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화. 사랑에는 용서가 있었다.
그러나 민철이 엉가를 사랑하는 마음에는 용서가 있었다. 설령 엉가가 미국 유학 중에 다른 남자를 만나서 사랑을 했다고 해도 민철은 그런 엉가를 얼마든지 용서할 수 있을 만큼의 큰 그리움과 사랑이 있었다. 민철은 어린 시절 아버지와 엄마가 홍수로 하루 한날에 돌아가시자, 아주 일찍 큰상실감을 겪은 탓인지 살아오면서 친구나 선생님의 전학이나 떠남이 그다지 크게 감정에 동요를 불러오질 않았다. 사람은 언젠가 헤어진다는 것에 익숙해지려 했고, 죽지만 않으면 언제 어디서든 다시 만날 수 있다는 희망이 있었지만, 한번 돌아가신 부모님이 자신에게는 다시는 돌아오지 못하는 것에 대한 상실감은 민철이 자랄수록 점점 커졌었다. 특히 오늘처럼 자신이 외무고시라는 엄청난 시험을 통과하고 난 날에는 부모님이 살아 계셨다면 얼마나 좋았을까를 혼자서 생각을 한 탓인지 엉가가 살아서 미국에서 어떤 짓을 했다 해도 자신은 그녀를 용서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을 했다.
이렇게 좋은 날 함께 있어주지 못하는 엉가에 대해서 그는 그녀가 무슨 피치 못할 상황이 벌어져 있다 해도 자신만큼은 그녀를 이해하고 용서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을 한 것이다. 그것이 설령 엉가의 배신이라 해도 그 배신이 자신을 완전히 버리는 것만 아니라면 시간이 흐르고 흘러 어느 때 인가는 엉가가 자신의 품에만 안길 수 있다면 그녀를 용서해 주리라 마음을 먹은 지도 꽤 되어 있었기에 민철은 이제 자신이 발령을 받고 나면 어떻게든 휴가를 내서 미국에 있는 엉가에게 찾아가볼 셈이었다. 그는 외무고시라는 큰 부담이 되는 공부를 하느라 하루도 잠을 편히 자본 적이 없었고, 연이은 고시 패배로 엉가에게 자신의 마음을 제대로 표현도 못하고 늘 편지를 소극적으로 써서 보냈고, 몇 년 동안은 제대로 된 답장을 받은 적도 없어서 그는 이제 엉가에게 다른 남자가 생겼을 수도 있다고 직감은 하고 있었다.
민철은 가끔씩 엉가와 결혼하는 것이 과연 그녀를 가장 행복하게 해주는 것일까에 대한 고민도 했다. 자신은 엉가를 원했지만, 엉가는 자신을 원하지 않을 수 있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가족 같은 정으로 청소년시절을 같이 보냈고, 서울에서 대학생 시절도 같이 보냈지만, 그런 쌓이고 쌓인 정이 사랑의 전부는 아닐 수도 있다는 걸 민철은 생각한 것이다. 그러나 민철은 엉가에 대한 마음속 깊은 애정을 숨기고 싶지도 않았고, 자신이 용서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는 엉가의 어떤 사랑의 모양도 다 용서해 줄 것이라고 마음을 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