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6화 쇠망치 소리에 묻어버린 통곡

다시 올린 닻

by 최경열

죽음의 문턱을 넘어 돌아온 부안 혜성병원의 병실. 변산반도의 새벽 공기는 잔인할 정도로 차고 맑았다. 나는 깨진 조각들을 이어 붙인 채 새로운 사람으로 태어나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희망찬 부활이라기보다, 감정이 거세된 채 살아남은 자의 무거운 형벌에 가까웠다.

남열이가 떨리는 손으로 건네준 링링의 편지. "오빠가 무너지면 내 세상도 무너진다"는 그 절절한 문장들이 가슴을 후벼 팠지만, 역설적이게도 나는 이제 그녀에게 답장할 힘도, 자격도 없다고 느꼈다. 이미 한 번 죽은 목숨이었기에, 나의 사랑은 그 절벽 아래 심연 속에 함께 던져버렸기 때문이다.


친구들의 위로, 그리고 넘을 수 없던 성벽

소식을 듣고 달려온 고등학교 동창 덕규가 병상 머리맡에 앉았다. 내가 배를 타고 전 세계를 누빌 때 우리 집안일을 살뜰히 챙겨주던, 니체를 좋아하던 철학도 덕규였다. 그는 고개를 저으며 나를 꾸짖듯 위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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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 이 미친놈아. 죽도록 사랑한다면 결혼이 뭐가 그리 대수냐? 오대양 육대주를 누비던 마도로스 기개는 어디 가고 고작 여기서 꺾여? 요트 하나 사서 태국이든 필리핀이든 이름 모를 섬에 가서 둘이 살면 되지 않느냐! 죽는 것보다 무서운 게 세상에 어디 있다고 이 바보 같은 짓을 해!"

IMG_3580.jpg 작은 보트를 타고 링링과 섬으로 탈출하고 싶었다.

덕규의 말은 옳았다. 하지만 친구야, 너는 알지 못하리라. 채석강 낭떠러지보다 남산 안기부의 성벽이 훨씬 높았음을.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고 핑퐁 외교로 만리장성이 허물어지던 시대였지만, 한국의 남산과 38선 철조망은 그보다 더 견고한 이데올로기의 감옥이었음을.

천만 이산가족의 피멍으로 가슴에 대못을 박은 그깟 철조망 하나가, 시골뜨기 선원인 나에게는 우주보다 무거운 운명의 장벽이었다. 공산당 간부의 딸을 아내로 맞이한다는 것이 연좌제의 서슬 퍼런 칼날 아래서 어떤 의미인지, 반복되는 취조와 감시 속에서 인간의 자존감이 어떻게 난도질당하는지 겪어보지 않은 이는 알 수 없다. 내 여인을 '간첩의 손녀'로, 나를 '빨갱이'로 낙인찍는 그 야만의 시대 앞에서 나는 죽음으로써 저항할 수밖에 없었다. '사랑해서 헤어진다'는 연예인들의 진부한 변명이 비로소 피눈물 나는 진실로 다가오던 순간이었다.

20180308_161137.jpg 조선소에서 근무 중 필자

파도 소리 대신 쇠망치 소리를 선택하다

퇴원 후 대항리 바닷가 골방에 박혀 멍하니 수평선을 바라보던 어느 날, 덕규가 신문지 한 장을 들고 찾아왔다. 동아일보 구석에 실린 조그만 구인 광고였다. '승선 경력자 우대, 신입 사원 모집'. 배를 타는 사람이 아니라, 배를 만드는 조선소의 광고였다.

기대 없이 써낸 이력서였지만, 얼마 후 합격 통지서가 날아왔다. 군산에 위치한, 어선부터 5,000톤급 화물선까지 건조하는 제법 규모 있는 조선소였다. 그것은 내 인생의 항로가 완전히 바뀌는 변곡점이었다.

오대양 육대주를 호령하던 1등 기관사 최경열은 이제 기름때 묻은 작업복을 입은 조선소 노동자가 되었다. 폭탄과 해적, 태풍을 뚫고 링링과 사랑을 나누던 마도로스의 낭만은 거대한 조선소의 소음 속에 묻어야 했다. 이제 내 귀에는 철썩이는 파도 소리 대신, 챙챙 거리는 쇠망치 소리와 거친 용접 스파크가 번쩍이고 있었다.

Gemini_Generated_Image_d1fw4vd1fw4vd1fw.png 조선소 풍경

벙커유에 젖은 산업 역군, 새로운 인생의 엔진을 돌리다

1등 기관사로서의 경력을 인정받아 나는 **'품질관리부서'**의 경력 사원으로 발령받았다. 갓 태어난 선박을 완벽하게 다듬어 선주에게 인도하기 전, 시운전까지 책임져야 하는 막중한 자리였다.

80년대 후반, 대한민국 조선 기술은 하루가 다르게 도약하고 있었지만 아직은 거칠고 투박했다. 파이프에선 시커먼 벙커 유가 줄줄 새어 나와 매일같이 내 작업복을 적셨다. 온몸이 기름으로 먹칠이 되고 땀범벅이 되었지만, 나는 멈추지 않았다. 야근과 철야를 밥 먹듯 하며 쇳덩이와 씨름했다.

기름 냄새를 맡으며 철판을 두드릴 때마다 가슴속 링링의 이름도 조금씩 무뎌져 갔다. 아니, 무뎌지려 애썼다. 벙커유의 그 지독한 냄새가 링링의 향긋한 향기를 지워주길 바라며, 나는 그렇게 배를 타던 마도로스에서 배를 짓는 산업 역군으로 다시 태어나고 있었다.

내 인생의 2막, 엔진은 다시 돌기 시작했다. 비록 링링이 없는 항로였지만, 나는 멈출 수 없었다. 나는 살아야 했으니까.


1440DF264ACA956536.jfif 중국 칭다오 조선소에서 근무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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