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개는 첫 기차가 오는 시간에 장항선 완행열차가 서는 간이역을 향해 걸어갔다. 오랜만에 기차를 타고 싶기도 했고 작년 가을에 오가역에서 한참을 더 들어가서 어떤 젊은이 집에서 며칠 동안 고구마도 캐주고, 가을 땡볕에 고추도 따주면서 밥을 얻어먹었는데, 그 집에 젊은 남편이 폐병이 들어서 객혈하던 기억이 났기 때문이었다. 더군다나 어젯밤에 그 집에 젊은 남편이 꿈에 보였기 때문에 혹시나 돌아가신 것은 아닌지 궁금했다.
이마가 훤하고 키가 훤칠한 젊은 남자는 얼굴이 백지장처럼 하얗는데, 동네 사람들은 ‘폐병쟁이’라며 그 집 앞에도 지나가는 것을 꺼려했다.
그 젊고 병든 남자는 방개에게 자기 대신 가을걷이를 해줘서 고맙다고 연신 고개를 숙였었다.
“고마워, 방개야, 네가 안 왔으문 우리 집은 올가을 추수를 못했를 거여. 우리 마누라 혼자 어떻게 저 많은 논밭 추수를 했겄냐? 네가 한 동네서 살면서 농사 같이 짓는 우리 사촌 형보다 낫고, 서울서 대학 나와서 학교 선생 하는 내 친동생들보다 나아야. 내가 이러고 병들어 누워 있어도 폐병이라고 형제들도 잘 와보지도 않아. 이 병은 옮은 병이라서 사실 아무도 우리 집에 발길도 할 수도 없구. 내가 얼른 죽어야지 어떡한다냐, 내 새끼들은 객지로 내보냈지만, 우리 마누라도 저렇게 혼자 고된 일만 하다 이 병 옮으문 끝장인디. 이 질진 목숨이 누운 지가 벌써 3년인디 죽어지질 않는구나.“
젊은 남편은 대청마루에 겨우 나와 앉아서 햇빛에 쬐다가 마당에서 빨갛게 익은 고추를 지게에 높이 쌓아 올려 지게가 기우뚱거리게 지고 들
어온 방개를 붙잡고 미안함에 푸설을 늘어놓았다.
때 국물에 땀이 흘러내리는 얼굴을 걸레로 닦아내며 방개는 겸연쩍게 웃었다. 그의 진심이 방개에게도 전해져서 방개는 뿌듯한 마음으로 답변했다.
“아 아픈 사람이 그런 걱정을 하신데유, 지 지가 아줌마 일 하시는 거 거 거들어 들일께 걱정 마시구 몸 챙겨유우, 피 피 토하지 마시구유 우.”
“방개야, 내가 죽어두 네가 와서 내 안사람 일 좀 자주 거들어 주거라, 누가 우리 집에 머슴으로 올 수도 없고, 형제들은 다 배운 것들이라서 조상 대대로 물려온 이 농토를 지킬 사람이 없어야, 그러니 우리 마누라 혼자 이 많은 농사 다 지을 수도 없고, 남도 지 좀 주고 나머지는 우리 안사람이 혼자 농사를 지어야 해. 그러니 방개야 네가 다른 동네 돌아다니다 가도 우리 집 좀 자주 와서 우리 집 농사 좀 거들어라. 너야 원래 떠돌아다니는 사람이긴 하지만, 우리 집은 아래에 사랑채도 따로 있으니까 네가 거기서 잠을 자도 돼. 그럼 우리 안사람이 밥은 푸지게 줄 거야, 고기도 한 번씩 줄 거고. 너두 알지만 우리 안식구는 마음이 아주 부드러운 사람이지. 불쌍한 사람 잘 도울 줄도 알고, 더구나 교인 아니니. 이 동네 교인 중에서 제일 착할 거다.”
젊은 남편은 간곡하게 방개에게 훗일을 부탁했다. 그는 방개가 일도 잘하고 예의도 좀 아는 사람이란 것 때문에 아무리 바보 같고 조금은 모자라는 구석이 많을지라도 방개라면 자기 아내의 일을 거들어 달라고 부탁해도 아내가 아무런 해를 받지 않으리라고 생각을 해두었다.
더구나 방개가 십 수 년을 이 충청도 인근을 떠돌아다녀도 그가 아녀자를 폭행했다거나 남의 집 아내를 넘본 일은 아직은 소문에는 전혀 없는 일이었기에 그는 방개에게 자기 집 논, 밭일을 부탁을 한 것이다.
방개의 마음에도 어떤 때는 보고 싶은 사람도 있고, 그리운 사람도 있었다. 때때로 외로울 때도 있었다. 그러나 그는 혼자서 돌아다니는 사람으로 살다 보니 누구도 그의 그런 마음을 헤아려주지는 않았다. 그래도 이 마을 저 마을을 떠돌아다니다 보면 종종 반겨주는 어르신들이 많아서 외롭고 고달픈 마음들이 봄날에 마른 먼지처럼 날아가 버렸다.
오가역에 도착하니 초라한 간이역은 사람도 없이 쓸쓸하고 한가하기만 하다. 기차표도 없이 내리는 방개를 본 역무원이 힐끔 방개를 보더니 일종의 개구멍으로 나 있는 길로 방개가 도망치듯 사라지는 걸 못 본 척하고 봐준다.
방개는 늘 그런 식으로 기차를 타고 다녔다. 기차를 탈 때도 무임승차요 내릴 때도 무임승차다. 그러나 대부분의 역무원은 거지이면서 바보나 진배없는 방개를 잡아다 어찌할 방도는 없었다. 알아서 몰래 일명 개구멍이라고 하는 기차역의 무임승차 자들이 도망 다니는 길로 그가 도망을 치면 어이없는 표정을 지으며 그 단정한 철도 역무원의 반듯한 사각모 같은 모자의 챙을 올렸다 다시 내릴 뿐이었다.
방개는 오가역에서 벗어나 젊은 ‘폐병쟁이’ 집을 향해 한참을 아침 봄 길을 걸었다. 길옆에 냉이와 쑥들이 겨우내 땅속에서 온몸을 저항하듯이 땅을 뚫고 올라오고 있었다.
그런데 멀리 보이는 젊은 ‘폐병쟁이’ 집에 이상하게 마당에 천막이 처져 있고, 초상집에서나 볼 수 있는 흰 치마저고리를 입은 여자 상주와 베옷을 입은 상주들이 이리저리 돌아다니고, 사람들이 상복을 입고 돌아다니는 모습이 보였다.
방개의 눈에서 눈물이 툭 하고 땅바닥에 떨어졌다. 그 잘생기고 이마가 훤한 젊은 남편이 죽은 것이 분명했다.
“방개가 또 여기 초상집은 워턱게 알구 왔다냐”
“방개가 초상집마다 모르는디가 어디 있어. 이 충청도 인근에 잔칫집, 초상집은 방개가 다 찾어 다니는디.”
“허긴, 밥 얻어 먹으러 다닐 띠가 요새 세상에 잔칫집이나 초상집밖에 더 있어. 그러니 방개 너두 참 팔자는 좋구나. 우리 같은 사람은 먹구 살기 힘들어두 밥 얻어먹을 디두 마땅치 않은 세상인디”
“그럼, 그럼 방개야 말루 바가지 하나만 가지구 돌아다니문 온 천지에서 다 밥을 빌어먹으니 장땡이지 뭐. 밥 안 주문 일해주구 얻어먹구, 초상나면 초상집 가서 얻어 먹구, 잔치나면 잔칫집 가서 얻어먹구 , 조선팔도 최고 상팔자가 방개 팔자지 뭐”
초상집 마당을 들어서자 온 동네 아녀자들이 방개의 출현을 놓고 신나가 입방아를 찢듯이 떠들어 댔다. 젊은 남자가 폐병으로 죽어서인지 초상집에 사람이 별로 없었다. 안방에서는 연신 젊은 남편의 아내가 슬피 우는 소리가 들렸다.
방개는 방안을 기웃거리며 마당을 서성댔다. 배는 고팠지만, 마음에 슬픔이 올라와 무얼 먹고 싶지도 않았다. 죽은 자가 누워 있는 안방에는 신기하게도 성경책과 십자가가 조그만 상 위에 얹어져 있었다. 다른 초상집에서도 가끔 교인이 죽으면 그렇게 죽은 사람 옆에 그가 보던 찬송가와 십자가를 놓고 예배를 드리는 걸 본 적이 있긴 했는데, 이 집에도 아내가 교회를 다닌다고 했는데, 아마 남편도 교인이었던가 보다.
열어 놓은 방문 사이로 기웃거리는 방개를 본 젊은 아내가 울던 울음을 그치고 나오더니 인사를 했다.
“방개 왔구나, 문상하러 와 줘서 고마워. 들어가서 우리 남편한테 인사하구 나와. 그렇지 않아두 우리 남편이 네 얘기 많이 했어. 천국 가기 전에, 들어가 봐 반가워하실 거야.”
“지 지가 들어가두 되나유, 나 같은 것이 들어가문 친척들이 혼내유, 동 동네 사 사람들도 혼내구유.”
“아녀, 들어가, 내가 들어가라구 하잖아, 우리 신랑이 너 보고 싶다구 했어. 그리구 오문 밥 많이 주라구 당부두 했구. 인사하구 나와서 밥 먹구, 우리 집 초상 일 치르는 거 네가 좀 도와주구. 내가 밥상 차려 놓을 테니 얼른 들어갔다 나와라.”
젊은 남편은 얼굴이 전혀 죽은 사람 같지 않았다. 방개는 초상집이란 초상집은 거의 찾아다니면서 밥을 얻어먹고, 온갖 궂은일은 도맡아 했기에 죽은 사람들의 얼굴도 무척이나 많이 보았는데, 이상하게 얼굴이 환하거나 온화한 표정으로 죽은 사람이 있었고, 너무 무서워서 꿈에 보일까 하는 험한 얼굴을 하거나 온몸이 꼬이듯이 아주 흉측한 몰골로 죽은 사람들도 있어서 그는 아무래도 천국 간 사람과 지옥 간 사람이 따로따로 있다면 이 젊은 남편처럼 얼굴이 천사같이 환하게 핀 얼굴을 하고 죽은 사람은 천국을 간 것이라고 그는 믿고 있었다.
“에휴, 젊은 아저씨 천 천국 같구먼유, 아주 좋은디 같으니 다 다행이유, 아프지두 않구유. 젊은 양반이 피 피도 많이 토해서 불쌍혔는디”
방개는 스스럼없이 안방에 길게 누워 있는 젊은 남편의 죽은 몸을 가만히 만져보았다. 몸은 차가웠지만, 어딘지 모르게 아주 깨끗한 물처럼 그의 몸이 맑았다. 그리고 그의 얼굴은 한마디로 최고의 미남 배우같이 이마는 훤하고 눈코입이 아주 정교하게 짠 조각품 같다. 아깝다. 방개의 마음에 그 마음이 든 것도 잠깐이었다. 그가 읽던 성경책을 보니 성경책이 아주 나달나달하게 닳아 빠져 있다. 죽기 전에 성경책만 본 것 같다는 생각이 확실하게 들면서 누워 있는 그가 예수님처럼 젊어 보인다.
언젠가 방개에게 시골에 어느 교회 목사님이 예수님은 삼십 대에 돌아가셨다고 가르쳐 준 것이다. 예수님은 그리고 죽음을 이기고 부활했다고 하던데, 부활이란 말은 방개가 알아듣기에는 전혀 무슨 뜻인지 모를 말이었다. 다시 살아나는 거라고 목사님은 가르쳐 줬는데, 방개가 생각하기에 자기가 여지까지 초상집을 다니며 죽은 사람을 몇 십 명 은 봤지만, 죽었던 사람이 다시 살아 난 것은 한 번도 본적이 없었다. 그러니 예수님이란 총각이 죽었다가 부활해서 다시 살아났다는 얘기는 아무래도 옛날이야기가 아닐까 방개는 생각하며 그 목사님의 이야기를 들었던 적이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방개를 교회에 오라고 말하는 교인도 목사님들도 별로 많지는 않아서 방개는 일요일에 교회 주변을 서성대다 밥을 얻어먹은 적은 자주 있어도 예배당 안에 들어가서 목사님의 설교를 제대로 들어본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그러나 방개를 불쌍히 여기는 목사님들은 많았다. 그리고 그에게 먹을 것과 입을 것을 주는 교회도 종 종 있었다. 그리고 방개가 좋아하는 목사님도 몇 명 있었다.
젊은 남자는 죽은 원인이 폐병이라 그 병은 전염이 된다고 하여 동네나 친척의 문상은 별로 많지를 않았다. 그러다 보니 초상집에서 심부름할 사람은 방개 말고는 거의 없었다. 방개는 산에 가서 나무도 해도 주고, 마을 우물에 가서 물도 지게에다 져서 한가득 실어다 커다란 항아리에 쏟아 부었다. 그리고 시신이 누워 있는 안방에 가서 청소도 매일 해 주었다. 사실 폐 병균 때문에 친척들도 그 방에는 드나들기를 싫어했지만, 방개는 스스럼없이 드나들며 피고름이 나오는 시신을 깨끗이 닦아 내고 더러워진 걸레를 가지고 나가서 불에 태우기도 하고, 초상집에 궂은일은 다 도맡아서 해주었다.
그래도 방개의 마음은 즐겁고 기쁜 것은 왜일까? 방개는 많은 초상집에 다니면서 이런 일 정도는 언제나 하던 일이었다.
초상집에 가서 밥을 실컷 얻어먹으려면 이 정도 일은 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상주들한테 쫓겨날 때도 있고, 동네 사람들한테 쫓겨나는 경우도 종종 있는 일이었다.
그러나 방개가 장례를 치르고 난 시신의 이불이나 옷가지들을 가지고 동구 밖에서 불에 태우는 일이라든지, 시신이 누워 있던 방에 더러운 피고름과 악취가 나는 살점이 썩은 부산물들을 치우는 일을 거뜬히 해주는 것은 다 알려진 일이라서 그런 방개를 써먹는데 요량이 있는 사람들은
그에게 적당히 먹을 거를 주고는 장례식이 끝날 때까지 그렇게 온갖 허드렛일을 시켰었다.
초상집이 조금은 썰렁해서인지 동네 남정네 몇 명이 거나하게 막걸리를 마시고 취해 있었다. 그때 술 때문에 혀가 꼬부라진 투로 말을 하던 중년의 남자가 큰 소리로 방개를 불렀다.
“야 방개야, 너 방개타령 한번 해봐라. 초상집이 어째 썰렁하니 내사 맴이 안 좋타. 너 잘하는 방개타령 한번 들어보자.”
마당에 펼쳐진 술상과 부침개 지지는 냄새에 취해서 방개는 사내의 청을 마다하지 않고 돼지 멱따는 소리 같은 소리를 내며 노래를 불렀다.
그런데 그 노래는 음정 박자는 제대로 안 맞아도 어딘가 사람의 마음을 즐겁게도 해주고 신명도 나게 하면서 슬픈 노래였다.
“그럼 지가 장 장타령 한번 해볼께유.
작년에 왔던 방개가 죽지도 않고 또 왔네,
얼씨구 씨구 씨구 돌아간다, 절씨구 씨구 씨구 돌아간다.
안은 고리는 동구리, 선 고리는 문고리
뛰는 고리는 개구리, 옹달샘에 쌀방개
금빛 같은 쌀방개, 둥실둥실 잘두 논다.
오라는 집은 없어두 갈 집은 많다
문전걸식 열 집에 허기진 배를 못 채우고
작년에 왔던 방개가 죽지도 않고 또 왔네.
방개의 장타령은 초상집의 슬픔과 눈물을 순식간에 추운 겨울 마당에 모닥불처럼 어느 사이 그 집의 분위기를 따스하게 만들었다. 방개타령은 누군가 방개에게 재미나게 붙여준 타령인데 그것이 방개의 노래가 된 지는 꽤 오래돼서 사람들은 방개가 그 노래를 부르는 것을 아주 좋아했다. 어느 때는 방개에게 그 노래가 듣고 싶어서 방개를 불러 잔칫집에서 술과 고기를 주는 일도 있었던 것이다.
“방개야 미안하구나, 너무 험한 일을 시켜서”
방개는 시신이 머물렀던 안방을 깨끗하게 청소하고, 그가 덮고 있던 이불과 요를 다 산 아래 공터에서 태우고 오는 길이었다. 폐병균이 혹시나 옮지는 않았나, 걱정이 되는 젊은 아내는 방개에게 미안한 마음이 솟구친다.
젊은 아내가 떡과 고기가 가득한 저녁 밥상을 내주며 배시시 겸연쩍은 웃음을 웃는다. 친척과 동네 사람 몇이 조용히 장례를 치른 집안은 썰렁하기까지 했다. 어린 자녀들도 폐병에 옮을까 싶어 읍내의 친척 집에 데려다 놔서인지 아이들도 친척들과 가버리고 방개와 젊은 아내 둘만 그 집에 남았다.
방개도 저녁만 먹고 이제 이 집을 떠나야 한다. 젊은 여자가 혼자 상주로 있는 집에 잘 곳도 없고, 눈치도 보이니 어디로든 다시 길을 떠나야 하는 것이었다.
“방개야, 내가 저 사랑채 방 대충 치워 놨으니께, 며칠 동안만 내 집에서 머물다 갈 수 있겠냐?”
“지 지가 방에서 자두 됀다구유”
“그럼, 방에 들어가서 자두 돼. 그동안 우리 집 초상 치르는데 네가 공도 많았고, 나도 당장은 혼자 있는 게 조금 무서우니께 네가 집 좀 지켜주고, 내 신랑이 하던 일 중에 제일 큰일이 산에서 나무 해주는 일이었는데, 내가 그거는 잘 못 하것어. 그러니까 네가 산에 가서 나무 좀 해다 날러다 주고 너 가고 싶을 때 가면 좋겠어. 내가 밥은 후덕하게 먹여 줄게. 혹시나 돈을 좀 달라고 해도 내가 줄 터이니 말여.”
방개에게 방이란 공간은 너무나 호사스러운 곳이었다. 그가 언제부터 방 안에서 잠을 안자고 하늘이 보이거나 겨우 비나 눈만 가리는 정도의 공간에서 온기도 없이 잠을 잤는지는 본인도 기억하질 못했다.
마을에서 어느 정도는 살만했던 젊은 아내의 집은 작기는 하지만 한옥으로 아담하게 지어진 오래된 집이었다. 방개는 그 집의 사랑채에서 잠시 살게 된 것이다. 방에 들어가니 옷걸이 하나가 벽에 걸려 있고, 살림살이는 아무것도 없었다. 그래도 방개는 방이란 공간을 들어와 잠을 자고 그곳에서 밥을 먹는다는 것이 눈물이 날 지경이었다. 방개는 두 다리를 쭉 뻗고 대자로 누워서 천장을 바라봤다. 그리고 생각했다. 여기가 천국이라고. 방개는 그 생각을 하다가 까무룩 하고 잠이 들었다.
방개는 그렇게 젊은 과수댁이 된 그 젊은 아내가 내준 사랑채에서 그 봄이 다 가고 여름이 올 때까지 산에서 나무도 해다 주고 논에 가서 모도 심고, 소를 끌고 밭에서 쟁기질도 해주었다.
젊은 아내는 야무지게 남은 인생을 준비하는 여자였다. 새벽이면 교회에 나가 기도하고 아침빛이 환하면 돌아와서 온종일 방개와 함께 일했다. 그리고 어느 날엔 읍내 친척 집에 맡긴 아이들도 셋 다 데리고 와서 학교를 보냈다. 아이들은 하나 같이 똘똘했지만, 여느 얘들처럼 짓궂기도 했다.
“방개야, 방개야, 아이 냄새나, 저 아저씨 냄새나 엄마.”
“그런 말 하면 못 쓴다고 했지, 아저씨는 착한 사람이야. 목욕을 잘 안 해서 땀 냄새가 나서 그래”
“방개는 방구도 아무 데서나 북북 뀌고, 방개는 방구쟁이야 엄마”
“방개는 방구쟁이래요, 방개는 똥싸개래요.”
아이들은 학교에서 돌아올 때면 동네 아이들과 함께 늘 방개를 놀려댔다. 방개가 동네에 아이들에게 놀림을 당하는 것은 하루 이틀의 이야기가 아니다. 어느 동네에서나 있는 일이다.
방개는 젊은 과부의 집에서 한여름 쯤 그 사랑채를 나왔다. 한곳에 오래 있으면 주인에게 무언지 모르게 미안하고 눈치가 보이기도 했고, 어느 때는 그 집에서 나와야 할 자기만의 이유가 있어서도 방개는 한 집에서 오래 일하거나 머물지는 않았다.
새벽기도를 마치고 오는 젊은 과부보다 먼저 방개는 그 사랑채에서 입은 옷만 걸친 채 아무것도 가지고 나온 것이 없었다. 방개는 남의 것에는 손을 대는 법이 거의 없었다. 여름이니 더워서 그는 두 벌 옷도 가지고 다닐 수도 없었다.
그는 다시 이 마을 저 마을로 하루하루 문전걸식을 하면서 걷다 보니 어느덧 보령 앞바다가 있는 오창에 갈매 못에 와 있었다. 방개가 좋아하는 바다였다. 서해안의 바닷가 중의 한 곳이라서 크지는 않아도 바다 냄새가 방개의 오랜 여정을 씻어주듯 시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