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 무엇이 우리를 떠나게 하는가.
철희가 방개 아저씨를 찾아와 프랑스로 그림을 그리러 가겠다고 말했다. 그가 한국을 떠나서 그림을 그려야겠다고 결심한 데는 박감독과 엉가의 관계가 가까워지면서 자신의 감정을 추스르기가 힘들어지면서부터였다. 방개는 철희의 마음을 깊은 물속을 들여다보듯이 다 알고 있었지만, 겉으로 아무런 내색도 하지를 못했다. 서천에서 철희가 방개 아저씨가 살던 바닷가 오두막에 먹을 거를 훔쳐 먹으러 들어왔던 날부터 철희를 아들처럼 키웠고, 이제는 어느덧 중년의 유명한 화가가 된 철희를 누구보다 잘 아는 사람은 방개였기에 가슴 한쪽으로 박감독과 엉가가 서로 연이 닿아 사랑의 감정을 느끼를 것을 막지 못하듯이 철희가 엉가만 바라보고 살아온 운명 같은 짝사랑을 그로써는 막을 수는 없는 것이었다.
그러나 철희의 사랑은 오로지 그렇게 지고지순할 수밖에 없는 외사랑으로 끝을 내야 하는지 엉가는 어느 사이 박감독에게서 마음의 위안을 얻고 있는 것을 방개도 철희도 알게 된 지가 일 년이 넘은 것이다. 어쩌다 마주치는 두 사람의 눈빛은 사랑이 아니면 전혀 드러날 수 없는 환희나 기쁨이 있었고, 말하지 않아도 느껴지는 숨결이 있었다. 철희는 그것이 엉가가 자신이 옆에서 아무리 엉가를 도와줘도 한 번도 그에게는 내뿜은 적이 없는 웃음이었고, 숨소리였고, 목소리였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철희가 아는 엉가는 조앤이 아프면서부터 죽은 여자처럼 살아가는 젊은 미망인 같았는데, 조앤이 죽었음에도 불구하고 엉가는 조앤이 죽은 뒤에 나타난 박감독에게서 서서히 다른 모습으로 변모해 갔다. 그것은 시들었던 한 송이 꽃을 샘물가에 놓았을 때 그 꽃이 서서히 다시 생기를 되찾아 가며 꽃을 피우는 것처럼 생기가 도는 모습이었다. 철희는 그런 엉가를 보며 엉가에게는 박감독이 정말 나머지 인생에서 가장 필요한 사람이란 것을 깨달은 것이었다. 자신이 화가로써 성공을 했지만, 그런 자신을 줄 수 있는 물과 바람과 공기가 아닌 박감독만이 줄 수 있는 물과 바람과 공기가 엉가에게는 필요한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철희는 엉가를 바라만 보면서 살아도 좋다고 생각했지만, 자신의 그림의 세계를 새롭게 펼치기 위해서 화가들의 천국인 프랑스 파리에 가서 그림을 더 공부하고 그곳에서 살아보기로 했다. 철희가 떠나던 날 엉가는 과수원 앞 동구밖에 오래된 밤나무에 기대어 멀리 떠나는 비행기를 바라보았다. 방개 아저씨와 박감독이 철희를 공항까지 마중을 갔지만, 엉가는 차마 공항에 까지 철희를 배웅하러 가기에는 가슴이 아팠다. 그녀도 한 남자가 사춘기 때부터 자신만 바라본 남자를 홀로 먼 타국에 보낸다는 것이 마음에 짙은 그림자를 남겼다. 더구나 조앤이 어릴 때부터 함께 곽집사와 조앤을 돌보 준 철희에 대한 고마움을 그녀는 평생 무엇으로 갚아도 갚을 길이 없다고 생각을 했는데, 그것을 자신을 그토록 사랑하는 철희의 절절한 마음을 하는 한 여자로서 그가 홀로 가는 길을 배웅한다는 것은 너무 가슴이 아팠고, 그를 무엇으로 위로할 말이 없었던 것이었다.
철희가 프랑스로 떠나기 전날에 엉가에게 그림 한 점을 가져왔었다. 철희가 작년에 서울에서 큰 전시회장에서 성황리에 치렀던 전시실에도 없었던 그림이었다. 그림에는 탐스럽게 열린 복숭아나무 아래서 어린 조앤과 엉가가 함께 앉아서 복숭아를 먹는 모습이었다. 그림에서 여름날의 열기와 삶에 대한 욕구가 강하게 드러나 엉가는 순간 조앤이 다시 살아온 느낌이 들 정도였다. 어쩌면 철희는 조앤이 살아남기를 가장 원하고 가장 많이 기도한 사람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그 순간 들어서 엉가는 어젯밤 밤새 그 그림 앞에서 눈물을 흘렸다. 그런 진실을 가진 한 남자를 외면하고 자신은 박감독에게서 너무 편한 위로를 받는 것인가에 대해서 한쪽으로는 철희에 대한 죄책감이 들기까지 했던 것이다.
그러나 자신의 감정이 왜 박감독에게 더 위로가 되고 더 채워지는 것인지는 그녀도 알 길은 없었다. 굵은 알밤이 엉가의 발밑으로 떨어지는 오래된 밤나무에게서 늦가을의 바람이 쓸쓸하게 불어왔다. 엉가는 철희가 프랑스에게 그림에 몰두하고 외롭지 않기를 간절히 기도했다. 그러나 엉가는 알지 못했다. 그날 이후로 철희를 다시는 살아서는 만나지 못할 거라는 것을.
3년 후, 철희는 프랑스 파리의 센강에서 자살인지 실족사인지 알 수 없는 죽음으로 그의 생은 마감이 되었다. 그리고 그의 작품들은 그가 죽은 후 엄청난 평단의 평가를 받으며 서울과 유럽에서 전시회가 이어졌다. 철희는 군대에서 한쪽 눈이 실명된 이후, 늘 그의 보행은 불안정했었는데, 그림에 몰두한 이후로 그의 다른 한쪽의 시력도 점점 나빠진 상태에서 외국에서의 생활이 그의 건강을 악화시켰는지도 모른다고 박감독은 그의 죽음이 절대 자살은 아닐 거라고 했다. 엉가도 방개 아저씨도 철희의 죽음을 그가 센강에서 발을 잘못 디디어서 물에 빠졌을 거라고만 믿고 싶었다. 방개 아저씨의 의견대로 철희의 그림이 고가에 팔린 돈을 가지고 박감독과 엉가는 온양에 곽집사가 그동안 맡아서 해오던 '방개아저씨와 천사의 집'을 새로 지어서 정식으로 보육원을 세웠다. 그리고 보육원의 이름을 철희의 이름에서 희자를 따와서 '희락의 집'이라 지었다. 이 세상에서는 희락을 경험하지 못한 철희가 천국에서는 희락을 맛보며 날마다 살아가길 기도하는 마음으로 그들은 철희를 위로해주고 싶었던 것이였다. 그리고 '희락의 집'보육원의 원장으로는 엉가가 맡아서 시작을 하기로 했다.
"철희가 죽어도 엉가를 사랑하는구나. 너에게 가장 맞는 일을 시키고 갔으니 말이야."
방개 아저씨는 '희락의 집'이 정식으로 개원한 날 엉가의 손을 잡으며 눈물을 흘리며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