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나수이 400호'
'호피무늬 스커트'
'블랙 코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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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하게 생기지 않아서 야한 옷을 입어도 된다'는 생각을 했던 20대에는 어울리는 옷과 메이크업을 하기보다는 좋아하는 색깔의 립스틱을 바르고, 화려한 옷으로 스트레스를 풀었던 때가 있었다. 보통은 속살이 좀 많이 보이면 '야하다'라고 할 테지만 내 기준에서는 미니스커트, 과격한(?) 무늬의 옷이 '야한' 옷에 속했다. 그때는 누구도 말리는 사람이 없었는데, 아마도 어리고 말랐기 때문에 그 자신감으로 거침없는 패션을 고집했지 않았나 싶다.
나이가 들면서 30대부터는 '야하게 생기지 않았지만' 야하게 입을 자신감이 점점 줄었다. 선택하는 색깔도 점점 단순해졌다. 주로 이것저것 코디가 쉬운 색깔이나 실용성에 무게를 두고 옷을 골랐다. 그나마 화려함을 고수했던 부분은 립스틱이었는데 네온 오렌지, 네온 핑크, 바이올렛 컬러 등 비비드 컬러로 기분전환을 했었다.
최근 몇 년 사이에는 립스틱마저도 점점 자신이 없어져서 립밤이나 아주 내추럴한 메이크업만 하게 되었다. 한 두 달 전부터는 베이스 제품들도 톤이 맞지 않는다는 느낌을 받았다. 체형에 맞지 않는, 미련으로 가득 찼던 옷장을 비워낸지 그리 오래되지 않았는데 이제 화장품마저도 비워야 할 차례가 왔는지 외출할 때 거울을 보며 "도대체 뭐가 문제지?"라는 생각을 하는 횟수가 늘었다.
다 나이가 들어서 그런 거겠지만 이제는 어울리는 제품을 고르는 게 너무 어려워져서 퍼스널 컬러 진단을 받아보기로 마음먹었다. 오늘이 바로 그날.
세 시간에 걸쳐 컬러진단을 받고, 사용하는 메이크업 컬러까지 다 확인한 후 어울리는 컬러들을 추천받았다. 나는 '가을 뮤트'라는데 말은 어렵지만 아무튼 가을여자 느낌으로 입고, 바르고 하면 된단다. 너무 진한 것, 너무 쨍한 것 빼고. 그동안 집착했던 '레드 립스틱'은 영원히 넣어두라는 말과 함께(오늘도 포기 못하고 레드 립 하나를 챙겨갔었다)
즐겨 입었던 블랙 컬러 옷들, 어울리지 않지만 집착했던 레드 립, 무서운 동물 패턴 옷들은 다 워스트였다. 대신 톤 다운된 핑크, 브라운, 그린 컬러들이 베스트였고, 거기에 어울리는 패턴의 옷들과 액세서리, 향수까지 모두 베스트로만 구성된 것으로 추천받았다.
꽤 오랜 시간에 걸쳐 진단을 받고 보니, 다시 옷과 화장품을 구입하기 전에 진단받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고, 조금 더 비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던 옷장 비우기도 훨씬 쉬워졌다. 집에 오자마자 화장대에 있던 애매모호한 제품들을 금방 비워낼 수 있었는데, 비우면서 아깝다는 생각보다 선택이 쉬워졌다는 것에 마음이 훨씬 가벼웠다.
비우는 일이 어려웠던 이유 중 하나는 "아직 쓸만한데 괜히 버리는 건가?" 하는 것이었는데 이 부분이 아주 쉬워졌다. 쇼핑을 할 때에 좀 처럼 발길을 돌리기가 어려운 것 중 하나가 '할인'이다. 하지만 이제는 더 이상 쇼핑을 할 때에도 무조건 저렴하다고 사지 않을 수 있을 것 같았다. 퍼스널 컬러 진단이 단순히 어울리는 색을 알게 된다는 것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정리에도, 쇼핑에도 기준이 되어주니 제 값을 톡톡히 했다고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퍼스널 컬러 진단은 아주 똑똑한 소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