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창다리의 두 번의 인연
1990년의 봄, 대한민국은 축제의 여운과 성장의 열기로 들끓고 있었다. 서울 올림픽을 성공리에 치러낸 조국은 국제무대의 주연으로 발돋움했고, 내 고향 변산반도 역시 국립공원 지정과 함께 천지개벽 중이었다. 굽이진 길은 넓게 펴지고, 내변산 깊숙한 곳까지 터널이 뚫리며 과거의 흔적들을 지워나갔다.
오대양을 누비던 마도로스에서 세계 최고의 오일 메이저, 쉘(Shell)의 선주 감독관이 된 나는 이제 기름때 묻은 작업복 대신 말끔한 정장을 입고 부안 터미널 '약속 다방'에 앉아 있었다. 불과 얼마 전, 링링과의 가슴 아픈 이별을 뒤로하고 가족들의 간곡한 청에 못 이겨 나선 맞선 자리였다.
공교롭게도 이곳은 링링을 잊지 못해 멍하니 앉아 술잔 대신 한숨을 들이켜던 그 다방이었다. 주인도, 낡은 소파의 질감도 그대로였지만, 오늘 내 가슴을 파고드는 공기는 그때와는 사뭇 달랐다.
다방 문이 열리고 한 처자가 들어오는 순간, 나는 나도 모르게 숨을 멈췄다. 자리에 앉아 통성명을 하는 내내 머릿속에서는 정체 모를 파노라마가 휘몰아쳤다. ‘어디서 봤을까. 분명 처음 보는 얼굴인데, 왜 이토록 가슴 한구석이 아릿할까.’ 마치 잃어버렸던 기억의 파편을 수십 년 만에 마주한 것 같은 묘한 기시감이었다.
그녀는 유난히 피부가 하얬다. 시골에서 자랐다기엔 믿기지 않을 만큼 고운 살결 위로, 수줍게 웃을 때마다 살짝 드러나는 작은 옥니가 눈에 들어왔다. 그녀는 해창다리에서 멀지 않은 백련리에서 줄곧 자랐고, 부안에서 여고를 졸업했다고 했다.
변산면을 가려면 하서면 백련리를 반드시 거쳐야 했다. 통학버스에서 수없이 마주쳤을 그 수많은 여학생 중 한 명이었을까. 그때는 눈길 한 번 주지 않았던 누군가가 지금 내 앞에 운명처럼 앉아 있는 것일까. 나는 표정을 갈무리하며 침묵했다. 확인하는 순간, 어렵게 다잡은 내 인생의 항로가 다시 소용돌이칠까 두려웠다.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어머니가 문고리를 잡고 물으셨다. "경열아, 어떻든? 색시가 참하다고 소문이 자자하던디!" 나는 짧게 대답했다. "좋지도, 싫지도 않아요."
그 말은 곧 '승낙'이었다. 아들이 번듯한 기술자가 되어 장가가는 것만이 유일한 소원이었던 어머니는 내 대답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혼사를 밀어붙이셨다. 상대측에서도 별 말이 없다는 전갈이 왔다. 양가 어른들의 열띤 독려 속에 우리들의 의사는 거대한 조류에 휩쓸린 뗏목처럼 빠르게 흘러갔다.
하지만 내 마음속엔 스릴 넘치는 갈등이 시작되고 있었다. 싱가포르에서 불량배들에게 당해 모래 위에 쓰러진 나를 구출해 주었던 여인, 링링. 그 인연으로 맺어졌던 사랑은 비극으로 막을 내렸다. 그런데 이제, 15년 전 해창다리 아래 차가운 물속에서 내가 직접 건져 올렸던 그 소녀가 내 아내가 되려 하고 있다. 나를 구출해 준 여인과 내가 구출해 준 여인.
이 기묘한 운명의 데칼코마니 사이에 서서 나는 전율했다. 링링과의 사랑이 '나를 살려준 은혜'에 대한 보답이었다면, 이번 사랑은 '내가 살려낸 생명'에 대한 보답인가. 아니면 하늘에서 내게 보내준 또 다른 천사인가.
일주일 후, 우리는 둘만의 첫 데이트를 가졌다. 1990년대 초 부안 읍내의 초라한 양식집에서 우리는 어색하게 칼질을 했다. 서걱거리는 나이프 소리만이 적막을 메웠다. 식사를 마친 뒤 서림공원(성황산) 산책로를 걸었다. 해 질 녘 산을 내려올 때쯤 나는 용기를 내어 그녀의 손을 처음 잡았다.
"앗...!"
손끝으로 전해지는 온기가 너무나 따뜻했다. 15년 전, 하얀 모래사장 위에 눕혀져 가냘프게 떨리던 그 소녀의 체온이 이랬을까. 젖어버린 블라우스 너머로 느껴지던 그 수줍은 전율이 내 손바닥에 그대로 재현되는 것만 같았다.
연애는 초스피드로 진행되었지만, 내 마음 한편엔 불안한 안개가 자욱했다. 링링과의 사랑처럼 이 사랑 뒤에도 넘지 못할 거대한 장벽이 숨어 있는 것은 아닐까. 해창다리 아래 물귀신이 잡아간다던 그 원한 서린 괴담처럼, 우리의 결합이 뜻하지 않은 풍랑을 만나는 것은 아닐까. 아니, 어쩌면 그녀는 내 인생의 모진 풍랑을 막아주기 위해 하늘에서 내려준 천사가 아닐까?
문득 외할머니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갱열아, 너는 물가를 조심해야 쓰겄다.”
할머니의 점괘는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 나는 물가에서 죽을 뻔했고, 물가에서 사랑을 잃었으며, 물가에서 일터를 잡았다. 그리고 지금, 다시 물가에서 건져 올린 인연을 맞이하고 있다. 내 직업과 운명, 그리고 죽음과 삶 모든 것이 이 짠 내 나는 물가에서 이루어지고 있었다. 나는 기쁨보다 깊은 의문을 품은 채, 결혼이라는 거대한 바다로 미끄러져 들어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