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 널 위하여 기도하네

고아원에서 드리는 주일 예배

by 권길주

당신이 지쳐서 기도할 수 없고

눈물이 빗물처럼 흘러 내릴 때

주님은 아시네 당신의 약함을

사랑으로 돌봐주시네


당신이 지쳐서 기도할 수 없고

눈물이 빗물처럼 흘러 내릴 때

주님은 아시네 당신의 약함을


사랑으로 돌봐주시네


누군가 널 위하여

누군가 기도하네


네가 홀로 외로워서

마음이 무너질때


누군가 널 위해 기도하네


당신이 외로이 홀로 남았을때

당신은 누구에게 위로를 얻나


주님은 아시네 당신의 마음을

그대 홀로 있지 못함을


누군가 널 위하여

누군가 기도하네


네가 홀로 외로워서

마음이 무너질 때


누군가 널 위해 기도하네


조용히 널 위하여

누군가 기도하네


네가 홀로 외로워서

마음이 무너질 때


누군가 널 위해 기도하네




마음이 힘든 날에는 유튜브에서 'Gina' 찬양 연속 듣기를 찾아서 내가 좋아하는 지나 사모님의

피아노 반주와 찬양을 듣는다.

어린 아기를 침대에 뉘어 놓고 빗소리가 들리는 주황색 기와 지붕 아래서 사모님은 청아하고

맑은 목소리로 영혼이 움직이는 찬양을 한다.


코로나가 극심하던 때에 세종에서 나는 코로나로 교회에 기도도 갈 수 없고,

사람은 아무도 만날 수 없던 날들

어느 때는 거의 하루 종일 지나 사모님의 찬양을 들으며 내 마음을 위로하기도 하고

혼자서 골방 기도를 하며 두렵기도 하고 막막하기도 한 그 시절을 보낸 적이 있다.


뒤뚱거리는 두살 쯤 보이는 딸을 안고 찬양을 부르기도 하고

작은 요람에 갓난 아기를 뉘어 놓고

기도하듯 찬양하는 지나 사모님의 찬양은

수 많은 영혼을 치유하였으며 지금도 치유하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 오늘은 지나 사모님의 찬양을 들으며 글을 쓰려니 문득 저렇게 엄마의 피아노와 기타소리,

그리고 아름다운 곡조가 있는 찬양을 듣고 자란 저 아기들은 얼마나 행복할까를 생각해 보았다.

그리고 오늘 고아원에서 본 한 아이가 자꾸만 떠오르는 것은 ....... 왜 일까?


그 아이는 중학교 1학년 남학생이다.

그 아이가 무슨 사연으로 고아원에서 살고 있는지는 나는 전혀 모른다.

그런데 나는 그 아이와 오늘 두번째의 만남이 있었던 것이다.

내가 지금의 고아원이 있는 교회에 나간지 몇달이 않되었던 여름이였다.

유난히 덥기도 한 여름날, 나는 간절한 두가지의 기도 제목을 가지고 일주일에 한 두번 씩

낮에 택시를 타고 교회를 달려 갔었다.


그날도 기도를 마치고 나는 택시를 타기 위해 고아원 마당을 지나서 천천히

도로가 있는 곳으로 걸어 나왔다.

그때 저 앞에서 그 아이가 학교를 마치고 걸어오고 있었다.

아이는 날 보더니 교회에서 얼굴을 자주 봐서 인지 밝게 웃으며 인사를 했다.

난 반가운 마음에 편의점에서 과자를 사줘도 되냐고 물었다.

아이는 흔쾌히 그러라고 했고, 우리는 신호등을 건너서 편의점에 갔다.

가까이에서 보니 그 아이는 무척 밝고 의젓한 부분이 있는 중학생이였다.


아이라기 보다는 소년이 맞을 것이다.

그러나 여기는 아이라고 말하고 싶다.

"성도님은 교회에서 무슨 기도 하고 가시는 거예요."

하고 아이가 물었다.

난 웃으며

"응 하나님께 나 다시 학원하게 해달라고 기도했지."

하고 나는 나의 기도 제목 중에 일부를 말해줬다.

사실 난 다시 세종에서처럼 아이들을 가르치고 싶은 마음이 너무 간절해서

논술이나 스피치 학원을 다시 하게 해달라고 간구하던 터였다.


하루 종일 시골마을에서 할머니 몇분과 어쩌다 만나는 옆집의 화가 말고는

대화가 통하는 사람은 아예 없는 시골 생활이 견딜 수가 없었고,

학생들을 만나는 걸 너무 좋아하던 내가 아이들을 만나는 통로가 꽉 막히고 나니

나는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이 얼마나 소중한가를 새삼 느끼고 있었기에

부모님의 병간호도 어렵지만, 어떻게든 내 일을 다시 찾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어쩌면, 나는 시골 생활 중 가장 힘든 건 소설가로 글을 쓰지 못하는 것 보다는

내가 사랑하던 제자들을 잘 만날 수 없고, 또 그런 가르침의 통로가 막힌 것에 대해

작다면 작은 논술 교습소를 세종에서 잘 운영하지 못한 자신에 대한 회의와 자책이

말도 못하게 크기도 했다.


편의점에서 컵라면 한개와 감자칩 한개를 고른 아이는 더는 필요가 없다며 이거면 충분하다는

듯이 웃었고, 나는 짧은 금식이지만, 금식 기도가 끝난 시점이라서 호박죽과 전복죽 한개를 골랐다.

우리는 편의점 앞에서 헤어져 나는 집으로 왔고, 그 아이는 고아원으로 가는 방향으로 걸어갔다.

나는 아이에게 몇번이나 손을 흔들었다.

그리고 우리는 매주 교회에서 얼굴을 보면 그 아이는 나와는 조금은 친해진 듯한 표정으로

날 반겨줬다.


나는 고아원의 아이들과 친해지고 싶었지만, 우리는 그렇게 쉽게 친해지지는 않았고,

나는 이제 내가 나이가 많으니 아이들이 나를 잘 따르지도 안거나,

아니면 내가 아이들에게 아무 영향력이 없는 무능한 사람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기도 해서

그저 초라한 내 모습에 몇달 동안 마음 한켠이 힘든적도 많았다.

구체적인 대화가 어려우니 대다수의 아이들하고 인사만 하고 지내는 것이 아쉽기도 하고

나도 부모님 때문에 늘 교회에서 긴 시간을 보내지를 못하고 예배를 드리고 바로 집으로

오는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오늘은 아이들에게 줄 선물을 좀 한 두개라도 마련해서 가고 싶었는데,

어쩌라구 내 주머니에는 돈이라고는 만원짜리 한 장뿐이였다.

그런데 다행스럽게 엊그제 여동생이 영화 보라고 준 문화상품권이 두장이 있었다.

그래서 난 예배에 가기 전에 교회에 가서 맨 먼저 만나는 아이에게 이 두장을 다 줘야 겠다고

생각을 하고 일찍 교회로 향했다.


노란 은행나무 두 그루가 교회와 고아원 사이 마당가에서 진노란 빛깔로 하늘을 향해

두 팔을 벌려 황금빛 빛을 쏟아 내리듯 아름드리 서 있었다.

교회 문을 일찍 열고 들어가니 뜻밖에 아동실에 그아이와 다른 여중생 그리고 어린 초등학생 한명 이렇게 셋이서만 모여서 놀고 있었다.


그리고 예배실 안에서는 전도사님이 찬양 인도를 하시며 찬양 연습이 한창이였다.

난 아이들에 활짝 웃으며 핸드폰 사이에 끼워둔 문화 상품권 만원짜리 두장을 꺼내서

그 아이와 다른 여학생에게 한 장씩을 나눠주었다.

아이들이 너무 좋아했다.

작은 선물이였지만, 아이들에게는 반가운 선물이였나보다.

그리고 마침 고아원 원장님이 지나가시다가 보시고는 고맙다고 인사까지 하시니 너무 민망하기도 했다.


그런데 난 오늘 그 아이에게 예배가 끝나고 더 큰 선물을 받게 될 줄은 정말 몰랐다.

우리 교회는 예배가 끝나면 떡과 과자, 음료수로 점심을 대신한다.

친한 교인 둘과 나 이렇게 셋이서 교회 의자에 둘러 앉아서 떡과 과자를 먹으며

담소와 은혜를 나누고 있는데, 얼마후 그 아이가 날 찾아왔다.

그러더니 그 아이는 양쪽 주머니에서 과자를 꺼내기 시작했다.


수줍고 겸연쩍은 표정으로 아이는 남학생 특유의 아주 멋적인 웃음짓더니

"이거 더 드세요," 하고는 쌀과자 두개를 내 손 위에 올려 주었다.

그 두개의 쌀 과자 속에는 아이의 고맙다는 표현과 우리가 이제는 조금은 더 친해졌다는

그런 마음이 들어 있었다.


갑자기 마음 한켠이 뭉클거렸다.

아, 이 아이들은 늘 사랑을 갈구하는 아이들이구나.

하는 생각과 함께 고아로 자란 내 아버지가 요즘 말기암이 발명 후 조금만 섭섭하게 해드리면

자꾸만 눈가에 눈물이 맺히는 것이 오버랩 되었다.


어린 시절 그리고 사춘기에 부모님의 사랑을 충분히 받고 자라지 못한 아이들이 갖는

외로움과 고독은 어쩌면 평생을 갈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아버지도 3살때 엄마가 떠났다고 했다. 할아버지가 할머니를 친정으로 쫒아냈다고 하니

이유야 똑똑하고 잘 난 할아버지가 답답한 할머니랑 살 수 없어서 라고 하지만........

그게 말이 되는가?

부잣집 무남독녀 외동딸이였다는 내 할머니는 식모까지 데리고 시집을 왔으나

밥도 할 줄 모르고, 청소니 빨래니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이 살았으니

그 당시 무역상을 하시던 할아버지는 외국을 드나들 정도였으니

얼마나 답답하고 숨통이 막혔을지 한켠으로는 이해가 가지만

아무튼 내 아버지는 세살에 엄마를 잃어버린 고아가 되었고,

아내를 쫒아낸 할아버지는 아버지가 8살 되던 초등학교 1학년때 전염병으로 세상을 떠나셨다고 한다.


그래서 내 아버지는 할머니 손에서 자라면서 할머니가 당시 천주교인이셨는데, 그 할머니의 눈물의 기도와

한숨 소리를 듣고 자라다가 할머니가 돌아가시자, 작은 아버지와 작은 엄마 밑에서 고아로 자라셨다고 한다.

그래서 아버지는 할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셔서 초등학교도 다니다 마셨다며

고아로 자란 어린 날의 설움과 배고픔을 자주 말씀 하셨다.


88세가 되셨어도 늘 어린 시절의 배고픔은 아직도 아무리 배가 불러도 그 때 쌀밥 한번 실컷 먹는게

소원이였다는 얘기며, 친구들이 학교 갈때 문 앞에서 엄마가 배웅하는 친구를 보면 괜히 화가 나서

나무 가지로 친구를 때리기도 했고, 학교에 가기 싫어서 뒷동산에서 혼자 하루 종일 놀기도 했다고 한다.


어린 시절에 환경이 주는 불행이 평생 내 아버지를 외롭게 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나와 형제들은 그걸 다 헤아릴 수가 없었다.

우리에게는 늘 아버지 어머니가 계셨기 때문이고 지금은 아프시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는 장수를 하시는 연세까지 살아계시니 ....

우리 사남매는 고아들의 심정을 잘 헤아릴 수는 없는 것이다.


아버지는 말씀하신다.

한국전쟁도 치르고, 배고픈 시절도 다 치르고, 손바닥에 피가 나도롣 과수원도 일궈보고,

집도 내가 직접 다 지어도 보고 해서 이렇게 우리가 잘 살던 적도 있는데,

난 배우지 못한 설움이 가장 컸다고.


초등학교도 다 졸업을 못한 내 아버지.

어찌 어찌하여 미군 부대에서 군생활을 하게 되었을때 하루는 고참이 넌 머리가 거의 천재 같은데

이렇게 좋은 머리로 어떻게 중학교도 못나왔냐고 깜짝 놀랬다고 한다.

내 아버지가 머리가 좋고, 좀 특별한 사람인거는 인근의 모든 사람은 다 안다.

그러나 어린 시절의 내 아버지는 불운한 부모님 때문에 가난한 작은 아버지 밑에서 동네의 큰 말썽꾸러기로

자랐다고 하니 .... 사람의 인생 여정을 누가 어찌 알랴.


그래서 그런지 아버지는 자신이 나약지거나 힘들어지면 유난히 가족들의 눈치를 많이 살피시고

마음이 조금만 상하거나 어려운 일이 있으면 혼자서 밤새 끙끙거리시는 편이고,

눈물도 많으신 편이다.


난 그 아이가 내 손에 쥐어 준 쌀과자 두개를 한 참을 보며

이 아이는 내 아버지처럼 연약한 어른이 아닌 더 강하고 더 힘있고,

누구보다도 좋은 인격과 능력을 갖춘 남자다운 남자가 되길 기도한다.


그 아이는 잘 모를 거다.

내가 그 여름날 편의점에서 한 걸음 그 아이와 친해지던 날부터 나는 고아원의 다른 아이들 보다는

그 아이를 더 기도하고 있었다는 것을.....

그건 우리가 잠시라도 친해졌다는 이유라는 것을.....


그 아이도 내게 오늘 쌀 과자 두개를 호주머니에서 꺼내 준 것은

그 아이도 나와 조금은 친해졌다는 표시일 것이다.


우리는 가끔씩 사랑을 사랑이라 말하지 못할 때가 있다.

나와 내 형제들이 요즈음 아프신 부모님을 돌보면서 하는 행동들이 그럴 때가 많다.

엄마가 뇌경색으로 쓰러지신지 4년이 되어가다 보니 서로 지치기도 하고

요양병원이나 요양원은 절대 못간다고 화를 내거나 우시는 부모님의 보면

아, 하고 막막한 한숨과 고통이 내 속에서도 흘러나온다.

그럴때마다 부모님를 때때로 섭섭하게 해드린 적이 한 두번이 아니다.


오늘도 그런 날 중에 하루였다.

아니, 내일도 그런 날 중에 또 하루가 올 것이다.

그럴때마다 나는 지나 사모님의 '누군가 날 위하여'를 들으며 또 마음을 다독일 것이다.

그리고 그 아이를 위해서도 또 아무도 모르게 나도 기도해 줄 것이다.


그 아이가,

그리고 내 아버지, 어머니가

눈물이 빗물처럼 흘러내릴 때

그때 나는 그들을 위해 기도해줘야 할 것이다.


그리고 나 역시 지쳐서 기도할 수 없는 날

누군가는 날 위해서 기도해준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가.

그래서 기도는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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