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하얀 항해의 시작
모장동 당골래미의 예언은 평온하던 집안을 일순간에 얼어붙게 했다. 사주팔자는 천생연분이나, 해창다리에 깃든 망자의 원한이 우리 앞길을 막아설 ‘깨질 운명’이라는 것이었다. 결국 외할머니와 당골래미가 주축이 되어, 해창다리 콘크리트에 묻혔다는 처녀의 원혼을 달래고 좋은 곳으로 보내주기 위한 지오귀굿(씻김굿)이 거행되었다.
굿판이 벌어진 곳은 집 마당이 아닌, 모든 비극과 인연의 시작점인 해창다리 아래였다. 금기를 씻어내기 위해선 정성이 필요했다. 집에서 애지중지 기르던 백 근이 넘는 토실토실한 돼지 한 마리가 제물로 바쳐졌다. 녀석은 풍요와 정성, 그리고 해창다리에 얽힌 모든 망자의 한을 짊어지고 저승길로 떠날 운명이었다.
징소리와 장구 소리가 변산의 산울림을 타고 퍼지자 인근 마을 사람들이 구름처럼 몰려들었다. 우리 집이 있는 대항리와 효주 씨의 백련리는 물론이고, 비득치, 조개미, 소광, 대광, 묵정, 군막, 서두터 사람들까지 죄다 구경하러 나와 그야말로 거대한 마을 잔치가 벌어졌다.
당골래미는 처녀 망자의 넋을 대신해 가족들과 못다 한 이야기를 나누는 ‘넋두리’를 쏟아냈다. 서슬 퍼런 작두칼 위에 올라 귀신을 달래는 무당의 몸짓에 구경하던 어른들도 숨을 죽였다. 묘하게도 효주 씨가 사는 백련리에서 우리 집 대항리까지는 정확히 7km였고, 굿판이 벌어지는 해창다리는 자로 잰 듯 그 중앙인 3.5km 지점에 위치해 있었다. 이것 또한 운명의 장난인가, 아니면 수학적 필연인가.
굿 덕분인지 혼사는 물 흐르듯 순조로워졌다. 할머니의 엄명에 따라 아홉수를 넘기지 않기 위해 음력설 전인 1월 20일로 예식 날짜를 잡았다. 마음속 장벽을 허문 우리는 신속하게 결혼 준비에 나섰다.
친구들이 함지게를 지고 신부 집으로 향하던 날, 7km의 먼 길을 걷던 친구들이 해창다리 중간쯤에 이르렀을 때였다. 마법처럼 하늘에서 하얀 눈송이가 날리기 시작했다. 산과 바다가 어우러진 해창다리 위로 쏟아지는 함박눈은 그야말로 아름다움의 극치였다.
"함 사세요!"
백련리 효주 씨 동네가 떠나갈 듯한 친구들의 함성이 눈발 속에 퍼졌다. "눈 오는 날 결혼하면 잘 산다"는 어른들의 축복 속에, 우리는 과거의 어둠을 눈으로 덮으며 예식장으로 향했다.
결혼식을 마치고 날아간 제주의 밤은 평화로웠다. 신혼부부 20여 쌍이 모인 단체 게임 시간, 우리는 만난 지 한 달 만에 결혼한 커플로 소개되며 '초스피드 결혼' 영광의 1위를 차지했다. 게임 도중 효주 씨를 등에 업고 달리는 퍼포먼스가 있었다.
그 순간, 내 등에서 느껴지는 효주 씨의 온기와 미세한 떨림은 15년 전 그날과 완벽히 일치했다. 1975년 여름, 물에 빠져 의식을 잃은 채 내 등에 업혀 모래밭으로 옮겨지던 중학생 소녀. 차갑게 식어가는 그녀를 살리려 애태우던 그때의 촉감이 정장을 입은 지금의 내 등 위에서 그대로 재현되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끝내 아는 척하지 않았다.
혹여나 그 아픈 기억을 들추는 것이 실례가 될까 봐, 그저 침묵으로 일관했다.
디너파티가 끝나고 하얀 눈이 내리는 제주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하얏트 호텔 객실. 샤워를 마치고 세상에서 가장 달콤한 레드 와인을 한 잔씩 나눌 때였다. 창밖으로는 내가 항해했던, 혹은 내가 감독관으로 건조했던 수많은 선박들이 불빛을 밝히며 지나가고 있었다. 그때, 효주 씨가 내 눈을 빤히 바라보며 한마디를 던졌다.
"오빠... 왜 다 알면서 이야기하지 않았어?"
그것은 확인이 아니라 원망 섞인 애정이었다. 15년 전 해창다리 아래서 자신을 구해주고, 인공호흡을 하며 입술 끝에 닿았던 그 단단한 옥니의 감촉을 내가 잊었을 리 없다는 것을 그녀는 이미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그녀 역시 나를 보는 순간, 자신을 죽음의 문턱에서 건져 올린 그 오빠라는 것을 직감하고 있었다.
나는 대답 대신 그녀를 으스러지도록 껴안았다. 진한 키스와 함께 모든 수수께끼가 풀렸다. 마음이 깃털처럼 가벼워졌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해창다리의 저주는 과학적 착각이었다. 일제 강점기를 거친 노인 한 분은 1930년대의 옛 다리는 이미 사라졌고, 지금의 다리는 1960년대에 새로 지어진 것이라 했다. 밤마다 들리던 '쿵, 쿵' 소리는 망자의 울음이 아니라, 기온 차로 인한 콘크리트의 열팽창 현상이라는 엔지니어들의 설명이 뒤따랐다.
처녀가 공사 중에 묻혔다는 괴담 또한 확인할 길 없는 전설일 뿐이었다. 하지만 그 굿판이 없었더라면, 우리는 평생 그 찜찜한 두려움을 안고 살았을지도 모른다. 씻김굿은 망자를 달래는 의식인 동시에, 살아있는 우리의 불안을 씻어내는 치유의 의식이었다.
제주항의 밤바다를 바라보며, 우리는 새로운 항해를 시작했다. 과거의 파도를 넘어 사랑이라는 이름의 목적지로 향하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항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