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개 아저씨 2부.

12화. 조앤의 죽음에 이르는 병

by 권길주



민철이 외무고시를 합격하고 첫 발령을 받고 떠난 나라는 오스트리아였다. 그는 엉가를 찾아볼 시간도 없이 바쁜 일정을 소화하면서 외국에서의 하루하루를 보내야만 했다. 민철은 자신의 일에 익숙해지기 위해 언어를 더 공부해야 했고, 그 나라의 예절과 전통과 역사를 더 깊이 공부해야만 했다. 그는 생각했다. 외교관의 업무에 익숙해지기까지 최소한 일 년은 다른 어떤 것도 지금은 생각할 수가 없겠구나 하는 생각을 한 것이었다. 그러면서도 엉가에 대한 초조했던 마음이나 불안했던 마음들은 어느 사이 점점 희미해지는 자신을 발견하게 되었다. 그는 이제는 시간이 나면 모차르트와 슈베르트 같은 음악가들이 남긴 유적지나 연주회에 찾아다녔고, 지상 천국과 같은 알프스의 산자락을 찾아다니며 여행을 즐겼다. 그에게는 아직은 엉가를 기억하고 있는 많은 추억과 기억들에서 뿜어져 나오는 사랑의 열기를 식혀줄 다른 인생의 대안들이 필요한 시간이었지, 자신이 출세를 하고 외교관이 된 것에 대한 교만한 마음은 조금도 그에게는 없었다.

민철은 혼자서 잘츠부르크역에서 기차를 타고 여행을 다니는 것을 즐겼다. 그러다 어느 일요일 오후 그는 호수 마을 할슈타트에서 한 여자를 만난다. 검고 긴 생머리를 하고 호숫가에서 그녀는 한국의 가곡인 '그네'를 부르고 있었다.


세모시 옥색치마

금박 물린 저 댕기가

창공을 차고 나가

구름 속에 나 부 낀다

제비도 놀란 양

나래 쉬고 보더라


그녀의 목소리는 푸른 호수에 깊이 잠기듯이 그의 외로운 마음에 잠겨왔다. 여자는 혼자서 호숫가에서 한국어로 노래를 부르다가 한국 남자를 만나서 인지 무척이나 반가운 듯이 상큼하게 웃으며 그에게 인사를 건넸다.

"안녕하세요, 한국인이신가요?"

"네, 그 그렇습니다."

"이런 곳에서 한국인을 만나니 너무 반가워요, 저는 빈에 있는 대학교에 다니는 대학생 한수련입니다."

"네, 저는 이곳에서 직장을 다니는 박민철입니다."

민철은 처음 보는 수련의 얼굴과 몸짓에서 티 없이 자란 여자의 순수한 매력을 느꼈다. 그것은 먹고사는 걱정 없이 살던 자신의 대학교 친구들과 비슷한 느낌의 친근감이었다. 고아로 자란 민철에게는 늘 누구나의 눈치를 보며 어느 때는 자신도 알 수 없는 가난과 열등감이 꽈리를 틀듯이 꼬여있는 내면의 슬픔이 그들의 환한 미소 앞에서 어디다 시선을 둬야 할지 모르는 초라함으로 시선을 땅바닥에 떨구게 만드는 것과는 아주 다른 분위기에 사람들이었다. 한수련 그녀에게서도 처음 보는 상대방의 눈치를 전혀 보지 않는 자신감과 생동감이 넘쳤다.


그 시간 엉가의 어린 딸 조앤은 자주 병원을 드나들기 시작했다. 동네 병원을 들락날락하며 방개는 조앤을 보살피랴 과수원일을 하랴 철희와 바쁘게 병간호를 해야만 했다. 그러나 아이는 며칠씩 병원을 다녀도 낳지를 않고 점점 숨을 쉬기를 힘들어했다. 방개는 조앤을 천안에 큰 병원에 입원을 시키고 종합검진을 시켰다. 입원한 지 2주가 지나서야 아이의 병명은 나왔지만, 절망적 이게도 아이는 심장판막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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