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단식 중입니다
소비단식을 하기 전에는 신용카드로도 충분히 소비조절을 할 수 있다고 믿었고, 실제로 어느 정도는 가능하기도 했지만 그만큼 무너지기도 쉬웠다. 하지만 체크카드나 현금으로 예산 안에서 생활할 자신이 없어서 신용카드를 놓지 못했다. 9월부터 시작된 소비단식의 가장 큰 변화는 체크카드 사용이다. 생활비 지출 통장에 1일, 11일, 21일에 30만 원씩을 충전해서 식비(외식비 포함)를 관리하고 있다.
11월에는 무지출도 이틀이나 있었다. 사실 무지출을 염두에 두고 한 것은 아니었는데 '어쩌다'보니 무지출인 날도 있었던 것이다. 아직까지도 빈틈없이 관리하는 수준은 아니기 때문에 며칠 동안 가계부 기록을 미루기도 하고, 식비 외에 다른 영역 지출은 신용카드를 사용하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일 큰 지출 항목인 식비가 예산 안에서 관리되고 있다 보니 무지출 스티커를 써보게 됐다.
9월, 10월에는 식비를 쓰지 않은 날에도 어디선가 자꾸만 조무래기 같은 지출이 생겨서 하루도 지출 없는 날이 없었건만 이번에는 무지출인 날이 무려 이틀씩이나 있어서 특별히 스티커도 붙여봤다. 무지출 스티커는 작년 가계부에서 한 번도 쓰지 않아서 스티커만 찢어서 보관하던 거였는데 드디어 이렇게 써보는구나.
지금까지 무지출에 큰 관심이 없었다. 그래서 이 스티커를 한 번도 써보지 않았는지도 모르겠다. 숨만 쉬어도 돈이 나가는 세상이라 '무지출'은 생각만으로도 답답해졌다. 하지만 9월부터 내가 지출한 모든 것을 펼쳐놓고 '빚을 청산하자!' 마음을 먹으니 나를 답답하게 하는 건 '무지출'이 아니라 '과다 지출'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지만, 여전히 무지출 챌린지를 하거나 무지출을 위해 애쓰고 싶은 마음은 들지 않는다. 최소한의 필요한 것만 구입하고, 최대한 나의 노동으로 집밥을 해 먹으며, 타인에게는 인색하지 않을 만큼 베풀어야 한다는 조건만으로도 마음의 무게가 차오르기 때문이다.
아들이 갑자기 발목을 삐여서 병원을 가야 했다.
한두 달 전 뼈가 부러졌었는데 또 뼈가 부러졌으면 어쩌나 걱정이 되면서 병원비와 실비 청구도 떠올렸다.
2주 만에 친정엄마를 만나면서 맛있는 점심을 사드려야 하는데 또 예산을 생각했다. 가능한 범위 안에서 너무 빈약하지 않게, 엄마가 좋아하는 음식을 사드리고 싶었다.
아들이 처음으로 나간 수학 경시대회에서 우수상을 받았다. 학원에서 전화가 오고, 온 가족이 기뻐했다. 아이도 걱정하던 시험 결과가 좋으니 너무 행복해했고, 주말에 뷔페에서 맛있는 저녁 식사를 하고 싶다고 했다. 남은 예산이 얼마인지 떠올렸다.
행복하고, 축하할 일이 생기는 만큼 통장에 있는 돈을 지키기는 힘들었다. '무지출'은 절대 '혼자' 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돈 관리를 부부 중 누가 도맡아서 하고 있든 온 가족이 '무지출'에 마음을 모으지 않는 이상 때때로 가족들의 반발이 따르기 때문이다.
나는 아직 '무지출'을 강행할 각오가 되어 있지 않고, 주말에만 함께 식사를 할 수 있는 우리 가족의 라이프 스타일 때문에 외식비에서 자유롭지 않다. 그래서 이번주에도 주중 지출을 최대한 자제하고 주말에는 예산 안에서 후하게 쓰는 것으로 그럭저럭 넘어가게 되었다.
소비단식 3개월 차,
여전히 지출 관리는 서툴고, 예산 범위를 넘으려고 할 때 가족들을 기분 좋게 설득하는 것이 쉽지 않지만 11월 가계부를 돌아보면 결코 적게 소비하지 않았다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아직 말일이 되기까지 며칠 남았지만 우리 가족 식비는 오늘 점심을 마지막으로 탈탈 털어 썼다!
(아,, 나는 이제 남은 4일을 어떻게 버티나 깜깜하지만 어떻게든 버텨봐야 되겠다)
11월 소비단식의 가장 큰 교훈은!
'무지출'보다 '함께 하는 지출'을 조절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 남은 11월은 냉장고를 파먹으며, 카드 지출에서 무너지지 않도록 잘 방어해야 되겠다!
** 소비단식 이야기는 2주마다 발행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