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대한 철갑을 창조하다
마도로스로서의 삶은 해도(Nautical Chart)를 보며 끝없는 수평선을 지배하는 항해였다. 1등 기관사 시절, 나는 배라는 거대한 생명체의 심장박동을 조율하며 오대양 육대주를 내 집 안마당처럼 누볐다. 하지만 이제 나는 해도가 아닌 '선박 설계도면'을 보며, 좁은 도크(Dock) 안에서 세상에서 가장 거대한 조각품을 만드는 조선소 엔지니어로 완벽하게 탈바꿈했다.
배를 타는 것과 배를 만드는 것은 완전히 다른 차원의 인생이다. 쉽게 비유하자면, 항해사나 기관사가 '멋진 옷을 차려입고 무대를 누비는 모델'이라면, 조선소 엔지니어는 '실 한 올, 바늘땀 하나까지 계산해 그 옷을 짓는 장인'과 같다. 수만 톤의 철판을 한 땀 한 땀 용접으로 꿰매어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이어 붙여야 비로소 아름다운 선박이 태어난다. 물 한 방울이라도 새어 나오면 침몰한다는 긴장감 속에, 우리는 강철의 옷을 짓는다. 그 선박을 믿고 수많은 해기사가 오늘도 세계를 누비고 있는 것이다. 무거운 쇳덩이가 물에 뜨기까지의 과정은 한 생명이 잉태되고 출산하는 과정만큼이나 숭고하고 치열하다.
조선의 시작은 '강재 절단(Steel Cutting)'이다. 도면대로 거대한 철판을 자르는 이 과정은 마치 좋은 옷을 만들기 위해 원단을 마름질하는 것과 같다.
이렇게 잘린 철판들이 조립되어 '용골 거치(Keel Laying)' 단계에 이르면 배의 형체가 비로소 드러난다. 용골은 배의 척추다. 한옥에서 상량을 올리는 것과 같은 이 신성한 의식이 끝나면, 골리앗 크레인이 수백 톤씩 나가는 '메가 블록'과 '기가 블록'이라는 거대한 퍼즐 조각들을 가져와 하나하나 맞추기 시작한다.
이 거대한 몸체 속에 실핏줄 같은 파이프를 깔고 전기를 통하게 하며, 거대한 심장인 주기관(Main Engine)을 채워 넣는다. 특히 추진축과 프로펠러는 0.1mm의 오차도 허용하지 않는 정밀함의 극치다.
가장 긴장되는 순간은 단연 '진수(Launching)'다. 설매처럼 미끄러져 바다로 뛰어드는 슬립웨이(Slip-way) 방식이든, 도크에 수십만 톤의 물을 채워 띄우는 방식이든, 수만 톤의 쇳덩이가 제 무게를 물에 온전히 맡기며 두둥실 떠오를 때면 참가했던 수백 명의 입에서 "와!" 하는 함성이 터져 나온다. 아기가 엄마 배 속에서 나와 첫 숨을 터뜨리는 감격의 순간이다.
진수 후 한 달간 모든 장비를 점검하고 나면, 일주일간 바다로 나가 '해상 시운전(Sea Trial)'을 한다. 거친 파도 위에서 배의 모든 기능이 제대로 작동하는지 시험하는, 일종의 '체력 검사'인 셈이다.
모든 시험을 통과하면 배의 이름을 지어주는 '명명식(Naming Ceremony)'을 거친다. 선주의 부인이 '대모(Godmother)'가 되어 샴페인 병을 깨뜨리는데, 병이 박살 나며 거품이 터질 때 비로소 배는 영혼을 부여받는다. 때로는 현장에서 땀 흘린 여성 용접공이 대모가 되어 이 영광스러운 순간을 함께하기도 한다.
마지막 단계인 '인도(Delivery)'는 10개월간의 대장정을 마무리하는 출산과도 같다. 모든 공정을 마친 배를 떠나보낼 때, 엔지니어의 가슴에는 자식을 시집보내는 아버지 같은 뿌듯함과 서운함이 교차한다.
배 한 척을 무사히 인도하고 기름때 묻은 작업복을 벗으며, 나는 링링을 조금씩 잊어가고 있었다. 망치 소리와 벙커유 냄새가 그녀의 향기를 지워줄 거라 믿었다. 하지만 운명은 잔인했다. 링링으로부터 눈물로 얼룩진 편지 한 통이 날아왔다.
"오빠... 나의 사랑하는 오빠.
이 편지를 쓰기까지 얼마나 많은 밤을 지새웠는지 몰라요. 오빠가 보낸 유서와 고무신 이야기를 듣고 내 심장은 이미 멈춰버린 것 같았어요. 우리가 함께한 추억은 하늘보다 높고 바다보다 깊었지만, 우리가 넘어야 할 시대의 성벽은 그보다 훨씬 더 높았나 봐요.
오빠, 이제 나를 놓아주세요. 저 다음 달에 결혼해요. 사랑해서가 아니라,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내 가슴속의 오빠를 죽이지 못할 것 같아서... 오빠가 살아준 것만으로도 나는 감사해요. 부디 나를 잊고, 이제는 벙커유 냄새가 아니라 향기로운 꽃내음이 나는 사람을 만나 행복해져야 해요. 우리 사랑은 여기서 멈추지만, 내 영혼 한구석엔 영원히 오빠의 이름이 새겨져 있을 거예요.
잘 가요, 나의 마도로스. 나의 유일한 사랑 오빠..."
편지를 읽는 순간, 조선소의 거대한 기계 소음이 멈춘 듯 정적이 흘렀다. 나는 깡마른 어깨를 들썩이며 펑펑 울었다. 그것은 사랑을 잃은 슬픔이었을까, 시대를 이기지 못한 서러움이었을까, 아니면 이제야 비로소 그녀를 자유롭게 해주어야 한다는 절망적인 안도감이었을까.
내가 만든 배는 이제 새 이름을 달고 푸른 바다를 향해 당당히 나아가는데, 내 마음속 선박명 '링링호'는 이제 내 가슴 깊은 곳 어느 항구에 영원히 폐쇄되었다. 벙커유로 검게 물든 내 손등 위로 투명한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안녕, 나의 링링... 나의 바다."
배 한 척을 세상에 내보내고, 나는 내 청춘의 가장 시리고 찬란했던 한 페이지를 그렇게 눈물로 덮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