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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이 Oct 27. 2023

3화. 소비단식 2개월 차

필요는 내가 만들기 나름이구나.

소비단식 2개월 차.

카드 빚 충격으로 결심한 소비단식. 시작한 9월 한 달은 순항했다. 문제의 10월. 그러면 그렇지.

추석 명절이 있어서 걱정했던 9월은 오히려 무리 없이 지나갔는데 10월 3번째 생활비를 관리하는 텀에서 망가졌다. 한 달을 세 번으로 나누어 10일 단위로 생활비 통장에 30만 원을 채워서 사용했는데 10일부터 불안 불안했다. 주말 식비 지출이 크기도 했고, 컨디션 조절 실패로 배달을 시킨 날이 많기도 했다. 결정적인 건 20일에 마지막 생활비를 현금으로 입금하지 않은 것!


현금이 없었던 것도 아닌데 통장에 남은 돈으로는 어차피 10일 동안 살 수 없을 것 같다는 생각으로 마지막 10일을 신용카드로 쓰게 됐다. 특히 주말에 가족들과 외식을 할 때 제일 갈등이 많았던 것. '내가 좀 더 잘 관리했음 마이너스가 되지 않았을 텐데 소비단식 때문에 가족들까지 힘들게 하는 것 같아'라는 마음의 소리가 자꾸 들리는 통에 마음이 힘들었다. 거기다 예상외 교육비 지출 등 다른 항목들에서도 자꾸 예산에 없던 지출이 생겼다. 연이은 돌발 지출들로 20일부터는 소비 기록까지  놔버렸다;;; (하~ 난 왜 이럴까..)


10월 중순까지 통제도 잘 되고, 기록도 잘하고 있어서 희망적이었다. 그 희망으로 안 산다던 가계부를 사버렸고, 가계부가 도착하자마자 신나게 날짜도 다 써놓았다. 이대로라면 내년 예산도 세울 수 있겠다며 패기가 넘쳤는데 왜 가계부만 사고 나면 그다음부터 지출 관리가 느슨해지는지. 이건 징크스가 아닐까 하는 의심까지 든다. 가계부 구입을 시작으로 예정에 없던 운동화도 하나 사고, 과일도 대량으로 구입했다.(이때부터 정말 놓은 건가..) 아침 과일식을 하는데 과일값을 무시하기가 힘들었기 때문에 할인을 지나칠 수 없었다.




화룡점정은 이틀 전 동네 마트에서 했던 <막 퍼준데이> 행사였다. 바나나가 있어야 여러 가지 과일 갈아 마시기 좋아서 바나나가 꼭 필요했다. 그런데 이것만 사자고 들어간 마트에서 아줌마들이 날아다니는 진풍경을 목격한 것이 아닌가. 왜 이렇게 사람이 많고 아줌마들의 카트가 고속으로 움직이는가 했더니 1년에 한 번 있다는 할인이어서 그랬던 것이다. 여기에서 바나나만 샀음 난 진정한 승자가 되는 건데.. 나 역시 이미 카트에 막 퍼넣고 있었다.(마트에서는 퍼주고, 나는 퍼담고..)


그렇게 계산대에 오른 금액이 7만 원이 넘었다. 물론 결제는 신용카드였다. 만 원짜리 무화과를 1,980원에 집어왔을 때 정말 기분이 좋았다. 4천 원짜리 바나나도 1,980원에 샀고, 나머지 식재료도 모두 10~30% 할인을 받았다. 1년에 한 번 있는 이런 날을 지나칠 수 없다며 갑자기 고기도 사고, 아들이 좋아하는 프링글스도 네 통이나 담았고, 1+1 양반김도 포기할 수 없었다. 이 정도면 엄청 이득인데 다음 주(11월) 식재료를 조금 당겨서 썼다고 생각하자 싶었다. 마트에서 본 날아다니는 아줌마들과 마찬가지로 나 역시 지지 않고 획득한 할인 품목들에 뿌듯했다.(왜 그들이 달릴 때 아묻따 같이 냅다 달렸을까..)


집에 돌아와서 얼마나 저렴하게 샀는지 보려고 영수증을 열어보니 전체 금액에서 2만 원 정도 할인된 거였다. 그제야 약간 정신이 들었다. 체감상 30~40% 저렴하게 산 기분이었는데 고작 2만 원이라니. 물론 예산에 맞춰 생활할 때 1,2만 원 지출이 적은 돈은 아니기에 할인받아 산 건 분명 잘한 거겠지만 당장 지출하지 않아도 될 식재료까지 사 온걸 보니 얕은 한숨이 나왔다.  









"아니야. 어차피 필요한 건 쓸 수밖에 없어! 이게 아낀다고 아껴지는 거냐고." 신용카드로 소비한 목록들을 떠올리며 합리화하고 있었지만 모래성처럼 무너진 내 각오들이 자꾸만 떠올랐다. '뭐가 문제였을까? 다음 달은 또 어떻게 해야 하지? 어떻게 세 달도 못 가서 이렇게 되냐' 속 시끄러운 소리가 쉬지 않고 들려왔다. 


물론 속수무책으로 돌발 지출을 하면서 확실하게 알게 된 것도 있다. 체크카드에서 정해진 금액을 쓸 때는 계속 남은 잔액을 신경 쓰다 보니 소비 조절이 쉬웠는데 신용카드로 가면서부터 돈을 쓰는데 대한 두려움이 없어져 버렸다는 것, 이미 아는 지출이지만 소비 노트에 기록하지 않으면 지출에 대한 인식이 무뎌진다는 것, 그리고 예상외 지출이 생길 때를 대비해서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 하는 전략도 필요하다는 것이다. 11월은 어떻게든 이 세 가지 실수를 줄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다행인 건 예전 같았으면 '지난 소비기록은 적어봐야 뭐 하나' 생각했는데 지금은 지났더라도 지출 항목을 적으면서 좀 더 상세한 피드백을 해보려고 한다. 어차피 이런 일 전혀 생기지 않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으니까. 10월이 다 지나가기 전에 밀린 지출항목을 적어보고 11월의 실수를 줄여보려고 한다. 지난 기록을 들춰보면 아마도, 분명! 예산을 초과해서 지출했겠지만 여기서 놔버리면 다음 달도, 그다음 달도, 어쩌면 내년 내내 소비지옥에 시달릴 테니까.


소비 단식은 더하기 빼기의 문제가 아니라 마음의 문제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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