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둘과 서른넷, 그리고 네 살
한국에 있는 친구들과 가끔씩 연락을 주고받을 때면 언제나 대화 말미에 택배 보내줄 테니 뭐가 필요하냐는 질문을 받는다. 아마 친구들은 한국의 신상 라면이나 과자와 같은, 지구 반대편까지 보내기도 용이하며 동시에 가끔씩 한국을 추억하며 먹을 수 있는 것들을 상상하고 물어보는 것일 테지만 애석하게도 나의 대답은 언제나 우럭회 한 접시다.
내가 선택한 나라가 음식이 맛없기로 유명하지만, 사실 처음 이곳에 도착했을 때 나는 많이 신이 나있었다. 고소한 빵과 버터, 윤기 나는 반숙 계란프라이와 소금 후추만 뿌려도 풍미 가득한 버섯들이 유독 맛있게 느껴졌고, 수십 가지의 치즈와 햄은 그야말로 천국 같았다. 한국보다 10배는 싼 와인 가격에 저녁마다 와인 한 병을 사들고 귀가해 버섯과 채소를 잔뜩 때려 넣은 파스타와 함께 했다. 평소에 반찬투정을 하거나 음식을 가리는 편도 아니었기에 이곳의 식문화에도 곧 적응할 것이라는 자신감이 넘쳐흘렀다.
하지만 내가 간과한 커다란 사실은 이곳에는 24시간 영업하는 국밥집도, 오만가지 음식을 다 파는 김밥천국도, 노량진 수산시장도 없다는 것이다. 내륙의 나라라 횟감 생선을 구하기도 하늘의 별따기이며, 마트에 널려있는 소고기는 한국과 다르게 마블링 하나 없이 마냥 붉었다. 그나마 익숙한 돼지고기는 잘못사면 역한 냄새가 나서 못 먹기 일쑤였고, 배달 앱을 설치해 보아도 음식값의 두 배가 넘어가는 배달비에 놀라 뒷걸음질 치게 되었다. 한국에서는 선택의 문제였지만 이제는 선택 조차 할 수 없는 상황에 놓여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 데에 그렇게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나의 오만함은 얼마 지나지 않아 한국에서는 엄마가 정성스레 보내줘도 잘 먹지 않았던 소중한 김치와 집 앞 골목에 있던 백반집에 대한 그리움으로 바뀌었고 늦은 시간에도 푸짐하게 배달해 주던 단골 횟집과 온갖 것들이 다 있는 자랑스러운 한국의 편의점에 대한 찬사로 바뀌었다. 그리고 자연스레 집 근처 아시아 마트로 가 평생 사 먹지도 않던 김치와 쌀을 사 왔다.
나와 다르게 케이는 이곳에 오기 전부터 음식에 대한 걱정을 한가득 안고 있었다. 잠깐 살러 가는 것이 아니니 그곳의 식문화에 적응을 해야 한다고, 어차피 거기서도 판다고 만류하는 나의 모습을 뒤로하고 케이는 꿋꿋하게 또는 나 몰래, 각종 육수용 큐브나 건어물, 작은 용량의 간장, 고추장, 참기름 같은 것들을 캐리어에 담았다. 쌀밥을 그리워하면서도 냄비밥이면 충분하니 짐을 늘리지 말자는 나를 설득해 아마존에서 우리가 한국에서 쓰던 그대로의 밥솥을 저렴하게 구한 것도 케이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 오만했던 나는 케이의 선경지명에 감탄해야 했고, 약간의 놀림과 함께 케이가 의기양양하게 꺼내놓는 한국 식재료를 그제야 소중히 여길 수 있게 되었다.
반년정도가 흐른 지금 우리의 식사는 한국에서보다 더 한국적이다. 시간이 흐르니 냄새가 나지 않는 돼지고기를 파는 상점을 알게 되었고, 부드러운 소고기 부위를 찾아낼 수 있게 되었다. 닭고기를 사 집에서 직접 튀겨 치킨 파티를 벌이기도 하고, 이곳의 햄과 소시지를 잔뜩 넣은 부대찌개도 맛있게 끓여 먹었다. 작은 사이즈의 파를 발견한 날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사자고 서로를 부추겨 파김치를 담그고, 근처에 사는 브이와 함께 김장을 하고 수육을 삶아 먹기도 했다. 아시아마트에서 신라면이 세일하는 날엔 꼭 두 봉지씩 구입해 찬장에 넣어놓고 흐뭇하게 바라보고, 고등어 통조림을 발견한 날엔 살면서 느껴보지 못했던 엄청난 희열을 느낀 고등어조림을 해 먹었다. 이 정도면 꽤 잘 먹고 잘 살고 있다고 할 수 있겠다만, 아직까지도 해결하지 못한 유일한 것이 바로 회다. 처음 이곳에 왔을 때 집 앞 마켓에 오는 생선트럭에서 참치 한 덩이를 사다가 회덮밥처럼 썰어먹은 적은 있지만 나에게 만족을 줄 수 없었다. 내가 원하는 것은 한국의 횟감이 그렇듯 쫄깃하고 싱싱한 제철 생선 한 접시였다.
회사를 다니던 시절, 퇴근 후 케이와 함께 종종 들리던 동네 선술집이 있었다. 언제나 시큰둥한 표정의 사장님이 멋 부리지 않고 내어주던 음식들을 좋아했다. 특히 계절이 바뀔 때마다 제철인 생선을 숙성한 사시미로 내어주셨는데, 따뜻한 술 한잔을 곁들여 몸을 녹이고 입에 가득 퍼지는 신선함과 담백함으로 하루의 시름을 잊곤 했다. 집에 돌아오면 입에서 풍기는 생선 냄새에 기웃거리는 고양이의 얼굴까지가 완벽한 하루의 마무리였다. 이곳에서 한국에서의 퀄리티를 바랄 수는 없겠고 바랄수록 내 마음만 더 아파지겠지만, 그곳의 기억을 종종 추억하게 되는 요즘이다. 언제가 될지 아직은 모르겠지만 가족과 친구들을 보러 한국에 잠시 방문하게 된다면 모든 약속을 노량진 수산시장에서 잡고 싶은 마음이다.
번외로 나의 고양이 가족은 태어났을 때부터 줄곧 한 브랜드의 사료만 먹고 있는데, 다행히도 그 사료가 글로벌한 브랜드인지라 이곳에서도 쉽게 구할 수 있었다. 환경은 바뀌었지만 그래도 밥만큼은 달라지지 않은 고향의 맛을 즐기고 있는 셈이다. 이쯤 되니 이 녀석이 참 부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