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이 아픈 어른을 위한 ~ "달구지에 실은 동화책"

제2편 : 아버지, 당신도 울고 있네요.

by 권길주

가시고기는 이상한 물고기예요.

엄마가시고기는 알들을 낳은 후엔 어디론가 달아나버려요. 알들이야 어찌

되든 상관없다는 듯이요. 아빠가시고기가 혼자 남아 알들을 돌보죠. 알들을

먹으려고 달려드는 다른 물고기들과 목숨을 걸고 싸운답니다. 먹지도 잠을

자지도 앉은 채 열심히 지켜내죠. 아빠가시고기 덕분에 새끼들이 무사히 알

에서 깨어납니다. 아빠가시고기는 그만 죽고 말이죠. 새끼들은 아빠가시고

기의 살을 뜯어먹고 무럭무럭 자라납니다. 결국 아빠가시고기는 뼈만 남게

됩니다.


가시고기는 언제나 아빠를 생각나게 만듭니다.

내 마음속에는 슬픔이 뭉게구름처럼 피어올라요.

아, 가시고기 우리 아빠.

조창인 소설 - 가시고기 중에서



연정이는 며칠 전에 서점에서 사 온 조창인 소설가의 소설 '가시고기'를 읽으며

몇 날 며칠을 눈이 퉁퉁 붓도록 울고 또 울었습니다.

신혼시절에 친정아버지가 생각나서였습니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지 이제는 30여 년이 다 되어서 애절한 그리움은 아니었지만,

연정이는 친정아버지가 그리울 때면 떠오르는 한 장면을 잊을 수가 없었습니다.


소설 '가시고기'의 주인공 다움이 처럼 어린아이는 아니었지만,

중고등학생 시절 너무 철이 없던 연정이는 가난한 아버지 때문에

자신의 꿈을 펼치지 못한다는 이유로 아버지를 미워하고 살았던 적이 있었습니다.


잘 살던 아버지가 빚보증을 잘 못 서는 바람에 연정이네는

고향을 등지고 타향살이를 하게 되었는데,

읍내에서 두 번째라면 서러울 정도로 공부를 잘해서 공무원이되었던 아버지는 하루아침에

농사꾼이 되어서 날품팔이를 하는 신세로 전락을 했고,

연정이 엄마는 그런 아버지 때문에 화병이 나서 매일 고함을 질러야 속이 풀리는 지경이

되었습니다.


오 남매는 그래서 학교에 가져갈 도시락도 싸가지를 못했고,

꿈이 유난히 많고, 재능도 많았던 연정이는 그런 아버지를 사춘기가 되면서

무진장 미워하게 되었습니다.

남들이 대학을 가도 대학에 대자 한번 입 밖에 꺼내 보지를 못하고

취업 전선에 뛰어든 연정이는 알코올중독자가 되어가는 아버지의 술값과

빚 갚는데 자신의 월급을 고스란히 갖다 바치다 보니,

어느덧 그녀도 결혼을 할 시기가 되었습니다.


연정이는 대학을 나오지 못했지만, 그녀를 사랑하던 남자는 4년제 대학을 우수하게 졸업한

대학 졸업자였고, 그의 집안도 부자라는 말에 연정이는 친정아버지가 싫고,

사는 게 지긋지긋한 마음 때문에 청춘도 없이 살아온 자신이 불쌍해서도

그녀는 스물일곱에 결혼을 했습니다.


똑똑하고 야무진 남편 덕에 연정이는 신혼이 지나서 얼마 안 되어

서울에서 아파트도 한 채 장만하고 살 수가 있었습니다.

결혼을 하고 삶의 여유가 조금씩 늘어나자,

연정이의 아버지를 향한 미움도 조금씩 누그러져갔고,

그녀의 꿈도 서서히 이루어져, 그토록 가고 싶던 대학도 진학할 수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행복한 결혼생활이 자신에게 이루 지던 어느 날,

그녀는 60세도 채 안 되신 아버지가 간암 말기라는 친정 엄마의 통보를 받게 되었습니다.


엄마는 아직 철이 안 든 동생들 셋이 초, 중, 고를 다니는 상황이다 보니

아버지의 병시중을 제대로 못하는 상황에 아버지는 원자력병원 암센터에 입원을 하시게

되었고, 연정이는 아버지를 급하게 시골에서 모시고 올라와 서울의 자기 집 아파트에서

하루를 모시게 되었습니다.


술과 마음의 고통으로 찌들 대로 찌든 아버지는 까만 얼굴을 하고 배에는 복수가 차서

둘째를 임신했던 자신의 배만큼이나 배가 불러있었습니다.

연정이는 둘째 아들을 낳은 지 겨우 한 달도 채 안 되어서 그런지 자신이 임신한 배보다

아버지의 복수 찬 배가 더 크게 부어 있다는 것이 믿을 수가 없었습니다.


빼빼 말라서 뼈만 앙상한 아버지는 배만 남산 만하고

너무나 야위고, 힘이 없어어 보였습니다.

그런데 그런 아버지의 손에 들려온 것이 있었습니다.


"얘야, 이거 너 산후풍에 좋다고 해서 아버지가 산에 가서 캐왔는데,

잔대라고 하는 거야.

잔대 뿌리가 옛날부터 약용으로 쓰였는데, 인삼과 에 속하기도 하지만,

얘를 낳고 난 여자들한테 아주 좋다고 하니 너도 달여서 먹어봐라,

둘째를 낳고 네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나 때문에 네가 또 신경을 쓸 것을 생각하니 내가 서울로 병원을 안 오려고 했는데,

네 엄마도 네 동생들 학교 보내랴, 농사 지으랴, 내 병원비 만들랴,

너무 정신이 없을까 봐서 내가 무조건 원자력병원 암센터로 입원한다고 했어.

넌 나 신경 쓰지 말고, 네 둘째 갓난 아가 잘 돌봐줘야지.

그리고 추운데 앉거나 눕지 말고, 이 잔대 푹 고아서 몸조리 좀 해봐라.

몸이 좀 많이 가벼울 거다. 그거 달여 먹고 나문"


아버지가 가져오신 잔대라고 하는 산나물은 뿌리가 작았지만,

산속에서 자라는 약용식물이라서 그런지 뿌리도 단단하고 향도 아주 좋았다.

그러나 연정이는 아버지의 뼈마디가 툭툭 불거져 나온 손가락 마디를 보자,

잔대를 건네주는 아버지의 손을 덥석 잡고, 눈물이 후드득 하고 그 손등 위에

떨어지는 걸 막을 수가 없었습니다.


"아버지는 피곤해서 일찍 누워서 잘란다. 너는 어서 그 잔대 삶어서 물 좀 끓여서

먹고, 이제 갓난아기도 있고, 돌 지난 큰애도 있으니 아비는 신경도 쓰지 말고

집안 일 하거라."


그녀의 아버지는 맹꽁이 같기도 하고, 남산만 하기도 한 배를 안고 헐떡이며 가만히

옆으로 누우셨습니다.

그러더니 어느 사이 스르르 잠이 드셨습니다.


사실 연정이는 둘째를 낳고 산후풍으로 몸이 너무 안 좋아서 걸음조차 걷기가 힘들고

조금만 일을 해도 온몸이 퉁퉁 부어서 얼굴도 홍시감처럼 물렁대는 느낌이 들고

통 입맛도 없어서 갓난아기에게 분유를 먹이거나 젖을 먹이는 일도

짜증이 날 지경이었습니다.


더구나 환갑도 지나지 않은 친정아버지가 자신과의 관계를 다 풀지도 못했는데,

죽음 앞에 서 있다는 것이 믿을 수가 없는 상황에 갑자기 서울로 병원을 오게 되자,

자신이 무엇부터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몰라서 당황하고 정신이 없어서

더 몸은 물속에 가라앉듯이 무거워져 가던 차였습니다.


그녀는 아버지가 캐온 잔대의 흙을 털면서 몸도 아픈 아버지가 산에 가서 이 잔대를

한 뿌리 한 뿌리 캐신 생각을 하니 수돗가에 흐르는 물보다 자신의 눈물이

더 많이 흐르는 것 같아 눈물을 주체할 수가 없었습니다.


연정은 잔대를 큰 주전자에 넣고 물을 가득 부어서 가스 불 위에 올려놓고

어린 아들 둘을 토닥여서 재운뒤,

아버지가 누워 계신 방에 들어갔습니다.

아버지는 무거운 배를 어쩌지 못해서 옆으로 누워 베개에 배를 받치고 주무시고

계셨습니다.


아버지의 숨은 거칠고, 가파른 계곡에 바람처럼 메마르고

싸늘했습니다.

그녀는 처음으로 아버지의 등을 쓰다듬어 주었습니다.

아버지의 등은 아직 따스한 기기 조금은 있는 미온의 체온이었지만,

어린 시절 자신을 업고 다니던 아련한 기억이 떠오는 그 따뜻한 등이었습니다.


연정은 아버지의 등을 쓰다듬어 주면서 갑자기 자신의 입에서

노래 한 구절이 흥얼거리듯이 나지막하게 흘러나오려는 것을 간신히 참아냈습니다.


연정이 속으로 부른 노래는 다름 아닌 가수 김종찬이 부른 '당신도 울고 있네요'의

한 구절이었습니다.

그녀의 입속에서 계속 맴도는 '당신도 울고 있네요.'라는 노래의 가사의 한 부분은

이것이었습니다.



.................... 중략

한때는 당신을 미워했지요.

남겨진 상처가 너무 아파서

당신의 얼굴이 떠오를 때면 나 혼자 방황했었죠.

..............................




연정은 대학 입시를 준비하는 친구들을 보며 고등학교 시절 내내 얼마나 방황을 했는지

모릅니다.

공부도 열심히 할 처지가 아니었던 시골의 가난한 농부 딸로 살면서 대학이라는 것은

꿈조차도 꿀 수가 없었으니

빚보증으로 전 재산을 날려버리고 가난한 시골 동네로 이사를 온 아버지가 한없이

미웠던 것입니다.

아버지가 읍내에서 공무원만 그냥 했더라도, 아버지가 할아버지가 물려준 재산만 남겼더라도

엄마 말대로 그래도 살만 했을텐테,

도시락도 싸가지 못하는 날이 많아서 배가 고플 때마다 맹물을 마시면서

친구들에게는 더 환하게 웃으며 난 살 빼려고 점심 안 먹는 거야 하고 거짓말을 하고

여학교를 다녔던 그때를 생각하면 아버지가 얼마나 원망스럽고 미웠는지......


결혼을 하기 전, 처녀 시절 이 회사 저회사에 말단 일을 하면서

밤이 새도록 일을 해서 모은 월급을 한 푼도 써보지 못하고

아버지 빚 갚는데, 술 마시는데, 동생들 학비에 써야 하는 상황이

너무나 힘겨워서 아버지에게 월급봉투를 내밀며

싸나운 소리를 지르고는 했던 자신이 이제는 한 없이 미워졌습니다.


"아버지........... 이제는 내가 싸나운 불도그처럼 소리치지 않을 테니

이번에 한 번만 이 병을 이겨보세요.

산에 올라가서 잔대를 캐올 힘이 있으면

아버지도 이 암을 이겨낼 수도 있을 거예요.

내가 뭘 했다고.......

죽을 지경인 사람이 그걸 캐왔데요."


연정은 그날 밤 아버지의 등을 쓰다듬어 주면서 밤새 간이 저리도록 처음으로

아버지 때문에 울었습니다.

어린 마음에 아버지를 미워하고 원망했던 그 마음을 회개하며 울었고,

또 이제 아버지에게 남아 있는 시간이 얼마 되지 않는다는 것 때문에

안타깝고 괴로워서 울었던 것입니다.


그러면서 그녀는 어쩌면 아버지도 밤새 울고 계실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습니다.

젊은 시절, 읍내에서 제일 똑똑하다는 소리를 듣고 공무원 시험에 일등으로

합격해서 누구 못지않게 스스로를 자랑스럽게 여기던 날들,

그리고 다섯 자식을 두었지만, 아직은 어린 세 남매를 땅 한뙤기 없는 시골에

아내와 함께 두고 가야 하는 현실이 얼마나 막막하실지......

그리고 암의 고통으로 자신의 육체와 영혼을 갉아먹는 고통스러운 생의 끝자락에서

자신이 무얼 붙잡아야 살아날지 모를 이 암울한 현실이

아버지는 얼마나 두려울까, 그리고 무서우실까,

그리고 낯선 암병동에서 혼자서 어떻게 암과 싸워야 하실지....

아버지는 어쩌면 그런 고통스러움이 몰려와 지금 한숨도 못주무실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연정의 아버지는 원자력병원 암센터에서 일 년이란 짧다면 짧고 길다면 시간을

투병을 하시고 세상을 하직하셨습니다.


연정은 가을이 올 때면 잔대를 한 주먹 캐서 흙이 마르지도 한 은채 신문에 둘둘 말아서

간암으로 복수가 차 숨을 헐떡이면서 그걸 딸내미 손에 올려 주시던 그 친정아버지를

잊을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그녀는 아버지의 산소에 가는 날이면

'당신도 울고 있네요'란 노래를 다시 웅얼 웅얼거리며

눈물을 흘립니다.



한때는 당신을 미워했었죠.

남겨진 상처가 너무 아파서

당신의 얼굴이 떠오를 때면 나 혼자 방황했었죠.

당신도 울고 있네요.

잊은 줄 알았었는데,

옛날에 옛날에 내가 울듯이

당신도 울고 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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