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래밭의 검은돈
모래밭에서 검은돈이 나오는 광맥이 있다. 대한민국에서 유일하게 변산해수욕장뿐이다. 이 사업이 널리 알려지면 대기업에서 금속탐지기로 샅샅이 뒤진다. 우리의 밥줄이 끊긴다. 모래밭에서 유골이 나오는 리스크만 빼면 투자금 없이 노다지를 캐는 사업이다. 알고 있는 사람은 대항리에 오직 봉구, 순용, 삼식 나 4명뿐이다. 돈을 줍다가 쓸만한 빈집을 찾아 들어갔다. 지붕이 제법 튼튼하여 바람에 날아가지 않았다. 비를 피할 수 있는 집이었다. 학교는 때리치 우고 독립투사처럼 상해 임시 정부를 비밀리 결성하였다. 광맥도 지키고 돈도 많이 벌어 부자가 되기로 결의를 했다. 피는 마시지 않았지만 모래밭에서 도원결의를 맺었다. 어머니가 싸준 밴또도 맛있게 먹어치웠다. 이제 동전 갖고 노는 어린아이들이 아니었다. 어른들보다 많은 동전을 취급하였다. 10원짜리 동전 치기는 시시한 게임이었다. 빈집의 응접실에서 봉구가 먼저 쌈치기를 제안한다. 일종의 도박이다. 그렇다고 타짜처럼 남을 속이고 짜고 치는 도박은 아니다. 동전을 쥐고 흔들면 짤짤 소리가 난다. 그래서 일명 짤짤이라고도 한다. 홀짝게임은 2 배수 홀짝만 맞추는 게임이고, 쌈치기는 3치기에서 나왔다. 잡는 쪽(선수)의 주먹 속에 동전의 숫자를 3으로 나눠 남는 것을 맞추는 게임이다. 남는 게 하나면 ‘아찌’, 두 개면 ‘두비’, 세 개면 ‘쌈’이 된다. 셋 중에 찍어야 한다. 확률은 삼 분의 일이다. 벳팅 한 만큼 잃거나 딴다. 못 찍으면 전부 선수 것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동전의 녹도 벗겨지고 손바닥은 검게 된다. 때가 껴 손등이 거북이 등처럼 두껍다. 짝짝 갈라진 사이로 피가 보이지만 아랑 곳하지 않는다. 고수가 되면 동전 들어 있는 주먹을 폈다 오므렸다 두어 번 하면 아찌, 두비, 쌈을 정확히 알 수 있다. 경지에 오르면 상대방 손에 든 동전도 소리만 듣고 정확하게 알아맞힌다. 도박은 하교 시간까지 계속된다. 쌈치기 하다 빈털터리가 되기도 한다. 잠깐 섭섭하지만 모래밭에 광맥을 한번 뒤지면 된다. 절망할 필요는 없었다. 고민해야 되는 것은 새까맣게 녹슨 많은 동전을 어떻게 안전하게 보관하는 방법이다. 유리구술은 할머니가 쓰시던 낡은 궤짝 속에 보관하지만 동전은 다르다. 도둑질은 하지 않았어도 불로소득이다. 은행 통장에 넣을 수 도 없고 부모님한테 맡길 수 도 없다. 당시에는 은행도 없었고 읍내까지 나가야 했다. 그렇다고 들고 다닐 수도 없다. 신발주머니에 쏟아부었더니 묵직하였다. 더 단단한 신발주머니를 구입하였다. 신발주머니는 금고이며 보물단지였다. 철저하게 위장된 신발주머니었다. 외양간에 여물통 옆에 보관하였다. 우리 집 제산 1호가 외양간에 있는 소다. 편하게 누워서 아구를 틀고 있었다. 보물단지를 보더니 큰 눈만 깜빡깜빡하였다.
봉구는 검게 녹슨 동전을 반짝반짝 빚이 나는 새 돈을 만드는 기술을 갖고 있었다. 많이 부러웠다. 월남 갔다 온 외삼촌이 알려 줬다. 녹슨 동전을 한주먹 주고 비법을 전수받았다. 간단하였다. 우선 검게 녹슨 동전을 소금과 식초에 담갔다가 시간이 지난 후 헝겊으로 닦아 낸다. 여물 쑨 아궁이에서 제를 꺼내어 땅에 놓고 발로 밟아 문지르면 거짓말처럼 은행에서 갓 나온 동전처럼 눈이 부실정도로 빛이 났다.
해수욕장 주위는 가난한 동네이다. 대항리, 마웅개, 자미동은 어촌도 농촌도 산촌도 아닌 어중충한 마을이었다. 여름한철 해수욕장에 조개 캐어 팔고, 옥수수나 체소를 팔아 겨우 현금을 만질 수 있었다. 시간이 흘러 국민학교를 졸업하게 되었다. 그러나 중학교 진학하는 것은 엄두를 못 내었다. 대부분 중학교는 포기해야 했다. 산에서 나무나 하고 여름에 해수욕장에서 아이스케키나 팔면서 집안 농사일을 거들어야 했다. 좀 머리가 굵어지면 서울로 상경하여 공장에서 기술을 배우는 게 꿈이었다. 배운 게 없고 가진 게 없는 촌놈들한테 딱 맞는 장래 희망이었다. 하굣길에 빈집에 들어가 독립투사 4명은 장례를 걱정하였다. 앞길이 총망한 소년들이었다. 해수욕장에서 남이 흘린 돈이나 주우면서 젊음을 보낸다는 게 한심한 일이었다. 신발주머니를 털어서 중학교 입학금으로 사용하자고 입을 맞추었다. 부모님께는 죄는 짓지 안 했지만 자수를 하였다. 많은 동전을 내놓았다. 내 인생에서 제일 잘한 선택이었다. 해수욕장 모래밭과 신발주머니 덕분에 모두 중학교 진학을 하게 되었다.
지금은 부안에서 변산해수욕장까지 20분이면 도착할 수 있다. 고속도로 같은 4차선 도로가 격포까지 뚫려있다. 국립공원으로 승격이 되어 4계절 모두 관광객이 끊이지 않는다. 해안가 무장공비도 사라지고 해안초소도 사라졌다. 전투경찰 순찰통로는 변산반도 둘레길로 단장이 되었다. 경관은 제주도 올레길보다 더 아름답다. 모래밭 동전도 사라지고 모두 카드로 거래가 된다. 귀신 나오는 판잣집은 고급 펜션이나 호텔로 새로 탄생하였다. 해골 나왔던 소나무 숲도 더 울창하였다. 숲에서는 아름다운 미녀가 매년 탄생한다. 미스변산선발대회가 해마다 개최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