집이 대대로 정승과 대감을 하던 집이라서 권 대감이라고 불리는 할아버지인데, 팔십을 사는 사람이 드문 때에 할아버지가 팔십을 산다고 중골 동네에서는 어르신이 자식들도 아홉이나 되니 잔치를 크게 할 거라고 했다. 더구나 그 중골에는 권 씨를 성을 가진 사람들이 제일 많이 사는 동네라서 문중에 제일 연장자이신 권씨 어르신의 팔순 잔치는 크게 할 게 뻔했다.
방개는 잔칫상에 올려질 떡과 고기, 과자 등을 생각하니 걸음이 급해졌다.
파릇파릇 새순이 돋아난 논둑에는 쑥과 질경이가 서로 키 재기를 하듯이 오밀조밀 모여서 온 대지에 생기를 주고 있었다. 방개는 논둑과 밭둑을 지나고 먼지가 풀풀 나는 행 길을 따라 뛰다시피 걸어서 중골에 오니 저녁 어스름이었다.
이집 저집 굴뚝에서 연기가 나는 걸 보니 저녁밥을 하고 아궁이에서는 나무 타는 향내가 온 동네를 술렁이게했다. 방개는 먼저 권 대감 어르신 집 앞에 가서 고개를 쭉 빼고 안에 동정을 살펴봤다. 집안에 사람들은 있는데, 잔치를 하는 것 같지 않다. 아직 잔치를 시작하지는 않은 것 같은 눈치다.
“방개 왔네, 어쩐 일로 다 저녁에 우리 집에 왔니?”
권씨집 큰 며느리다. 종갓집 종손의 큰며느리답게 느긋하고 여유 있는 사람으로 동네에서는 후덕하기로 소문이 자자하다.
“네 어르신 팔순이 곧 온다고 어르신이 잔치 때 와서 밥 먹으라고 해서 왔지유”
“응, 아버님이 방개한테도 팔순 잔치 초청장을 보내셨네, 아휴 우리 아버님 제일 먼저 챙길 사람을 챙기셨네. 잔치는 삼일 뒤에 있는데, 잔치 준비하느라 바쁜데 잘 왔다. 우리 집안일도 좀 거들어 주고 잔치 때 실컷 고깃국도 먹고 떡도 먹고 그래라. 내가 배부르게 먹도록 챙겨줄 테니”
“아이구, 아주머니 고마워유, 그럼 뭔 일을 좀 거들 문 쓰것유”
“ 응, 저기 사랑채 아궁이에서 불 좀 때라. 거기서 지금 잔치 때 쓸 두부를 만들려고 하거든.”
솔가지와 잔나무가지를 때다 보니 어느덧 두부가 다 만들어졌다. 뜨거운 김이 무럭무럭 나는 두부 한 덩어리를 큰 양푼에 담아 주고 권 대감 큰 며느리는 방개에게 헛간에 잠을 자도록 내줬다.
봄이라서 거름더미도 다 논에다 거름으로 풀어 놓아서 방개는 잘 곳도 마땅치가 않은 계절인데, 이럴 때는 헛간을 빌려주면 거기야말로 또 방개의 최고의 안방이요, 집이다.
대부분 헛간에서 잘 때는 가마때기를 깔거나 그 집에 헌 돗자리를 깔면 된다. 그런데 땅에서 올라오는 찬기가 아직은 등골을 시리게 하니 헌 가마때기가 있으면 그것이 최상의 방바닥이고, 최고의 이불이다.
다행히 헌 가마떼기가 두 장이 있어서 방개는 그걸 깔고 앉아서 두부와 김치, 밥을 게걸스럽게 다 먹어 치웠다. 배가 부르니 아침에 순자에게 주고 온 진달래꽃과 잠깐 순자를 보고 온 생각이 그의 마음이 봄날에 피는 세상의 온갖 꽃들처럼 피어나고 막혔던 숨통이 트인 듯이 기분이 날아갈 것만 같다.
더구나 엊그제 봉변당한 교장 선생님 딸을 구해준 대가로 교장 선생님 딸이 한참을 걸어온 방개를 쫓아와서 주고 간 십자가가 매달린 금목걸이를 순자에게 줬더니 순자의 눈이 등잔불처럼 커졌다.
“이이게 뭐뭐 래유”
“금이래유, 금목걸이래유”
“어어 디디 서 났어유우”
“누가 줬어유”
“순자 선물 주라고 하 하나님이 준거유”
순자는 놀래서 커다란 눈이 껌뻑껌뻑하더니 목걸이를 방개 손에 도로 올려놨다. 그리고 고개를 저었다.
“싫어유, 안 안 가져유”
“나 도둑질 한 거 아니여유, 어떤 여자애가 내가 자기 구해줬다고 기어이 울면서 이거라도 가지라구 하두 울어서 내가 할 수 없이 받어 오긴 했는디 줄 사람이 거기밖에 없서 가져온 거유, 그러니 아뭇 소리 말구 가지구 있어유, 혹시 돈이 필요할 때 급하면 금방 가서 팔아두 된다구 그 여학생이 가르쳐 줬슈, 금이니께, 자, 이건 순자 꺼유. 난 이런 거 팔어먹지두 못해유.”
“난 방개한티 이런 거 받기 시 시 싫어유”
“엄마, 아플 때 돈 없으문 팔어서 병원비 써봐유 그럼 ”
순자네 엄마는 병들어 누워 있는지가 오래됐다. 간이 부은 병이라고 하던가, 아무튼 돈이 없어서 못 고친다고 순자가 말한 적이 있었다. 귀가 잘 들리지 않는 순자가 고개를 내 저으며 두려운 표정을 짓자 방개는 진달래꽃 옆에다 목걸이를 놓고 그 집 마당 나온 것이다. 순자는 귀는 먹었지만, 멍청하지는 않으니까 잘 숨겨 놓을 것 같아서였다. 순자도 학교에 다닌 적은 없다고 했다. 귀가 들리지도 않고 집도 가난하니 학교는 문 앞에도 못 가봤다고 한다.
별이 총총 박힌 하늘이 헛간에서 나무창살 사이로 보인다. 보름쯤인지 달도 환하게 비친다. 봄밤은 이상하게 어디 먼 데서 분명히 설레는 손님이 오는 것처럼 들뜨고 기분이 좋다. 더구나 사흘 후면 권 대감의 찰순 잔치로 온 동네가 들썩일 것을 생각하니 방개는 군침이 달빛 마냥 입안 가득하다.
권 대감의 팔순 잔치가 다가와서인지 권 대감 집에 형제와 자식들 손자며느리 하며 친척들까지 백여 명이 벌써 집안에 가득하게 채워져 온 집이 정신이 없이 시끌시끌하고 온 동네 개들이 밤낮으로 새로운 사람들을 보고 짖어대니 동네는 큰 잔치가 벌어진 것이 먼 동구 밖에서도 훤히 보였다.
방이 부족하니 마당에 포장을 치고, 이집 저집 친척 집에 가서들 머물고, 조용하던 시골 동네가 갑자기 바쁘다.
잔치에 쓸 부침개를 부치는 아녀자들이 커다란 가마솥 앞에 대여섯이 옹기종기 모여 있고, 소를 잡고 돼지를 잡는 사내들이 붉은 피를 뚝뚝 흘리며 고기를 삶으러 왔다 갔다 거리고, 떡을 하느라 마당 한 귀퉁이에서는 연신 떡방아를 찧는 소리가 크게 들렸다.
그리고 사랑채에서는 과줄이며 송홧가루로 만든 떡과 과자들을 만드는 여자들이 또 한 방에 가득 모여 있었다. 방개도 이번 잔치에 큰일을 좀 하리라 하고 불 때는 일, 장작 패는 일, 무거운 물동이 나르는 일, 술을 퍼 나르는 일 등 정신이 없이 일을 거들었다.
그래도 방개가 제일 신나는 건 잔칫집에서는 사람들 눈치를 잘 안 보고 배부르게 먹어도 동네 사람들이 핀잔을 잘 안 준다는 것이다.
여덟 명의 자식들이 다 대성한 권씨 어른의 어깨가 한껏 높아진 날,그는 마당에서 잔칫상을 받았다. 잔칫상은 정말 너무나 멋들어졌다. 온갖 과일과 떡, 고기, 과자, 사탕, 진기한 먹을 것까지 커다란 잔칫상에 올려놓고 권 대감의 자식과 손자, 며느리들 친척까지 다 줄을 서니 백여 명이 줄줄이 섰다. 권 대감의 입꼬리가 하늘을 향해 치솟자, 읍내에서 온 사진사가 까만 보자기 같은 천을 머리에 뒤집어쓰더니 긴 다리 위에 놓은 카메라를 돌리며 한쪽 손을 번쩍하고 올리더니 “찍어요.”를 몇 번 외치더니 ‘펑’하는 소리와 함께 사진이 찍혔다.
그 순간 동네 사람들의 얼굴까지 사진에 찍힌 듯이 모두 놀란 토끼 눈을 하고 사진사가 있는 쪽을 바라봤다. 권 대감 집에 오래된 감나무와 백여 명의 가족들과 친척들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사진을 찍었다.
집집이 마루나 안방에 걸어 놓는 잔칫상 사진이 찍힌 것이다. 그러자 곧바로 돈을 주고 사 온 풍각쟁이들이 장구와 북을 들고 한복을 화려하게 차려입고 마당에서 신나게 노래를 부르기 시작하고 여기저기 멀리서 까지 잔치를 구경하러 사람들이 구름떼 마냥 몰려들었다.
고깃국 냄새 풍악 울리는 소리가 온 중골이 떠나도록 신이 났고, 방개는 엉덩이를 들썩이며 심부름을 하고 잔치 음식을 먹어대느라 정신이 없다.
매일 잔치하는 집에만 다녔으면 좋으련만, 방개가 입이 헤벌쭉 하다. 권대감의 팔순 잔치 삼일이 눈깜짝할 사이에 지나가고 말았다.
방개는 권 대감 집에 잔치가 끝나는 것이 아쉬웠지만, 사흘 동안 하던 팔순 잔치가 끝나자, 그가 권씨 어른 집에서 할 일도 마땅히 없었다. 아직 모를 심거나 밭에 씨를 뿌리기에는 이른 봄이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