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십년 전 내 첫시집의 해설을 써 주신 어느 교수님은
내 시집 해설의 제목을 '시와 상처'라는 제목으로 써주셨다.
그리고 그 시집의 해설의 첫 문장은
000의 시는 투명 수채와처럼 맑다.
라고 써주셨다.
나는 내 첫시집이 정말 투명 수채화같은지는 사실 전혀 감이 잡히지 않는 느낌이다.
왜냐하면 나는 그 당시 너무나 타락한 인간으로 살았기 때문이였고,
그런 내가 어찌 투명 수채화 같은 시를 썼단 말인가.
아무리 돌아봐도 돌아보고 싶지 않은 세월이고 옛 기억일 뿐이다.
나는 그 당시 시를 배신했고,
문학에 대한 진정성을 배신한 시인이였다.
그런 내가 시를 써보겠다고 잠깐 들어간 친구의 빈 아파트에서 나는 미친듯이
두달동안 시만 쓴 것을 가지고 시집이 내고 싶어서 그 당시 '한국문화예술진흥기금' 에
시집을 투고 했었다.
어찌보면 상금으로 나오는 천만원이란 거금도 탐이났던 것이다.
상도 타고 작가로 인정도 받고 상금도 받는 일석 삼조의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았던
욕심꾸러기였지 진정한 시인의 예의는 사실 별로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나는 지금도 내 첫시집을 보면 마음이 괴롭고 어찌생각하면 스산한 정도로 나를 인정해
주고 싶지않은 아픔이 있는 것이다.
그런데 그때 나는 운이 좋았던 것은 아닐까 싶다.
내 주변에 나를 아껴주시던 시인들이 여럿이 계셨고, 그 중에는 아직도 내가 늘 내 켵에 아껴두고
싶은 시인 선생님도 있다.
내 인생에서 소중하고 존경스러운 한 사람을 아무에게나 말하고 싶지 않을 만큼 나는 그 분을
존경하고 사랑한다.
왜냐하면 그 분은 나를 존중해주었고, 지금도 나를 항상 배려하시는 분이시다.
그래서 나역시 그분의 존함을 절대 아무에게나 함부로 꺼내어 들추이지는 않는 것이다.
사랑과 존경은 어쩌면 당연한 상호보완의 관계이니까
사랑하는 사람에게 배려는 당연한 것이다.
그리고 그를 아끼는 것도 당연한 것이다.
그래서 애초에 배려하지 않고 함부로한 관계는 깨어지고 상처만 남는 것은 아닐까.
어쩌면 나는 너무나 많은 사랑의 갈망 속에서 사랑이 상처로만 남았었나 하는 생각도 해본다.
그러나 그 사랑이 어떤 사랑의 색깔이던지 사랑이 시로 남았다는 것은 아름다운 일이다.
첫시집에서 이런 시가 있는 것을 보니 그 당시 내가 얼마나 시와 사람에 대해서
그리고 나의 청춘의 사랑에 대해서 아파했나를 다시금 돌아볼 수 있었다.
어느 사랑
뜰 앞에서
말라르메르의 목신의 오후를
읽어도
시가 눈에 들어오질
않았다
봄이 지나도록
사과꽃 핀 과수원에서
나는 봄을 앓는다
사람이 사람을 다치게 하는 곳
그곳에서 내려와 산다
사랑이 사랑을 다치게 하는 곳
그곳에서 내려와 산다
내가 앓는 봄 속으로
흰 꽃들이 멀어진다
마음 속까지 환해지는
봄길 하나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