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 소설 제 1편. 모과나무 집

by 권길주

5학년 여름방학을 주는 날이었다. 아침부터 파란 여름 하늘에는 뭉게구름이 진한 초록빛 산 구릉 사이로 머리 큰 곰처럼 보이기도 하고 입 벌린 사자처럼 보이기도 하는 하얀 구름이 이리 저리 산 구릉을 넘나들자,

반 아이들에게는 더 이상 재미난 상상의 놀이는 없었다. 태풍의 기운이 몰고 오는 바람의 기운이 구름을 흩었다 모았다 하는 하늘의 묘기 펼쳐지자 시골 아이들에게는 이 세상의 가장 멋진 서커스가 비오기 전의 구름떼였던 것이다.

구름 떼를 손가락으로 가르치며 유리창에 매달린 아이들의 뛰어다니는 소리로 교실은 온통 시끌시끌했다. 그런데 갑자기 2교시가 끝나고부터 난데없이 흰 뭉게구름들은 검은 먹장구름으로 변하며 점점 굵은 소나기가 퍼붓기 시작했다. 낡은 유리창에 부딪치는 빗소리는 점점 멀리서 오는 말소리처럼 가슴을 두근대며 후드득후드득 소리를 내며 교실 안을 들이쳤고, 뽀얀 운동장에 먼지도 말끔하니 씻어내기 시작했다. 아이들은 방학보다는 우산 없이 집에 갈 일이 더 심란해지고 하나 둘 교문 밖에 시선을 던졌다. 혹시라도 논일 밭일 하던 엄마 아버지나 할머니 할아버지가 우산을 들고 올까 하는 기대감으로 쳐다보는 것이었다.

정숙도 교문 쪽을 바라보며 엄마나 아버지가 우산을 가지고 오길 바라고 있었다. 방학통지서를 나눠 준 담임 선생님은 빨리 집에 들 가라고 일찍 종례를 마쳤지만, 정숙과 몇몇은 발이 떨어지지 않는 걸음으로 교실 문을 나섰다. 부모가 찾아온 아이들은 벌써 다 가고 없었기 때문에 교실엔 세 명의 반 친구들만 남아 있었고 정숙도 거기에 끼어서 오들오들 떨고 있었던 것이다. 물끄러미 빗발치는 소나기를 쳐다보던 정숙의 눈에 갑자기 운동장 한 가운데를 걸어오는 한 남자애의 모습이 보였다. 옆집 웅이였다.

그에 별명은 동네에서 ‘바보’, ‘병신’, ‘등신’이 세 가지가 그에 이름 대신 불리는 별칭이었다. 웅이는 정숙이 학교를 갔다 올 때쯤이면 늘 산모퉁이에서 기다리다가 정숙이 들고 오는 무거운 책가방을 집까지 들어다 주고는 했는데, 오늘은 웅이가 우산을 들고 정숙이 있는 교실로 걸어오고 있는 것이었다. 순간, 정숙의 얼굴이 옆에 있는 미자와 은미에게 쏠렸다. 친구들의 놀림감이 될 것이 뻔했기에 그녀는 얼굴이 벌써 홍당무처럼 붉어지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우산도 없이 집에 가지 못하고 쓸쓸한 교실에 남아 있게 된 미자와 은미보다는 자신이 얼마나 이 세상에서 더 대접을 받는 아이인가 하는 생각이 더 먼저 들었다. 자신을 대접해주고 예우해주는 대상이 옆집 사는 바보 웅이 이긴 했지만, 웅이가 바보인 것은 그 상황에 그다지 중요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장에 나간 엄마도 어차피 비가와도 늦게 올 터였고, 남의 집에 품팔이를 간 아버지도 정숙이에게 우산을 챙겨올 상황은 아니었기에 정숙은 비를 쫄딱 맞고 집에 가야 했기 때문이었고, 어쩌면 이 굵은 비를 피하기 위해 학교에서 제일 꼴찌 까지 남아 있어야 할지도 몰랐기 때문이었다.

그날 웅이는 자기 집에 우산을 들고 와서 정숙을 데리고 집까지 아주 씩씩하고 늘름한 걸음으로 그녀를 데려다 줬었던 것이었다. 그건 바보나 등신이 할 일이 아니라 정숙을 좋아하는 웅이 만이 할 수 있는 특별한 일이었다는 것을 정숙은 웅이의 그 빗물에 젖은 고무신이 미끄러워도 넘어지지도 않고 앞장서서 늘름하게 걷는 것을 보며 알게 된 것이었다. 그래서 그날 정숙은 웅이에게서 나는 비 젖은 땀 냄새도 그리 기분이 나쁘질 않았던 기억이 늘 아롱졌다.

정숙은 죽음을 앞두고 그날도 웅이를 생각했다. 화장실 창문을 열자, 뒷집 마당에 모과들이 아침햇살을 받으며 단단한 몸을 과시했다. 순진하지만 조금은 억지스럽고, 약간은 바보스러운 표정을 한 시골 소년의 얼굴, 모과는 웅이의 얼굴이었다. 웅이는 학교를 한 번도 다녀본 적이 없이 정숙이 중학교를 다닐 때 동네 여자와 바람이 난 아버지 때문에 웅이 엄마는 그 애를 데리고 도회지로 이사를 가게 되었다. 그 후로 한 번도 웅이를 볼 수가 없었지만, 웅이 엄마가 도회지에서 재혼을 했다는 소식은 바람결에 고향집 문턱에 들려왔다.

그녀는 술집 이름을 ‘모과나무 술집’이라고 붙였다. 모과를 닮은 웅이를 떠올리며 붙인 술집 이름이었다. 그녀의 술손님들은 대다수 도시의 가난한 노동자들이였기에, 주로 그들에게 소주나 막걸리를 팔면서 한 끼 식사로 라면이나 국밥을 끓여주고, 그들의 인생 푸념을 들어 주는 게 그녀가 술집에서 하는 일이었다. 그들은 일 년에 단 한번쯤이라도 누군가의 정중한 대접을 받는 사람들은 한 사람도 없는 막다른 골목에 사는 인생들이었다.


그녀는 아까부터 아랫배를 끌어안고 간신히 변기 위에 앉아서 어제 병원에서 만난 여의사의 말을 생각했다.

‘왜 이렇게 늦게 오셨나요? 그동안 피도 나고 통증도 꽤 있었을 것 같은데요…. 보호자가 없다고 하셨나요? 자궁경부암 말기예요. 이미 너무 늦었어요, 진작 병원에 오셨어야 했는데…. 온 몸에 암이 전이가 되셨어요. 제가 보는 소견으로는 앞으로 길게 사시면 6개월, 짧으면 두세 달 남았습니다.’

어제 만난 산부인과 의사는 가여운 듯이 정숙을 쳐다보았다. 몇 달 전부터 자꾸만 하혈을 하는 것이 이상했지만, 정숙은 두려워서 병원을 찾지 못했었다. 그녀는 찬물에 손을 씻으며 화장실 바닥에 앉아서 하염없이 울기 시작했다. 어제부터 참았던 눈물이 그녀의 온몸에서 쏟아져 나왔다. 그것은 눈물이라기보다는 오열에 가까운 처절한 통곡이었다. 억울했다. 무엇인지 모를 억울함이 피를 쏟듯이 눈물로 쏟아져 나오는 것이었다.

몇 달째 손님이 별로 없어서 테이블에 먼지만 뽀얗게 앉은 술집은 오래된 빨랫감처럼 여기저기 역겨움이 들 정도였다.

정숙은 가끔씩 자신이 어릴 적에 살던 제천의 고향으로 가볼까 생각도 했지만, 그곳엔 그녀가 술집을 전전하며 가르친 동생들이 살고 있었지만 그녀가 창피하다며 소식을 끊고 산지가 오래다.

정숙은 뒷집 여자가 작년에 담은 거라면서 노랗게 익은 모과로 차를 만든 것을 유리병에 담아서 준 것을 냉장고에서 꺼냈다. 보온병에 모과차를 한가득 부어 만들었다. 진한 모과 향이 그녀에게 어릴 적의 향수처럼 마음을 가라앉혔다. 정숙은 방에 들어가 서둘러 피 묻은 속옷을 갈아입고 보온병을 들고 복잡한 술집 골목을 빠져나왔다. 죽음에 대한 두려운 생각을 떨치기 위해서였다. 그것은 털어내면 털어내지는 먼지와 같은 것일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생각을 하면서 그녀는 골목을 빠져나왔다. 인생이 억울한 날에는 그녀는 무조건 온 몸에 힘이 다 빠질 정도로 걸었다. 이십대는 밤길을, 삼십대에는 공원과 거리를, 사십이 넘어서는 무조건 산길을 찾아서 걸어 다녔다. 그러면 어느 사이 억울함이 조금씩 다리 사이에서 풀리기 시작하고 그리고 가슴 안에서도 응어리가 풀어져 나가고 손끝에서도 풀어져나갔다.

오늘도 그녀는 이제 곧 죽는다는 선고를 받은 병든 몸에 억울함을 풀어내기 위해 온몸이 풀릴 때까지 산길을 걷기로 작정을 하고 집을 나온 것이다. 그래서 흰색 운동화 끈을 풀어지지 않게 옹이듯이 질끈 묶었다.

늦가을의 아침 햇살을 등지고, 정숙은 가파른 고개를 걷기 시작했다. 낮은 지붕들 사이를 천천히 걸었다. 회색 비둘기 날개 같던 아침 하늘이 비둘기 빛에서 점점 희고 푸른빛으로 선명하게 밝아졌다. 아침부터 많은 양의 피가 쏟아져 나가서인지 마치 무중력 상태처럼 몸에서 점점 힘이 빠져 나갔다. 그녀는 간신히 몸을 지탱하며 산의 초입에 있는 참나무에 잠시 몸을 기대고 숨을 헐떡였다.

그녀는 작년 가을에 이 숲속 길을 처음 왔을 때, 산속에 큰 기도원이 하나 있는 것을 보았었다. 기도원에 이르는 초입에서 서있는 종탑은 참 아름다웠다. 종탑 위에 세워진 십자가는 아래 동네에서 볼 때는 늘 하늘에 닿을 듯 높이 세워져 있는 것처럼 보였다. 커다란 돔 형식의 종탑 안에는 오래된 청동으로 된 종이 걸려 있어서 그런지 요즘 같은 시대에 종탑에 종이 달려 있다는 것이 정숙의 눈에는 신기하게만 보였다. 기도원의 넓은 마당은 주차장으로 쓰이고 있었는데 그곳엔 언제나 차들이 빼곡하게 들어차 있었고, 성전 안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들락날락 거리는 게 보였다.

‘아니, 저 기도원에서 사람들이 왜 저렇게 차가 미어지도록 오나?’

정숙은 혼자서 기도원 마당에 온갖 차들이 다 주차되어 있는 것을 보고 지나가며 끌끌 혀를 찼다. 그녀가 사는 곳은 기도원을 배경으로 넓게 펼쳐진 산등성이 너머였기에 이 도심지에 기도원이 있었다는 것을 얼마 전 까지도 그녀는 전혀 알지 못했었다. 더욱이 그녀의 술집과 기도원은 산 하나를 놓고 끝과 끝에 있는 위치였다.

언덕위에 서니 어느 새 기도원에서 들려오는 찬송가 소리가 스피커를 통해 가까이 들려왔다. 초겨울의 스산한 나무숲에 가려진 기도원 입구가 한 폭의 수채화 같았다. 가을의 끝자락에 남겨진 초라한 나뭇잎들과 수북이 쌓인 오솔길은 그녀를 더 쓸쓸하게 했다. 그러나 숲 사이로 보이는 성전 꼭대기의 십자가를 덮고 있는 붉은 단풍나무와 노란 은행나무가 기도원의 분위기를 한층 더 고풍스럽게 했다. 그래서인지 기도원 마당과 성전의 입구는 꼭 잔칫집처럼 들떠 보였다.

‘날씨도 제법 쌀쌀해졌는데, 저 사람들은 꼭 잔칫집에 온 것 같네. 옷차림도 다들 제법 멋지게 하고 왔네. 기도원에 부자들도 오는 건가, 난 교회는 가난한 사람들이 더 많은 줄 알았는데….’

기도원 초입의 길은 두 갈래 길이었다. 한쪽은 기도원 안으로 성전이 있는 곳을 향해 들어가는 길이고, 다른 한쪽은 숲속으로 들어가서 산을 정상까지 오를 수 있는 길이었다. 기도원 마당에서 정숙은 묘한 궁금증에 잠시 성전 쪽을 향해서 머뭇거리다가 숲속으로 난 길을 향해 걸어갔다. 그녀는 오늘 따라 유난히 숲속 깊숙이 들어가고 싶어서 걸음을 서둘렀다.

늦은 가을 문턱의 숲속은 차가운 바람이 나무 잎사귀를 다 훑고 지나간 듯 적막하고 고즈넉한 정적과 향기로운 숲의 냄새를 물씬 풍기고 있었다. 뒤섞여 향기를 토해내는 흙과 낙엽, 바람과 구름이 뒤덮인 하늘은 자신의 초라하기 짝이 없는 영혼을 한 줌 구름으로 뭉쳐 어디론가 데려가 줄 것만 같이 느껴지기도 했다.

‘나에게도 죽음이란 시간이 다가왔어. 얼마 남지 않은 시간 동안 뭘 해야 하지…. 두세 달 남았다고…. 억울해서 어떻게 죽나 .... 내 인생은 왜 이렇게 억울하지....’

그때 갑자기 교도소에서 무기징역을 살다가 암으로 죽었다는 기태오빠가 생각이 났다.

‘나쁜 인간, 나를 술집에 팔아먹고 그 모양으로 죽다니, 사람 인생을 요 모양 요 꼴로 만들어 놓고 먼저 죽을 건 뭐람. 에이 그 나쁜 놈만 안 만났어도 인생이 이렇게 억울하진 않았을 텐데.’

정숙은 숲 사이에 잠시 서서 한숨을 쉬었다. 올곧게 뻗은 참나무와 오래 된 소나무가 그녀의 마음을 붙들어 주듯 그녀를 숲속으로 끌어들였다. 숲속을 몇 걸음 더 깊이 올라가던 정숙은 갑자기 걸음을 멈췄다.

갑자기 배가 당기듯이 아프면서 아랫도리에서 다시 피가 흘러 내렸기 때문이었다. 정숙은 피가 흐르는 정강이 사이를 단단히 조이며 비탈길을 정신없이 내려왔다. 고통은 참을 수 있을 것 같은데, 피가 멈출 것 같지가 않아 기도원 마당가에서 화장실을 찾으며 두리번거렸다. 다행히 화장실이 기도원 안쪽에 한가로이 서 있었다. 엉금엉금 기어가서 변기에 앉아 또 한 차례 피를 쏟고 나니 어지러운 증상과 온몸에 힘이 빠져버렸다. 다행스럽게도 성전과 화장실 사이를 좁다란 뜰이 이어주고 있었는데, 그곳에 허름한 나무 벤치가 빛이 바랜 채 서 있었다.

정숙은 솜 자루처럼 무거워진 몸을 털썩, 나무 벤치에 주저앉혔다. 마른 가을꽃들이 작은 뜰 안에서 씨앗을 오므린 채 아침햇빛을 쬐는 것이 보였다. 오전 10시가 넘은 듯 한 시간이 가늠되는 햇빛의 농도였다. 그런데 그 순간 정숙의 귀를 울리는 것처럼 크고 우렁찬 목소리가 들려왔다.

찬송가를 다 마친 성전 안에서 갑자기 남자의 무겁고 큰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한 것이다. 깜짝 놀란 정숙이 잠시 일어나 성전을 한번 쳐다보니 키가 큰 목사님이 강단에 서서 기도를 하고 계셨다. 그녀는 너무 신기하고 당황스럽기도 해서 주변을 둘러보니 성전 지붕 아래에 스피커가 기둥에 달려 있는 것이 보였다.

‘깜짝 놀랐네, 내가 지금 성전 안에는 들어가지도 않았는데 왜 목사님 목소리가 들리나 했더니 저기서 나오는 소리였네.’

정숙은 다시 벤치 의자에 앉아 비스듬히 눕듯이 머리를 기댔다. 어지럼증이 몰려왔기 때문이었다. 하체에 힘이 쭉 빠져나간 느낌이 들었다. 그녀는 한 걸음도 걸을 수 있을 것 같지가 않아 집까지 갈 엄두조차 낼 수 없었다.

‘여기서 조금만 쉬었다 가야지…. 피가 멈출 때까지만 여기서 쉬면 집에까지는 갈 수 있을 거야.’

정숙은 스스로 안도의 한숨을 몰아쉬었다. 그 때 성전 기둥에 붙어 있는 스피커에서 다시 목사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성경 66권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연애편지가 실린 곳이 아가서입니다. 솔로몬 왕의 연애편지, 러브 레터가 바로 아가서죠. 그리고 아가서는 솔로몬 왕과 술람미 여인의 사랑을 통해 하나님의 자기 백성에 대한 지고지순한 사랑과 교회를 향한 예수 그리스도의 순수한 사랑을 전해주는 하나님의 러브 레터이기도 하죠.”

정숙은 비스듬히 벤치에 누워 스피커에서 나오는 성경 구절들을 귀담아 들었다.

“그런데 여기서 지금 솔로몬 왕이 시골에 포도원지기 술람미 여인을 보고 병이 날 정도로 사랑에 빠졌다고 합니다.”

정숙은 순간 성경의 내용이 궁금해서 짙은 밤색으로 짠 니트 윗도리 겉자락을 가만히 끌어 잡아 당겼다.

‘아니, 왕이 뭐 시골 포도원지기 여인에게 반해서 병까지 나, 무슨 러브스토리일까 이건?’

정숙은 벤치에서 자리를 고쳐 앉았다. 어려서부터 소설책이나 전설, 신화 같은 것을 좋아했던 그녀였기에 솔로몬 왕의 얘기가 입맛을 당겼다. 정숙은 드디어 벤치에서 몸을 일으키고 고개를 기우뚱 거리며 성전의 출입구를 찾아보기 시작했다. 몇 걸음을 걷다보니 바로 예배실 입구였다. 그러나 그녀는 순간, 유리 안으로 보이는 사람들의 엄숙한 분위기에 그만 압도되어 문을 열고 들어 갈 엄두가 나지 않았다.

‘어머나, 웬 사람들이 저렇게나 많지? 다들 너무 진지하고 엄숙하네, 술장사나 하는 내가 저 사람들 틈에 낄 자격이 될까?, 난 아니지?’

성전에 모인 사람들은 전부다 강단을 향해 머리를 들고 몸은 다소곳하게 새색시들처럼 얌전히 다리를 모은 채 앉아 있었다. 정숙은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한번 저었다. 마음속에서 어떤 양심의 가책 같은 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젊어서부터 오십이 넘도록 술집만 돌아다니며 이곳에 모인 사람들하고는 전혀 다른 인생을 살았는데, 내가 어떻게 저기에 낄 자격이 있을까?’

정숙은 한숨을 푹 내쉬며 스스로 자신은 목사님의 설교를 들을 자격이 없다고 생각했다.

‘더구나 병까지 들어서 나한테서 냄새라도 나면 어쩌나…. 못 들어가겠어!’

정숙은 고개를 푹 떨구고 예배실 근처를 기웃거렸다. 그러면서도 그녀는 솔로몬 왕과 시골처녀의 러브스토리에 온 관심이 집중되었다.

‘솔로몬 왕이 무엇 때문에 시골처녀한테 반했다는 거지?’

정숙은 궁금증에 다시 한 번 예배실 좌우를 살펴봤다. 다행히 현관문 밖으로 작은 창이 하나 달려 있었다. 창이 낮아서 그 앞에 서서 창에다 얼굴을 가까이 대고 목사님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설교는 여전히 성전 밖 기둥에 세워둔 스피커에서 크게 흘러나오고 있어서 그녀는 성전을 기웃거리면서도 계속 설교를 들을 수 있었다.

마침 늦가을 오전의 햇살이 성전 마당에 가득 쏟아지며 그녀의 등 뒤가 점점 따뜻해졌다. 그녀의 등 뒤에 쏟아지는 가을 햇살이 마치 남녀가 처음 잡은 손처럼 점점 뜨거워졌다. 목사님은 설교를 계속 이어가셨다.

“솔로몬 왕은 술람미 여인이 너무 사랑스러워서 내 사랑이 원하기 전에는 흔들지도 말고 깨우지도 말라고 합니다. 잠만 자고 있어도 예쁘고 사랑스러우니 그 사랑스런 여인을 흔들지도 말고 깨우지도 말라는 얘깁니다.”


‘왕이 도대체 얼마나 시골처녀를 사랑하면 잠을 자도 깨우지 말라는 건가…. 그리고 잠을 깨우지 말라고 하고 거기가 얘기의 끝인가? 다음에는 스토리가 없는 거야?’

정숙은 그저 이야기에만 귀가 쫑긋해져서 다음 이야기가 궁금할 뿐이었다.

“우리가 하나님을 만나는 때 그때가 하나님께 가장 뜨겁고 아름다운 연애편지를 받는 때가 아닐까요? 우리 같은 낮고 천한 자 들에게 하나님은 날마다 각 사람에게 러브레터를 보내고 계시다는 사실을 아십니까? 때때로 그 사람이 하나님께 너무 관심이 없이 사니 수취인 불명으로 되돌아오는 편지도 많으시지만, 그래도 그분은 인류의 모든 역사상 가장 많은 연애편지를 쓰신 분이시죠. 날이면 날마다, 누구에게나, 시시때때로 그분은 모든 인간에게 러브레터를 보내십니다. 죄인인 우리들의 영혼이 당신께로 돌아오게 해달라고 말입니다. 우리들의 죄를 용서하시기 위해 그분은 지금도 우리들의 죄를 기억조차 안하시고 러브레터를 쓰고 계시는 중이시죠.”

정숙은 마음이 갑자기 어두워졌다. 하나님 그분이 누군지를 몰라도 지금 자신에게 러브레터를 쓰시고 계실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 것이었다.

이십이 조금 넘어서부터 술집만 전전하며 살아온 그녀의 손에 하얀 종이에 정갈하게 그분이 편지를 써서 보내온다면 뭐라고 써서 보내실까? 갑자기 머리가 하얗게 비어버리는 느낌이었다. 그리고 그녀에게는 아주 특별한 한 통의 편지가 곧 도착하였다. 그건 기도원의 출입구에 붙어 있는 시처럼 아름다운 한편의 글이었다.

태초에 하나님이 자신의 형상대로

당신을 창조하셨을 때

당신의 하늘 위로 우주를 만들고

차례대로 별을 운행시키시며

맑은 공기를 불어 넣으셨습니다.

오직 당신 한 사람을 위하여 ....

나 자신 도저히 나를 용서할 수 없고

나 자신 도저히 나를 사랑할 수 없을 때

그때, 주님은 나를 용서하셨고,

그때, 주님은 나를 사랑하셨습니다.

그렇게 주님은 자신의 이름을 위하여

당신을 의의 길로 인도하십니다.

당신의 존재가 주님을 설레게 하며

기쁘게 하고

또한

간절함이 되며

목마름의 대상이 됩니다.

주님 말씀하십니다.

나의 사랑, 나의 어여쁜 자야

일어나 함께 가자....

아, 저런 아름다운 글은 태어나서 처음 본 글이다. 하얀 바탕에 정갈한 글씨로 정성스럽게 쓰여 진 글이 액자에 한 폭의 수채와처럼 걸려 있었다. 글씨 옆에는 예수님이 어린 여자 아이를 허리를 깊이 숙이고 꼭 끌어안고 있는 그림도 그려져 있었다. 정숙은 그 글을 두 번 세 번 연거푸 읽어 내리며 하마터면 크게 소리를 지를 뻔했다. 저렇게 감동스러운 글을 쓴 사람은 누구일까? 이 기도원의 목사님이실까? 아니면 이곳에 기도하러 온 유명한 작가일까? 정숙은 글쓴이의 이름도 없는 작자 미상의 벽에 걸린 글이 살아서 자신의 가슴을 파고드는 겨울날의 따스한 온수 같았다.

그 온수는 어느 사이 자신의 볼에 눈물이 되어 뜨거운 물줄기가 쉬지 않고 흐르면서 가슴을 넘어 그 어떤 영원한 세계로 자기를 데리고 가는 듯이 한 없이 눈물이 흘렀다.

어쩌면 지금 자신은 솔로몬 왕에게 러브레터를 받았다는 술람미 여인보다 더 뜨거운 러브레터를 작자미상의 사람인지, 아니면 저 높은 곳에 계시다는 하나님께 받은 것인지 알 수 없지만, 평생 목에 두르고 다니고 싶은 보드라운 실크스카프를 목에 감은 듯이 감미롭고 행복했다.

더구나 끝에 구절에 있는 ‘나의 사랑 나의 어여쁜 자야, 일어나 함께 가자’ 는 글귀는 그녀에게는 아무도 모를 옹달샘에서 목이 마를 때 마다 혼자 조용히 와서 마시고 또 마셔도 되는 샘물처럼 너무 좋은 글이었다.

아! 도대체 저런 글은 어디에 쓰인 걸까? 정숙은 궁금하고 또 궁금했다. 이토록 아름다운 글을 쓴 사람이 누군지를 ....

기도원 마당을 지나는 그녀의 머리 위로 은빛의 비행기가 하늘 길을 끝도 없이 길게 내며 어느 먼 나라를 향해서 날아가고 있었다. 강렬한 정오의 햇빛이 드러나자 호수처럼 맑은 늦가을에 하늘이 드높이 올라갔다. 그 때 호수에 담긴 늦가을의 하늘 속에서 그녀는 가장 순수하게 살던 시절 자신의 모습을 보았다.

웅이가 이사하기 전 날이었다. 웅이 엄마는 폐인처럼 되어있었다. 동네 과부와 바람이 난 웅이 아버지를 용서할 수도 없었지만, 그녀는 자신이 바보 같은 자식을 낳아서 남편이 자길 버린 것이 아닌가 하는 수치심이 더 컸기에 말도 못하고 가슴만 끙끙거리다 웅이를 데리고 동네를 떠나기로 한 것이었기에 폐인이나 다름없이 어린 정숙의 눈에 보기에도 몰골이 말이 아니었다. 그런데 정숙의 엄마는 그런 웅이 엄마를 그저 불쌍한 옆집 여자려니 하기 보다는 뭔지 모를 약간의 멸시함을 가지고 장판 밑에 감춰 두었던 쌈지 돈을 몇 푼 쥐어 주며 목에 약간의 힘을 주었다. 그걸 본 정숙은 자신의 엄마의 행동이 뭔지 모르게 부끄럽고 수치스러웠다. 그날 밤 정숙은 떠나는 웅이에게 줄 선물을 놓고 밤잠도 안자고 곰곰이 생각을 했다. 아무리 장롱과 집안을 뒤져봐도 가난한 정숙의 집에서 값나가는 물건이라고는 없었다. 그때 정숙은 중학교에 들어가면 쓸 새 공책이 몇 권 책상 서랍에 숨겨 놓았던 것이 생각이 났다.

엄마가 장에서 곡식을 내다 팔아서 큰마음을 먹고 사다 준 중학교 입학 선물이었다. 정숙은 서랍에 숨겨진 새 공책 다섯 권 중에서 세권을 챙기고 모나미 볼펜도 두 자루 챙겼다. 그리고 달력을 찢어서 공책과 볼펜을 예쁘게 알록달록 그림이 나온 쪽으로 정성스럽게 포장을 했다. 글씨를 못 배운 웅이가 도회지에 가서는 글씨를 배웠으면 좋겠다는 마음도 간절히 담아서 포장을 한 것이었다. 그리고 정숙은 날이 밝자 마자, 웅이에 집에 아무도 몰래 달려갔다. 그리고 잠자는 웅이를 깨워 달력 포장지에 싼 공책과 볼펜을 내밀었다.

“너 도회지가서 글씨 모르면 너네 엄마 잃어버릴지도 몰라,

그러니까 한글 배워서 엄마 이름도 쓰고 네 이름도 써서

가지고 다녀, 이거 새 공책이랑 볼펜이야,

너 이거 가지고 이사가, 잃어버리면 안 돼, 꼭 잘 챙겨,

이삿짐 쌀 때 네 이불 속에다 넣어서 가지고 가야해. 알았지 웅이야.

잘 가, 넌 바보가 아니야, 나한테 우산도 비올 때 갔다 줬잖아.

너 너네 엄마 비오는 날 잘 챙길 수 있지. 엄마 일하면 우산 갖다 줄 거지. 넌 바보가 아니란 말이야. 내가 안단 말이야. 바보는 너네 아버지야.

너네 아버지가 바보야, 너네 엄마처럼 이쁘고 착한 여잘 버리고 과부랑 바람이 났으니까 말야.”

그때 갑자기 웅이가 울기 시작했다. 꺼이꺼이 목이 메도록 울기 시작했다. 정숙은 발에 불이 나도록 웅이 방에서 뛰어 나와 그 집 마당을 가로질러 동네 냇가로 달렸다. 그 냇둑에 서서 웅이네 집을 보니 웅이네 집 마당에 오래된 모과나무에 주먹 만 한 모과들이 알전구에 불이 들어온 것 마냥 노랗게 켜져 있었다. 웅이 엄마는 그날 택시를 불러 이불과 솥단지를 싣고 도회지로 웅이를 데리고 이사를 갔다. 웅이 아버지가 죽은 것은 정숙이 중학교를 졸업하던 해였는데, 웅이 아버지는 과부와 살면서 술을 너무 많이 마셔서 간이 붓는 병으로 어느 날 아침 죽었다. 그러나 그의 장례식에는 동네 사람이 별로 가지 않았다는 소문이 중학교를 갔다 오는 정숙에게도 들려왔었다. 그 후 정숙은 모과나무만 보면 불쌍한 웅이가 자꾸만 생각이 났었다.

구름이 지나가고 호수처럼 맑은 하늘 저편 어딘가에는 자기가 지금까지 살아온 이곳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나라가 분명 숨겨져 있는 것처럼 서쪽하늘은 맑게만 개여 있었다. 정숙은 비탈길을 내려가고 있었지만, 구름을 타고 나는 하늬바람처럼 뭔지 모르게 신이 나고 온 몸은 새털처럼 가벼워졌다.

그녀는 비탈길을 내려와 전에 없었던 가벼워진 마음으로 술집 문을 열고 들어와 설레는 가슴을 쓸어내리며 술집 쪽방에 누웠다. 그날은 장사도 하기 싫어서 술집 문을 닫아걸어 버렸다. 그러나 환한 대낮이라서 그런지 쉽게 잠이 오지는 않았다.

이상하게 설레는 사랑의 감정 같은 것이 그녀의 마음속에 밀려왔는데, 그것은 마치 오랫동안 어딘가를 찾아서 헤매던 새떼들이 무리를 지어서 하늘을 날다가 갑자기 그녀의 누추한 쪽방에 신기루처럼 찾아온 것처럼 그녀를 행복하게 했다. 그녀의 온 몸이 깃털처럼 가벼워지고 마음의 겹겹이 쌓인 상처들이 날개 밑으로 팔락이며 떨어지는 것 같았다.

그날부터 정숙은 사랑하는 사람이 올 것만 같아서 그녀는 술집 문을 활짝 열고 온 술집에 덕지덕지 낀 먼지와 여기 저기 구석에 떨어진 담배꽁초와 쓰레기들을 머리칼 하나도 남기지 않고 깨끗하게 청소했다. 날이면 날마다 그녀는 걸레를 깨끗하게 빨아서 누덕누덕 더께가 낀 술집 탁자를 문지르고 또 문지르며 술과 안주와 더러운 오물들을 씻어냈다.

그리고 그녀는 술집 귀퉁이에 쌓아 놓은 술병들을 전부 내다 버렸다. 이제는 술은 팔지 않기로 한 것이다. 탁자위에 꽃무늬 테이블보를 씌워 놓고 그녀는 혼자서 그곳에서 진한 모과차를 마시며 누군가를 계속 기다렸다.

그녀에게는 이제 억울했던 인생의 페이지들이 다 찢겨져 나가고 뒷집에 모과가 익어가는 소리가 그녀의 귓가에 동요처럼 들려왔다.

웅이는 늘 어리숙한 표정을 지으며 동네 초등학교 근처를 혼자서 맴돌며 시간을 보냈다. 정숙은 어린 마음에도 웅이가 학교를 가지 못하는 대신 자신의 가방이라도 들어보고 싶은 마음과 또 자기 팔이 아플까봐 무거운 책가방을 들어다 주고 싶어 하는 것을 알았었다. 그 웅이는 이사 가기 전 어느 날부터 그저 정숙을 보기만 하면 얼굴이 모과처럼 울퉁불퉁 해지며 벌겋게 변했었다. 아마도 이사를 가기가 두렵고 무서웠을지도 모를 웅이의 마음이 웅이의 얼굴을 때로는 붉게, 때로는 울퉁불퉁 만들었는지도 모른다. 정숙은 가끔씩 생각한다. 웅이는 글씨를 쓸 줄 알게 되었을까? 웅이라는 자기의 이름을 쓸 줄은 알게 되었을까....

웅이는 자신의 어린 시절에 한 줄의 연애편지처럼 소중한 아이였다. 기도원의 벽에 걸린 그 아름다운 글을 정숙은 몇 번이고 가서 베끼고 또 베껴서 술집 벽에 걸어 놓았다. 그림도 기도원에 벽에 있는 그림과 비슷하게 그려 넣었다. 그리고 정숙은 그 그림과 글을 보면서 수시로 생각했다. 하나님도 웅이처럼 바보가 아닐까 하고. 자기 같은 사람에게도 연애편지를 써서 기도원 벽에 붙여 놓고 이제나 저제나 자기를 기다리셨다는 것이 너무나 감동스러워 눈을 뜨나, 눈을 감으나 기도원에서 베껴온 아름다운 편지를 읽고 또 읽었다.

태초에 하나님이 자신의 형상대로

당신을 창조하셨을 때

당신의 하늘 위로 우주를 만들고

차례대로 별을 운행시키시며

맑은 공기를 불어 넣으셨습니다.

오직 당신 한 사람을 위하여 ....

나 자신 도저히 나를 용서할 수 없고

나 자신 도저히 나를 사랑할 수 없을 때

그때, 주님은 나를 용서하셨고,

그때, 주님은 나를 사랑하셨습니다.

그렇게 주님은 자신의 이름을 위하여

당신을 의의 길로 인도하십니다.

당신의 존재가 주님을 설레게 하며

기쁘게 하고

또한

간절함이 되며

목마름의 대상이 됩니다.

주님 말씀하십니다.

나의 사랑, 나의 어여쁜 자야

일어나 함께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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