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8화 바다 위의 거대한 도시 FLNG

그리고 새로운 파도

by 최경열

1988년 서울 올림픽의 뜨거운 함성이 채 가시지 않은 대한민국은, 그야말로 용광로처럼 끓어오르고 있었다. 국제사회에 성공적으로 데뷔한 대한민국은 중화학공업을 필두로 세계 무대를 향해 거침없이 질주했다. 바야흐로 '한강의 기적'이 절정에 달하던 산업의 변곡점이었다.

오대양 육대주를 내 집 안마당처럼 누비던 1등 기관사의 포부는 이제 육지의 거대한 도크(Dock)를 향하고 있었다. 나의 꿈은 대한민국 조선업의 심장, '빅3' 거제도 조선소 현장에 입성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꿈은 예상보다 더 극적인 형태로 이루어졌다.

나는 S 중공업에서 건조 중인 프로젝트에, 발주처인 세계적인 오일 메이저 '쉘(SHELL)'사가 직접 채용 파견한 선주 기관 검사원(Owner Machinery Inspector) 자격으로 당당히 입성했다.

조선소의 공기는 이전과 확연히 달랐다. 일본을 턱밑까지 추격한 한국 조선업은 단순한 상선 건조를 넘어, '해양플랜트(Offshore Plant)'라는 미지의 영역으로 대전환을 시작하고 있었다. 그것은 더 이상 배를 만드는 일이 아니었다. 바다 위에 거대한 도시, 혹은 움직이는 복합 화학 공장을 짓는 역사적인 현장이었다.


기술의 최전선, 500명이 거주하는 바다 위의 요새 FLNG

내가 담당하게 된 프로젝트는 해양플랜트의 꽃이라 불리는 FLNG(Floating Liquefied Natural Gas)였다. 쉽게 말해 '바다 위에 떠 있는 LNG 복합 터미널'이다.

image.png SHELL'S FLNG

심해에서 퍼 올린 천연가스를 그 자리에서 채굴하고, 불순물을 걸러내는 정제 과정을 거쳐, 영하 162도의 극저온으로 액화시켜 저장한 뒤, LNG 운반선에 하역까지 하는, 그야말로 모든 공정이 집약된 괴물이었다. 이 강철 섬 위에는 관리자와 엔지니어, 작업자 등 무려 500명이 상주할 수 있는 거주 구역이 있었고, 선체 내외부를 오가는 엘리베이터만 10대, 헬기 착륙장 두 곳 설치될 정도로 그 규모는 상상을 초월했다.

전문가 입장에서 냉정하게 말하자면, 당시 대한민국의 기술력만으로 이 거대한 괴물을 온전히 통제하기엔 역부족이었다. 겉모습인 선체(Hull)를 만드는 기술은 우리가 세계 최고였지만, 그 안에 들어가는 핵심 설비와 복잡한 공정(Process) 기술의 라이선스는 영국, 미국, 프랑스를 비롯한 유럽 선진국들이 철저히 독점하고 있었다.

20130617_135409.jpg 필자와 뒤에 보이는 DRILL SHIP

우리가 흔히 쓰는 LNG는 상온에서 기체 상태이지만, 이를 운송하기 위해 영하 162도로 냉각해 액체로 만들면 부피가 무려 1/600로 줄어든다. 역으로 말하면, 액화된 가스가 누출되어 기화하는 순간 600배로 팽창하며 폭발한다는 뜻이다. LNG 운반선 한 척이 항내에서 잘못 폭발하면 그 항구는 지도에서 사라질 수도 있다는 말이 결코 과장이 아니다.

image.png 멤브레인 LNG운반선

이토록 위험천만한 물질을 다루는 공장을 흔들리는 바다 위에 지어야 했다. 수천 미터 심해 바닥에 드릴십(Drillship)으로 구멍을 뚫을 때의 그 아슬아슬한 긴장감, 자칫 잘못하면 화산처럼 분출하여 돌이킬 수 없는 환경 재앙을 일으킬 수 있다는 공포. 이 모든 리스크를 관리하는 핵심 기술과 안전 기준은 '보이지 않는 손', 즉 메이저 오일 회사들을 소유한 서구 열강의 전유물이었다. 콧대 높은 해상보험회사들조차 그들의 인증 없이는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나는 세계 최고 발주처인 Shell의 감독관이라는 무거운 책임감을 안고 그 기술 장벽 앞에 섰다. 기관사 시절의 경험을 바탕으로 엔진과 기계 장치를 검사했지만, FLNG라는 새로운 메커니즘 앞에서는 다시 배우는 자세로 임해야 했다. 콧대 높은 유럽 엔지니어들과 부딪치고 논쟁하고 때로는 배우면서, 나는 선진 기술을 하나하나 내 것으로 만들어갔다. 몸은 고되었지만, 대한민국 조선 역사의 최전선에서 완벽을 기하고 있다는 자부심이 나를 버티게 했다.

IMG_6508.jpg 해양 프랜트 다국적 엔지니어들과 함께


강철 속에 묻은 그리움, 그리고 어머니의 호출

거대한 강철 구조물 사이를 누비며 쏟아지는 영문 도면과 씨름하고, 밤새워 까다로운 시운전 검사를 진행하다 보면 시간은 화살처럼 지나갔다. 땀과 기름, 그리고 최첨단 기술의 치열한 현장에 파묻혀 지내는 동안, 가슴 한구석을 짓누르던 알코올 중독의 그림자는 완전히 사라졌다. 그리고... 링링의 기억도 아주 조금씩, 희미해져 갔다.

가끔 밤하늘을 보며 그녀가 있는 싱가포르 쪽을 가늠해보기도 했지만, 이제는 사무치는 그리움보다는 아련한 추억의 한 페이지로 넘길 수 있을 만큼 내 마음은 단단해져 있었다. 내가 검사하고 승인한 거대한 플랜트가 오대양으로 나아갈 준비를 하듯, 나 역시 내 인생의 항해를 계속해야 했으니까.

그러던 어느 날, 고향에서 어머니의 전갈이 왔다.

"경열아, 이제 너도 번듯하게 자리 잡고 사람 구실 제대로 하고 있으니, 애미 소원 하나만 들어다오. 아주 참한 규수가 있다는데, 딱 한 번만 보자꾸나. 할머니도 너 장가가는 거 보는 게 마지막 소원이라 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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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의 목소리에는 간절함이 배어 있었다. 술독에 빠져 허우적대던 못난 아들을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던 어머니, 그리고 거친 바다로 나가는 손자를 위해 매일 정화수를 떠놓고 빌던 할머니. 그분들에게 더 이상 불효자로 남을 수는 없었다.

"네, 어머니. 이번 주말에 내려갈게요."

나는 링링에게 마지막 작별을 고하던 그날처럼, 덤덤하게 대답했다. 땀과 기름냄새가 밴 선주 감독관의 작업복을 벗어두고, 오랜만에 장롱 깊숙이 넣어두었던 말끔한 양복을 꺼냈다. 거울 속에 비친 나는, 더 이상 파도에 흔들리던 위태로운 마도로스가 아니었다. 땅에 단단히 발을 디딘, 세계적인 프로젝트를 이끄는 한 사람의 건실한 기술자였다.

이제 내 인생에 새로운 파도가 밀려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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