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어질 결심을 해봤는가
김승옥 각본 '안개'를 읽으며
작가 중에서 자신이 쓴 소설을 시나리오 대본으로 각본을 써서 성공한 작가는
몇 명이나 있을까 싶은데
한국의 소설가 중에서는 김승옥 소설가께서 바로 그런 분이 아닐까 싶다.
'무진기행'이란 소설을 써서 동일한 작품을 가지고 '안개'라는 제목으로
각색을 해서 영화 '안개'를 만들어 냈는데,
김승옥 소설의 '무진기행'은 결국 한국영화의 큰 획을 그었던 작품 <헤어질 결심>의
모티브가 된다.
올해 초 봄에 세종에서 아산으로 이사를 왔고, 내 엄마 집 근처에 작업실을 마련했다.
그리고 나는 그때 우연한 기회에 내가 만나서 함께 일하고 싶었던 영화감독과 마침내
만남이 이루어졌고, 그 감독님과 몇 번의 미팅을 했고, 그리고 영화 사무실에서 일주일 정도를
지내면서 어떤 시나리오를 기획에 참여하게 되었다.
그때 오랜만에 다시 영화의 대본을 읽기 위해 샀던 대본집 중에 한 권이 영화 '안개'의
대본집이다.
나는 영화 <헤어질 결심>보다는 오히려 <안개>라는 대본집에서 더 밀도 있는 감정의 이입 같은
것을 느꼈는데, 주인공의 사랑이 안개처럼 애틋하게 서로를 갈망하지만,
안개처럼 애틋하게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리는 안개 같은 두 사람의 사랑 때문이었다.
안개 낀 무진이란 소도시에서 만난 두 남녀는 이렇게 말한다.
인숙 : 미칠 것 같아요.
윤 : 무진에 있어도 미칠 것 같고 도시에 있어도 미칠 것 같고....
ㅡ 스타북스 출판사. 책 제목 ' 안개'. 저자 : 김승옥 페이지 - 118쪽에 있음.
이 작품에서 서울과 무진은 이상과 현실이 대비되는 장소로 많이 읽힌다.
무진이란 곳은 일탈을 꿈꿀 수 있는 이상의 도시이고,
서울은 오로지 돈과 세속화에 찌든 도시인의 욕망을 선명하게 보여준다.
그 사이에서 갈등하는 주인공은 늘 안개에 싸여 사는 무진의 사람들이
안갯속에서 해가 뜨기를 기다리는 것과 같다.
나는 여자 주인공이 미칠 것 같다는 말에 남자 주인공이 무진에 있어도 미칠 것 같고
도시에 있어도 미칠 것 같다는 말로 응수하는 대목을 읽으면서
이 짧은 두 마디의 남녀 주인공들의 대사야 말로
이 시대 누구나가 가지고 있는 마음속 명대사 같다고 생각했다.
우리는 지금 어디에 살고 있어도 미칠 것만 같은 시대를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
불안과 상실의 시대에서 간신히 하루를 버티고 또 하루를 버티다가
그래도 무진 같은 일탈의 도시가 있다면 떠나고 싶은 건지도 모른다.
그리고 날마다 누군가와 헤어질 결심을 하면서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
도시의 화려함에서 벗어나 교통체증에서 헤어 나오고 싶고,
대출금의 목 조르는 압박감에서 벗어나고 싶고,
자신의 옷이 아닌 타인의 옷을 입고 하루 종일 일하는 직장에서 탈출해버리고 싶은 욕구는
왜 없겠는가.
그 속에서 나를 힘들게 하는 사람들과는 날마다 헤어질 결심을 하고 살지는 않는가.
나 역시도 수많은 도시와 사람들과 직장 속에서 날마다 헤어질 결심을 하고 살던
여럿이 사람들이 있었다.
그래서 때로는 그 도시를 떠났고, 그 좋다는 직장도 떠난 적도 있었고,
세속과는 상관없는 교회도 그런 사람 때문에 옮겨도 보았었다.
그러나 나는 오늘 성탄 예배를 드리면서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되었다.
"나는 나 때문에 그 도시를 떠나고, 그 직장을 떠나고, 연인관계에서 떠나고,
심지어 교회를 떠난 사람은 없었는지를..... 그리고 내 가족들은 나 때문에
얼마나 이 가정을 떠나기 위해 몸부림친 적은 없는지를...."
나 때문에 미칠 것 같은 사람, 그런 사람은 왜 없었겠는가?
어디를 가나 사람들은 상대방만 탓을 하는데, 나는 왜 돌아볼 수가 없는가?
나도 올 한 해 부모지만 병시중 드는 것이 너무 힘들어서 병드시고 아픈 부모님을 떠나고 싶었다.
남들은 와서 넓은 잔디밭도 있고, 집도 새집이라고 그렇게 부러워하는
이 전원주택의 작업실도 다 필요 없다며 때때로 미칠 것 같았던 한 해였다.
난 나의 착한 딸 콤플렉스에서 벗어나서 이제는 내 인생에 더 이상은 희생은 없다며
맏딸 노릇을 팽개치고 싶은 심정이 얼마나 들었던가.
그러나 늙고 병든 부모님의 잠자는 모습을 보면 아, 어찌하리 싶기도 하고 요양병원에 가기 싫어하시는
부모님 등을 떠밀 수는 없으니 하루를 견디고 하루를 견디며
이제는 브런치에 구독자가 한분 한분 늘어가는 재미에 그나마 하루의 위안을 삼을 줄은
꿈에도 생각해 본 적이 없는 일이다.
도시에 살아도 , 무진에 살아도 사람들은 미칠 것만 같고
안갯속에 살아도, 해가 뜬 곳에 환한 빛을 받아도 사람들은 미칠 것만 같은 것이다.
그러나 나는 오늘도 교회에 청년들이 캐럴송을 부르는 것을 들으며
아, 이런 노래야 말로 내가 미치는 것을 미연에 방지해 주는
특효약이구나 하는 것을 다시금 깨달았다.
왜냐하면 교회에 청년부들이 요즘 함께 서울역 노숙자들을 돕기 위해 주일이면 장을 봐다가
떡볶이, 김밥, 어묵을 만들어서 교회에서 성도들에게 파는데,
열명이 조금 넘는 청년부에 형제자매들이 서로 매주 모여서 그 일을 함께 하니
그들 속에서 생기는 에너지는 너무 밝았던 것이었다.
오늘 이 기쁜 성탄절에 그 청년들에 에너지를 받고 나는 예수님의 진정한 사랑이 무엇인지를
다시금 깨달은 것이다.
예수님은 서로 사랑하고 서로 존중하며 그 청년들처럼 서로 함께 선한 일을 할 때
말할 수 없는 사랑과 기쁨을 나눠줄 수 있는 사람들이 되어가는 것이다.
미칠 것 같은 세상에서 미칠 것 같은 현실에서
미치지 않고 제정신으로 살기 위해 나도 오늘부터 다시 힘을 내야겠다.
밥세끼 굶지 않고 살았던 나의 인생에는 분명 뼈를 깎는 내 부모님의 헌신이 있었으니
그걸 조금이라도 갚아가는 날들로
다시 나도 그분들께 밥을 지어드려 보자.
시골에 답답하다고 미치지 말고.
책 읽을 시간 없다고 집안일에 투덜대지 말고.
병드신 엄마를 쓰담쓰담해주어야지.
말기암에도 산에서 화목 보일러 나무 해오시고, 날마다 경로당에 뛰어가서 화투 치시는 너무 강력한 에너지의 대명사이신 우리 아버지도 사랑해 드려야지.
엊그제 새벽에는 내가 마당에 눈을 쓸었더니 평생에 이런 일은 처음이라며 나를 기특하게 여기시며 너털웃음을 지으시는 웃음보따리 우리 아버지도 쓰담 쓰담해 줘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