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라리 내가 아파서 다행이야

급성 골수성 백혈병 관해유도 항암치료 : 유전자 검사 결과가 나오다.

by 도로시의선물

나를 둘러싼 많은 사람들의 사랑으로 무균실에서의 답답하고 힘든 시간을 버틸 수 있었다. 특히 부모님과 남동생이 많은 힘이 되어주었다.

스무 살부터 서울에서 대학 생활을 시작하면서 중간중간 잠깐의 시간을 제외하고 약 20년 가까이 가족과 떨어져 지냈다. 서로의 시간이 바쁘다 보니 출퇴근 길에 잠깐씩 통화로 안부를 물었다. 기껏해야 한 달에 한 번 정도 본가에 내려가 짧은 시간을 함께 보내고 내가 있던 자리로 돌아왔다.


그러나 백혈병으로 진단을 받고 가족 모두 거의 매일 각자의 자리에서 영상통화로 서로를 위해 기도하며 더 끈끈한 관계가 되었다.


특히 아프기 전 모든 형제 관계가 그렇듯 동생과는 일주일에 한 번 정도 통화로 서로의 생존을 확인하는 정도였다. 그런 동생이 내가 아프면서 동생은 매일 먼저 전화를 걸어 컨디션을 확인하며 먼저

"누나 기도해 줄까?"라고 물으며 기도를 해줬다.

간혹 통화 중 내가 치료받으면서 힘든 부분을 이야기하면 울음을 삼키며

“누나 내가 이따 다시 전화할게.”라며 전화를 끊어 날 당혹게 만들기도 했다(울먹이는 동생의 목소리에 깔깔거리며 “우냐?? 왜 우냐???” 하고 놀렸다).


사실 아픈 와중에 ‘내가 아파서 다행이다’라는 생각을 자주 했다.

차라리 내가 아픈 게 낫지 엄마나 아빠나 동생이 아팠으면 더 힘들지 않았을까...

그냥 내가 아파서 다행라는 생각이 들었다.



입원한 지 3주 정도 지났을 때 담당 교수님은 입원 첫날에 진행한 유전자 검사 결과를 말씀해 주셨다. 교수님은 유전자 검사 결과는 아무 이상이 없다고 하셨다. 이 말은 좋은 것도 나쁜 것도 없는 보통 예후 집단에 속하는 집단으로 완치까지 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조혈모세포 이식을 해야 한다고 하셨다(유전자 검사 결과가 좋아 좋은 예후 집단일 경우 항암 치료로만 치료를 끝내기도 한다).


그리고 동생의 유전자 검사 결과가 나와 맞지 않아 타인이 식으로 알아보거나 이마저 맞지 않을 경우 부모님 중 한 분의 조혈모세포를 이식해야 한다고 하셨다. 이식까지는 관해 항암치료와 공고 치료를 포함해 약 6개월 정도의 시간이 걸릴 거라 했다. 앞으로의 치료 과정이 막막하고 두려워졌다. 인터넷으로 조혈 모세포 이식에 대해 계속 찾아봤다. 힘들지 않았다는 사람들이 없었다. 지금도 힘든데 이식 과정을 견딜 수 있을까라는 생각과 그래도 이식 과정을 마친 사람들이 부러웠다.

아프기 전에는 항상 시간에 쫓겨 바쁘게 지내다 시간의 여유가 생기자 막상 뭘 해야 할지 고민이 되었다. 항암 부작용으로 몸이 아프긴 했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로 시간을 보내는 게 아까웠다.


시간이 없다는 핑계로 그동안 하지 못했던 일들을 시도했다. 먼저는 읽고 싶었던 책을 몇 권 구매해 읽었다. 그리고 이 투병 과정을 잊지 않고 기록하기 위해 블로그를 시작했다. 백혈병으로 진단을 받고 먼저 그 과정을 겪은 환우들의 기록을 보며 도움을 받았듯이 나 역시 누군가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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