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달 전 독서모임 지정도서로 '이어령의 마지막 수업'을 읽고 회원들에게 '유서 쓰기'를 제안했었다. 그때 제안을 세 가지 했었는데 회원들 모두 세 가지 중에서 '유서'는 쓰지 못했다. 아무래도 '유서'라는 단어가 주는 무게감 때문에 쉽지 않았을 것 같다. 나도 그때는 못썼으니까.
요즘은 새벽에 꿈을 많이 꾼다. 깨고 나면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길을 잃거나, 위협을 당하거나 그런 종류의 꿈인 듯하다. 어제는 잠에서 깬 후, 꿈 때문에 마음이 혼란스러워 유서를 미리 써두지 않으면 안 될 것 같다는 불안감이 들었다. 남편과 아이에게 무언가 미리 당부해두어야 되겠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언제 죽어도 하나도 이상할 것이 없는 것이 인간의 삶인데 마치 영원히 살 것처럼 행동하는 사람이 바로 나 인 것 같아서 경각심이 들기도 했다.
어둠이 내려앉은 새벽에 서재로 들어가니 찬 공기에 몸이 더 움츠러들었다. 보일러를 틀고, 물 한잔을 가져와서 앉았다. 세상에 남기는 마지막 편지를 쓸 거라고 생각하니 모든 것이 소중하게 다가왔다. 물 한 모금, 새벽 공기, 쌓여있는 책들, 손에 만져지는 모든 것들이.
어디에 써서, 어디에 보관할지. 그런 것도 조금 고민이 되긴 했다.
문서 보관함에 있던 A4용지 두 장을 꺼내서 책상에 앉았다. 늘 쓰던 펜을 들고 종이 제일 위에 < 유 서 >라고 써봤다. 태어나서 수없이 쓰고, 고치고, 공유했던 많은 텍스트들 중에서 처음일지도 모르는 단어가 '유서' 아닐까? 억울한 일을 감당하지 못해 목숨을 다 바쳐 진실을 외치던 망자들이 남긴 것이 '유서'였던 것 같아서 어쩌면 미리 준비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지 못했을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흰 종이에 까만 두 글자를 써놓고 보니 '잘 결심했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어떤 말을 남기고 싶었는지 곰곰이 떠올려봤다. 몇 줄 적고 보니 온통 부탁이었다. 특히 남편에게.
건강해야 한다, 아들에게는 이렇게 해줬으면 좋겠다, 나 떠나고 장례는 이렇게 해줬으면 좋겠다.. 보험 서류는 어디에 보관되어 있는지, 은행 거래는 어디에 주로 하고 있었는지도 잊지 않았다. 유서대로 해 줄지는 알 수 없지만 아들이 다 크고 나면 재혼을 하라는 둥, 돈 관리 부탁까지. 나는 종이 안에서 훨훨 떠나지 못했다.
초고를 대강 마무리해두고(유서마저도 초고는 대강이 되고 말았다.) 다시 펼쳐서 조금 더 부탁하고 싶은 것들을 적었다. 3페이지를 쓰고 난 후 느낌은, 쿨하지 못하게 조금 더 쓰고 싶었다. 다 쓰고 나니 자꾸만 더 부탁하고 싶은 것들이 떠올랐다. 사실 뒤에 떠오른 것들은 어쩌면 잔소리가 될지도 모르는 것들이지만 떠나는 나보다 남은 사람이 걱정이 되는 마음은 자식 때문에 어쩔 수 없는 것이었다.
그래도,
이렇게 '유서'를 써두고 보니 삶이 더 소중하다는 것을 느끼게 되고, 혹시나 갑자기 떠나게 되는 날 최소한의 마음은 전할 수 있겠다는 알 수 없는 안도감을 느꼈다. 수년이 흐르고, 유서를 다시 써야 되겠다는 생각이 드는 날 이 종이를 보게 된다면 그동안은 덤으로 산 인생처럼 감사하는 마음이 들지 않을까?
서툴게 표현된 나의 첫 유서는 내가 없을 때쯤이면 한 번쯤 열어볼 곳에 소중하게 보관하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