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발 그만 먹어!!!
올해는 어디가도 제대로 캐롤이 흘러나오는 걸 듣지 못했지만 그래도 연말이고 크리스마스다. 우리집도 특별한 계획이 없어서 그냥 집에서 쉬었다. 예산없이 지낼 때에는 조금은 특별한 기분을 느끼고 싶은 마음이 앞서 어디라도 가볼까 했겠지만 요즘처럼 소비 단식을 하고 있는 경우는 안 쓰는게 가장 큰 평화다.
다른건 몰라도 아이의 크리스마스 선물은 해줘야지 했는데 남편이 아이 선물을 결제해준 덕분에 아이는 원하는 선물을 받고(허리가 휠 것 같은 레고였다.. 잘한걸까..), 나는 마지막 10일의 생활비를 조금 더 안정적으로 쓸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결국 막지 못한건 식비. 우리집은 언제나 식비가 이슈다.
이번 크리스마스에도 식비가 제일 큰 걱정이었다. 미리 지출을 좀 더 줄이고 관리하긴 했지만 분명 특별한 날이라고 외식도 할 것 같고, 기분 내자고 야식도 할 것 같았다. 지출을 줄이기 위해 고민을 하다보면 항상 따라오는 감정은 '미리 좀 잘 관리했음 좀 더 여유로웠을텐데' 라는 자책감이다. 돌아보면 혼자 쓴 것은 아니지만 내가 생활비 전반을 관리 하는 입장이기에 전체 돈 관리를 잘 하지 못했다는 생각이 늘 따라붙기 때문이다. 소비단식 이전의 지출을 보면 반성을 하는 부분도 있긴하다. 그래서 늘 반반치킨처럼 억울함과 미안한 마음이 함께 든다.
연말에는 더 바빠지는 남편의 일 때문에 토요일 저녁부터 배달이 이어졌다. 배달비가 아깝기도 하고, 배달 용기에 식사하는 것도, 배출되는 쓰레기도 신경이 쓰여서 되도록이면 사오거나 나가서 먹고 오려고 하지만 주말에는 꼭 배달 어플을 켜게 된다. 주중 집밥을 잘 해먹다가 주말이 되면 배달을 시키는 데는 몇 가지 이유가 있는데 그중 한 가지가 남편 입맛에 맞게 9첩 반상을 차릴 자신이 없다는 것이다. 물론 나도 일주일 열심히 집밥을 차렸으니 주말에는 남이 차려주는 음식을 먹고 싶다는 생각이 단단히 자리 잡기도 했다.
이런 이유들 때문에 주말 외식이 자리를 잡았고, 이것은 우리집 식비를 크게 탕진하게 되는 이유가 되었다. 소비단식을 시작하면서 거의 매일 지출 점검을 하다보니 많이 좋아지긴 했지만 한 번만 끈을 놓아도 돈이 쏟아진 물처럼 나가곤 한다. 보통은 적당한 1인 식사비용을 생각해서 외식을 하는 편인데 그래도 물가가 많이 올라서 부담이다.
이번 크리스마스는 외식 이외에 배달 어플로 주문한 것만 5건이다.(남편은 왜 자꾸 입에 뭔가 집어넣을까...) 토요일 저녁부터 양식, 중식, 디저트, 야식 등 다양한 음식들을 주문했다. 크리스마스 이브에 굴구이를 먹으면서 탕진의 피날레를 장식했다.
연휴 내내 예상을 넘어서는 지출이 일어났고, 기분좋게 지갑을 열었을리 없다. 중식을 시킬때는 메뉴를 잘못시켜서 한입 먹으면 위장이 타버릴 것 같은 불짬뽕때문에 분위기가 안좋았고, 디저트를 시킬때는 왜 자꾸 안먹어도 되는걸 시키냐며 싸웠다.
야식에서도 물론 언쟁이 오가며 우리는 1만원 내외의 메뉴를 정하는 과정에서 계속 옥신각신 하게 됐다. 마지막 굴구이를 끝으로 더이상의 지출을 없겠지 했으나 돌아오는 길거리에 보이는 하얀김이 올라오는 호빵집을 지나치지 못하고 남편이 또 차를 세우는 바람에 호빵까지 결제하고 나서야 겨우 지출에 브레이크가 걸렸다. 나도 이 모든 메뉴를 함께 먹었으니 무슨 할 말이 있겠냐마는, 내내 날을 세웠던 이유는 마음의 여유도 함께 지출되었기 때문이었다.
온가족이 즐겁게 연말을 보내는데에는 많은 돈이 있어야 하는 건 아니지만 평소보다 많은 지출이 생기는 건 분명하다. 미리 어느정도 예상을 하기는 했지만 내 속을 모르는 남편은 이것도 하나 더 못시키냐고 서운했을테고, 작은 지출을 무시하면 빚이되어 돌아올 수 있다는 걸 뼈져리 느낀 나로서는 지출 자체에 관대할 수가 없었다.
연말에 가족이 함께 쓴 지출을 '탕진'이라 쓰고 '여유'까지 없는 모습을 보니 재테크 루저가 된 것 같은 기분을 지울 수는 없지만 아직 올해가 딱 일주일이 더 남아있고 그 중에는 우리집 식비 탕진일인 주말도 한번 남아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만 한다.
가정의 경제 상황은 가족이 모두 함께 노력해야한다는 말이 있던데 아무래도 그동안 부족했던 내 모습을 생각하면 가족들에게 쉽게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갑자기 많은 부분을 줄이는 것에는 가족들의 반발도 따를 것 같았다. 하지만 새해에는 무조건 안쓰는 것이 아니라 조금 더 현명하게 지출하고, 돈을 관리 할 수 있는 방법을 공부하면서 가족들도 가벼운 소비단식에 동참할 수 있도록 지혜롭게 앞장서야 되겠다는 다짐을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