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고양이 가족

서른둘과 서른넷, 그리고 네 살

by 제이


모두가 그러하듯 나도 내 고양이가 세상에서 가장 예쁘다.

내가 처음 케이의 집에 방문했던 우리는 처음 만났는데, 여태 알았던 고양이와는 사뭇 달랐다. 똑똑한 건지 성격이 좋은 건지, 생전 처음 보는 내 무릎에 엉덩이를 딱 붙이고 앉아 끊임없이 쓰다듬어달라 연신 머리를 내 손에 비벼댔다. (물론 이때는 나에게만 특별히 그러는 줄 알고 무척 감동했었다.) 처음 보는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알고 이렇게 친한 척을 하는지, 본인의 엉덩이를 내미는지 나는 도통 이해할 수가 없었다.


나의 고양이 가족은 부산에서 태어났다. 어느 건물 천장에서 형제들과 함께 구조되었다고 하는데 막내라서 몸집이 유독 작았다고 했다. 삼 개월쯤 되었을 때 이 아이에 대한 인스타그램 게시물을 본 케이가 KTX를 타고 한달음에 내려가 품에 안고 고양시로 왔다. 햇살이 잘 들고 넓은 거실이 있는 집에서 자유분방한 케이와 함께 끝내주는 캣초딩 시절을 보냈다. 그리고 두 살에서 세 살이 되던 해에 나를 또 다른 가족으로 받아들이며 서울 한복판의 소나무가 잘 보이는 집으로 옮겨왔고, 두 명의 사람과 함께 동거를 시작했다. 새벽에 일어나 일찍 출근했던 나를 하루도 빠짐없이 깨우고, 내가 신발을 신고 나갈 준비를 마치면 그제야 케이 옆으로 가 몸을 뉘었다. 퇴근길에 내가 오는 소리가 멀리서부터 들리는지 언제나 우다다 뛰어나와 내 발등에 발라당 눕곤 했다. 한참을 자다가 다리가 저려 몸을 반쯤 일으켜보면 어김없이 내 다라 사이에 대자로 뻗어있곤 했다. 간식이 들어있는 서랍은 기가 막히게 알아내서 그 앞에 앉아 당장 내놓으라고 시위를 하기도 하고, 내가 조금 크게 떠들기 시작하면 발로 내 입을 막는 의사표현이 확실한 어른 고양이로 자랐다. 그리고 나는 이 아이의 가장 좋은 침대이자, 전기매트이자, 캣타워가 되었다.


이런 서울 생활이 조금 익숙해지고 네 살이 되었을 무렵 두 인간 가족은 지구 반대편으로 떠날 계획을 세우고 있었고, 당연히 이 아이도 가족의 일원으로서 비행기를 탈 준비를 시작해야 했다. 하물며 사람도 힘든 이 긴 여정에 합세하게 된 고양이는, 갑작스러운 검역일정에 싫어하는 동물병원을 여러 번이나 가야 했고, 답답하고 비좁은 케이지 속에 적응해야 했다. 그리고 수많은 걱정 속에서도, KTX를 타고 부산에서 고양으로 갔던 것처럼, 케이의 품에 안겨 비행기를 함께 타고 지구 반대편 이 도시에 입성했다. 얼마나 힘들었을지 직접 말해주지 않으니 가늠할 순 없었지만, 다행히도 케이지에서 나오자마자 좋아하던 간식과 물을 먹기 시작했고, 화장실에 가서 신나게 모래놀이를 해주었다. 그리고 나선 너무 걱정 말라는 듯 평소처럼 나의 다리 사이에서 잠을 청했다. 생각보다 빠르게 루틴을 만들어갔고, 조금 지나자 다시 서울에서처럼 샤워하는 걸 지켜보기 시작했고 저녁에 귀가할 때면 우다다 뛰어나와 배부터 보여주기 시작했으며 간식이 들어있는 서랍장 앞에서 어김없이 야옹 소리를 내며 시위를 하기 시작했다.


종종 물끄러미 구슬 같은 눈을 하고 빤히 나를 쳐다볼 때면 참 너도 대단하다는 말이 절로 나오곤 한다. 부산에서 태어나 경기도를 거쳐 서울에서 이제는 지구 반대편의 이곳까지. 원했던, 원하지 않았던, 이기적인 인간들의 결정에 따라 옮겨 다니는 게 쉽지 않았을 텐데 한 번도 아프지도 않고 씩씩하게 잘 따라오고 잘 적응해 주었다. 내가 부르면 언제나 대답하며 신나게 달려오고,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여기저기 기웃거리며 돌아다니다가 고로롱 소리를 내며 내 팔을 베고 잠을 청하기 시작하면, 책임감이 솟구쳐 조금 더 좋은 환경을 만들어주고 싶단 생각에 내가 더 열심히 살아야겠다고 다짐하게 된다.


곧 지금보다 햇살이 잘 들고 넓은 집으로 다시 이사를 하게 된다. 케이에게도 나에게도, 그리고 우리 고양이 식구에게도 더없이 좋을 일이다. 창가로 보이는 커다란 나무와 작은 골목길이 나와 케이의 마음에는 쏙 드는데, 고양이 식구에게도 마음에 드는 선물이 되길 바란다. 또 다른 계절이 오면 햇빛 잘 드는 창가에 턱을 괴고 누워 날아다니는 새를 구경하고 기분 좋은 골골 소리를 내겠지. 그리고 지금껏 그래주었듯 그곳에서도 잘 적응하고 건강하게 지내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멋들어진 캣타워를 수없이 검색해 본다.

작가의 이전글9. 행복 총량의 법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