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개 아저씨 2부. (마지막화)

25화. 그리운 것은 지나온 시간에만 남는다.

by 권길주



철희가 떠나고 '희락 보육원'이 지어지고 엉가는 보육원 일에 항상 바빴다. 조앤을 떠난 슬픔도 철희가 갑자기 가버린 고통도 결국은 보육원의 아이들이 그 모든 고통들을 다 잊게 해 주는 데는 시간이 그리 오래 걸리질 않았다. 새로운 아이들이 들어올 때마다 그 아이들 한 명이 가진 고통이나 슬픔은 엉가 자신이 가진 것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닌 정도로 아이들은 때때로 너무 비참한 사연들이 숨어 있었다. 그래서 엉가는 아이들에게 사랑이란 진심을 나눠주기 위해 직접 밥을 짓고, 아이들 옷을 재단해서 직접 만들어 주기도 하고 겨울이면 손뜨개를 해서 예쁜 털스웨터를 짜주기도 했다. 한 올 한 올 바느질을 해서 입힐 때마다 반찬 하나하나를 직접 만들어 주면서 아이들과 같은 식탁에 앉아서 밥을 먹을 때마다 그녀는 자신이 이 세상에서 살아서 할 일이 있다는 것에 감사가 절로 흘러나왔다. 그동안 자신이 무엇을 해도 이보다 행복한 일은 없었던 듯했다. 물론 박감독에게서 받는 아내로서의 사랑은 그와는 달랐고, 박감독은 언제나 자신의 일에 충실한 사람이다 보니 언제는 그는 영화를 만들어 내는 일에 충실한 사람이었고, 가끔씩 보육원 마당에 잔디를 깎아 주거나 보육원 별채에 있는 패치카에 나무를 때기 위해 장작을 패야 하는 있으면 장작을 패주곤 했다.

하지만 그는 늘 다음 작품으로 무엇을 찍을 것인지에 대한 작품 연구와 시나리오 쓰기에 몰두하는 사람이었지 보육원에는 자주 나오질 않았다. 그래도 보육원 마당에 청소와 화단에 풀을 뽑는 일에는 방개 아저씨가 제일 자주 드나들었다. 방개 아저씨는 이제 허리가 구부정하고 다리도 조금씩 절고 다녔지만, 보육원에 올 때면 그렇게 즐거운 표정일 수가 없었다. 이제 중골에 과수원은 남에게 맡긴 지가 오래되었다.


엉가가 박감독과 함께 결혼 생활을 한지도 십 년이 넘었고, 보육원을 시작한 지도 그와 비슷한 시간이 흘렀다. 그 사이 세상은 변하였다. 코로나로 인해 사람들은 거리가 생겼고, 서로의 관계가 점점 소원해지기 시작했다. 그래도 방개아저씨와 덕구아저씨는 여전히 이웃에서 친구로 평생을 함께 하며 그들의 나이는 이제 구십 대가 된 겨울 어느 날 방개는 심한 독감에 걸렸다. 펄펄 끓는 열과 심한 기침을 동반하더니 한 달 이상 밥을 거의 먹지를 못했다. 덕구 아저씨가 근심스러운 눈빛으로 몇 번이나 찾아왔으나 방개 아저씨는 기력을 회복하지 못하고 병원에 입원한 지 일주일 만에 하늘나라로 떠났다. 방개 아저씨는 숨을 거두기 전에 말했다.

"나를 고향땅 근처에 묻어줘. 죽어서라도 고향에 가보고 싶어. 그리고 엉가야 고맙다. 내 딸로 살아줘서."

엉가는 박감독과 결혼을 했지만, 방개 아저씨를 한집에 모시고 함께 살았었다. 낮에는 엉가는 보육원에 차를 몰고 나왔고, 박감독도 자기의 한옥 작업실에서 일을 했지만, 그들은 밤이면 언제나 엉가가 살던 작은 양옥집에서 방개 아저씨와 저녁을 먹고 한집에서 잠을 잤다.

"내게는 가족이 있었어. 먼저 떠난 철희도 내 자식이었지. 곽집사도 내 가족이고, 그리고 에덴 농장에 왔던 많은 청년들도 그렇고, 온양에 천사의 집에 있던 얘들도 다 자식이었어. 그래, 그래서 난 행복한 사람이었지. 기환이 만나서 시인이 된 것도 그렇고, 엉가 엄마 만나서 네가 내 딸이 된 것도 그렇고, 친구 덕구 덕분에 외롭지 않았서 더 행복했지. 고맙네 덕구. 자네가 있어서 난 떠돌이에서 벗어난 걸세. 암 그렇지 그렇고 말고, 자네가 나랑 엉가 엄마 살라고 그때 흙집을 안 지어 주었으면 나랑 엉가 엄마는 그때부터 어딜 어떻게 더 떠돌았을지도 몰라. 그런데 자네가 이 중골에 우리에게 흙집을 지어주는 바람에 내가 이렇게 마지막까지 여기서 숨을 쉬고 살았네 그려. 모두들 잘 있게나. 엉가야 보육원에 아이들을 잘 키워야 한다. 그래야 하나님이 가장 기뻐하시지. 그리고 철희도 그래야 천국에서 널 보고 환히 웃을 테지."


2025년, 방개 아저씨는 구십 살에 돌아가셨다. 아저씨 장례식에는 외교관 생활을 마치고 미국에서 교수로 지내는 민철이도 참석했다. 온양에서 미용실을 하는 미자 언니도 찾아왔고, 서천에서 고기를 잡는 윤택이 아저씨도 왔다.

박감독은 방개 아저씨 고향 근처에 아저씨를 묻을 땅을 찾았다. 그러나 방개 아저씨의 가족을 모르는 엉가나 박감독은 그의 고향이 어디쯤인지만 알았기에 장항선이 지나가는 아저씨의 고향 근처 언덕에 방개 아저씨의 묘지를 만들었다. 평생을 떠돌았지만, 아저씨는 마지막 자신의 육신을 고향에 가 닿길 바랐었다는 것이 엉가는 가슴이 아팠다. 가족들에게 버림받았는데, 그리고 남을 가족처럼 대하면서 살았는데, 그래도 그의 육신의 어딘가에는 가족에 피가 묻어서 떠돌고 있었는지도 몰랐다.

방개 아저씨의 묘비에는 작은 십자가가 새겨져 있었고, 그 아래에는 박감독이 쓴 글이 두 줄이 적혀 있었다.


[ 모두를 사랑하고도 빈손으로 가지 않은 사람입니다.

그가 남긴 사랑은 이 땅에 너무나 깊기에. ]


방개 아저씨가 떠나고 박감독이 그의 유고시를 모았다. '에덴 농장'에서 농사를 지으면서도 밤이면 혼자서 시를 쓰던 방개는 첫 시집 이후에 시집을 전혀 내질 않았었는데, 박감독이 방개 아저씨의 유작들을 모아서 시집의 차례를 정하고 표지를 만들었다. 표지에 그림은 철희가 방개 아저씨와 둘이서 마루에 앉아서 라디오를 들으며 마당을 내다보는 아주 정겨운 그림이 있어서 그걸로 정했다.

방개가 떠난 묘지 앞에 몇몇의 사람들이 방개 아저씨의 유고 시집을 들고 다시 찾아온 날은 2026년 봄이었다.

모인 사람들은 무덤가에 빙 둘러서서 방개 아저씨의 유고 시집을 한 편 한 편씩 읽어가기 시작했다.

먼저 덕구 아저씨가 자기 마음에 드는 시 한 편을 골라서 읽었다.




제목 : 다시 순자 씨에게

내 나이 칠순이 넘었소.

그런데 내가 이제 와서 어찌하여 당신의 무덤가에 찾아왔나 모르오.


다시 찾아도 당신 얼굴은 옛날 스무 살이구려.

꽃이 피면 얼마나 핀다고

그렇게 안달하다가 그걸 봉오리채 안고서 울기만 하나


당신은 연분홍 진달래 꽃 봉오리

내 연분홍 진달래 꽃 봉오리여.


그리도 아깝게 남을 주었더니

내 가슴 이때까지 저미도록 보고 싶구려.


덕구 아저씨가 마지막 구절에 눈물을 훔치며 흐느꼈다. 순자 씨를 평생 못 잊어 한 방개 아저씨의 마음이 절절이 묻어 있는 시였기에 목이 메어 온 것이었다. 그 누구도 감히 알지 못하는 첫사랑의 애닮픔이 숨어 있는 시였다. 그다음엔 박감독이 다른 시를 한편 골랐다. 그의 무거운 바리톤 음성이 낮고 깊게 울렸다.


제목 : 은행나무 길 위에서

바람이 노란 은행을 휩쓸고 가더니

이순신 장군 무덤가에

아니 그분의 빈 집에

한 잎 두 잎 머물러


나도 따라서 그곳에 잠시 발길을 머물러

그분이 계신가

아니 계신가

한참을 기다려보다가


세상이 하 심란도 하고

외롭기도 한이 없이

한산섬 달 밝은 밤에를 훑어보다가

온양장에 와서 호떡이랑 두부를 사가지고

천사의 집에 오니

철희는 그림을 그리고 엉가는 공부를 한다.


그런데 내 신발을 보니

은행나무 길에서 밟은 은행잎이 벌건 진흙에 짓뭉개져

몇 잎이 노랗게 깔려 있다.



몇 사람이 더 시를 낭송하고 마지막으로 엉가가 한편을 낭송하면서 그날 방개 아저씨의 유고시집 출판기념회는 아저씨의 무덤가에서 막을 내렸다.

엉가는 눈가에 맺혔던 눈물을 손수건으로 지우고 나서 시집의 맨 마지막 페이지에 있는 시를 읽어 내려갔다.


제목 : 종근락 한 개

내가 거지가 된 것은

무엇 때문이었을까요?

내가 부모님 집을 나오게 된 것은

무엇 때문이었을까요?


육이오 전쟁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머리에 맞은 총상의 흔적 때문이었을까.


그것도 아니면 전쟁이 준 정신병 때문이었을까.

나는 얼마나 그것을 하나님께 물어봤는지 모릅니다.

형들이 때리고

아버지는 바람나서 나간 첩의 아들인 나를 무시하고

나는 외로워서 들과 산과 길을 헤매다가

거지가 되었다.


그때 내게 중골에 과부 박집사가 준 종근락 한 개

이 종근락 한 개를 들고

나는 이 마을 저 마을 떠돌았지.

그러다가 엉가 엄마와 엉가를 바닷가 근처 마을에 원두막에서

처음 만났었지.


그리고 덕구네를 찾아와서 우리는 덕구네와 함께 살았지.

그리고 난 병이 들어서 엉가 엄마를 떠나고

홀로 서천 바닷가에 오두막에서 살다가 기환이를 만나고

시를 쓰게 되었지.

거기서 철희와 젊은 전도사를 만나고 뻥 쩍빨의 화가를 만나고

엉가 엄마를 하늘나라에 보내고, 다시 온양으로 왔었지.


그리고 다시 중골에서 과수원을 하며 유학 간 엉가를 기다리고,

엉가가 돌아와 조앤이란 딸과 함께 우리는 살았지.

조앤이 스무 살에 죽고 난 엉가 옆에서 숨 쉬는 것도 힘들었지.

내 딸이 가슴 아파서 울 때 난 밤마다 별들을 헤며 혼자서 과수원을 밤마다

돌아다녔지.


철희가 프랑스에서 혼자 죽었다는 소리를 들었을 때는

아들을 잃은 아비의 마음이 되어

밤이면 내 베개가 축축하도록 많이 울었었지.


하나님 이 모두는 나의 죄 때문입니까.

그러나 이 모두는 각자의 죄 때문이기도 한 겁니까.

아니면 옛 조상 누군가의 죄 때문입니까.


저는 아버지를 아버지라 잘 부르지 못하고 살았지만,

하나님 당신을 아버지라 평생 부르고 살았습니다.

아버지 내가 이렇게 떠돌이가 되어 살고

남의 자식을 내 자식으로 알고 살은 것이

이제 구십이 되어 갑니다.


그러나 하나님 아버지 그래도 감사합니다.

이 모든 삶의 굴레에서 먼저 간 순자 씨, 그리고 엉가 엄마,

엉가 딸 조앤, 내 아들 철희,

그들이 내 죄 때문에 먼저 갔다 해도

아직은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더 남아 있으니

아버지 하나님 감사드립니다.


나도 이제 아버지 곁으로 가오니

먼저 간 이들의 얼굴을 볼 수 있어서 감사하고

남은 이들이 가끔은 내 이름을 불러 줄 것을 생각하니

이 밤에 이불도 따스하고

저기 오는 봄눈도 꿈결만 같습니다.

그리고 첫사랑 순자 씨의 무덤가에 핀 진달래의 달큼한

맛도 다시 그리워집니다.



엉가가 시의 마지막행을 다 읽고 났을 때 덕구 아저씨가 늙고 구부러진 손으로 산비탈에서 진달래꽃을 한 아름 꺾어다가 방개 아저씨의 무덤가에 말없이 놓아주었다. 그리고 덕구 아저씨는 말했다.

"사람은 깨질지라도 종구락처럼 둥글게 살아야 혀는겨. 방개가 젊어서 종근락 한 개로 밥을 얻어다가 미친 엉가 엄마와 어린 엉가를 먹여 살린 것처럼 말이여."

엉가는 그때서야 '종그락 한 개'라는 방개 아저씨의 시를 조금 더 이해했다. 그리고 엉가는 올봄에는 '희락보육원' 지붕에 하얀 박꽃을 피워서 가을에 종고락을 한 개 만들어서 보육원의 입구에 예쁘게 걸어 놓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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