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튼, 산책.

by 소이





처음으로 혼자 동네 산을 산책하기로 마음먹었다. 정상까지, 중간까지 오르겠다는 것도 아니고, 산길 입구에 있는 절까지만 가겠다고 나섰다. 작년 연말에 받은 건강 검진 결과가 너무 참혹해서 이대로 있었다가는 병원 신세를 면치 못할 것 같았으니까. 운동센터에 100회 운동권도 끊었는데 아직 90번이나 남았다. 따뜻한 이불이 제일 좋다. 바깥은 아직 너무 춥고, 밥만 먹고 나면 세상 모든 의지가 사라지는 느낌. 그런 상태로는 산으로 산책을 나선다는 건 꽤 큰 마음을 먹어야 하는 일이지만, 오늘은 거실 문틈으로 느껴지는 따뜻한 바람결에 그 정도는 해낼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누구의 속도도 맞추지 않은 채 오롯이 홀로 있는 시간이 필요했는지도 모른다. 마음도 몹시 피곤했을 거니까. 지친 몸이지만 더 잔다고 나아질 컨디션도 아니기에 나섰다. 차로 20분을 달려 인근에 있는 산에 도착했다. 아주 가파른 초입의 길을 조금 오르면 천년 고찰 <용화사>를 볼 수 있다. 오늘은 여기까지만 올라도, 숨이 차오르는 느낌만 들어도 잘 한일이라고 스스로 칭찬해주고 싶었다. 걸어서 8분 거리에 있는 출근길도 차를 타고 가는 나는 그동안 과연 내가 두 다리를 가진 인간이 맞는지 체감할 겨를도 없이 일에 파묻혀 살았으니까.




비탈진 길에 켜켜이 줄을 선 차들 사이로 주차를 하고 내려보니, 산악회 버스들로 입구가 복잡했다. 산을 사랑하는 사람들은 계절을 가리지 않는다지만 산악회 버스들이 가득한 걸 보니 등산하기 좋은 날씨가 되었나 싶었다. 차에서 내려 열 발자국이나 걸었을까. 가파른 길에 겁이 나는 건 물론이고, 몇 발자국만 걸어도 숨이 헐떡거렸다. ‘나만 이리 힘든가….’ 주변을 둘러봐도 어느 누구 하나 나처럼 헉헉대는 이가 없다. 슈퍼 할머니와 슈퍼 할아버지들만 가득하다. 5분만 오르면 절이 나오는데 나는 1분도 안 돼서 숨이 차오르니, 몸이 이렇게 망가졌나 싶어 걱정이 됐지만 오늘은 숨만 차올라도 된다고 생각했으니, 어쩌면 헉헉댈수록 목표는 반쯤 이룬 샘이 된다.


온통 컴퓨터 모니터 앞에서 시간을 보내다가 하늘까지 닿을 듯 쭉 뻗은 나무들과 초록 잎 사이로 비치는 햇살을 맞으니 숨은 차지만 마음은 오히려 맑아지는 기분이 들었다. 아침저녁으로 먹는 처방약들에 지친 몸에도 좋은 에너지들이 채워지겠지 하면서. 그렇게 풍경에 시선을 한참 거두지 못하고 서있기를 반복하다 절에 도착했다. 작년에 왔던 용화사에는 절 입구 공간에 간이 의자를 많이 두었길래 앉아서 한참 동안 숲의 정취를 느낄 수 있었다. 이번에 보니 그 의자들을 모두 정리했나 보다. 작년에 왔던 기억을 떠올리며, 앉아서 명상을 하다가 내려가고 싶었는데 아쉬웠다. 앉을 곳은 더러 보였는데, 숲을 즐길 스폿은 보이지 않아서 용화사를 맴맴 돌았다. 그러다 보니 1시간이 훌쩍 지났다. 앉을 곳은 못 찾았지만 숲 사이로 보이는 의외의 풍경들을 담으며.






회사에서 숫자로 결과를 확인하는 게 버릇이 되다 보니 자꾸 걸음수를 보게 된다. 용화사를 그렇게 맴돌았는데도 걸음수는 3 천보를 겨우 채웠다. 내려와서 걸음수를 조금 더 채워보려고 근처를 걷는데… 어휴, 다리가 후들거린다. 그런데도 만보기는 겨우 3 천보를 채웠기에 이를 어쩌나 싶은 생각에 또 붙들리고 만다. 8 천보를 걸어도 느끼지 못했던 숨 가쁨과 다리 후들거림을 느꼈는데도 불구하고. 습관이 무섭다. 생각도 습관대로 하다 보니 습관처럼 스스로를 몰아세우는 거다. 용화사 까지만 가도, 숨만차도 괜찮다고 시작한 산책이었으면서. 그런 생각이 들자 ‘아차! 또 이런다.’ 싶어 그만뒀다.


숫자놀음으로 나를 다그친 걸 발견했다고 해서 그런 나를 또 다그치지 말자.

탁! 하고 알았음 된 거다.

가파른 산길을 산책하며 평소에 보지 못한 싱그러운 초록들로 마음도 채우고, 몸도 채웠으니 되었다.

산책도 충분했고, 햇살도 충분했고, 다리도 열심히 움직였으니 감사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