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암약이 다 들어가고 시간이 어느 정도 지나자 모든 혈액 수치(헤모글로빈, 혈소판, 백혈구, 호중구)가 다 떨어졌다. 담당 간호사가 주변에 알려 지정 헌혈을 요청해야 한다고 말해 출석하던 교회에 지정 헌혈을 부탁했다.
헌혈도 여러 종류가 있는데 특히 혈소판 헌혈은 조건이 까다로운 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회 많은 지체들이 자신의 시간을 내어 기꺼이 피를 내어주었다. 많을 땐 하루에 3팩 정도를 수혈하는 일도 있었는데 수혈할 때마다 "지정 헌혈 들어온 거예요."라는 말에 육체의 생명이 피에 있다(레 17;:11)는 말씀이 기억나면서 시간을 내어 자신의 생명과 같은 피를 내어주는 그 사랑에 감사할 뿐이었다.
본격적인 치료가 시작되면서 (이렇게 크게 아플 줄 모르고) 흔한 실비보험 하나 들어놓지 않은 상황이라 치료 비용에 대한 부담과 걱정도 있었다. 걱정이 무색하게 하나님은 여러 사람을 통해서 치료비 또한 채워주셨다.
이전에 부모님께서 주변에 상황이 어려운 분들을 조금씩 도와드렸는데 도움을 받았던 분들이 내 소식을 듣고 본인들이 도움을 받았던 그 이상의 재정을 후원해 주셨다. 잠시 한국에 나와있던 우간다 선교사로 있는 친구로부터, 미국에 있는 친구가 출석하고 있는 교회에서, 대학생 시절 선교훈련원 간사로 있을 때 같이 훈련받던 선교사님들과 MK로부터, 대학원 교수님들로부터, 어렸을 때 옆집에 살던 아주머니로부터...
샐 수 없는 많은 사람들을 통해 치료비가 넉넉하게 채워졌다. 뿐만 아니라 많은 분들이 병원 근처에서 혼자 계신 엄마를 그리고 전주 집에서 혼자 계신 아빠를 찾아와 손을 잡아주고 식사를 챙겨주셨다.
피차 사랑의 빚 외에는 아무것도 지지 말라하셨는데 너무나도 많은 사랑의 빚을 졌다. 이루 말할 수 없는 감사함에 날마다 눈물이 났다.
모든 혈액 수치가 바닥을 치자 기운이 빠져 (구토 증상 때문에 식사도 제대로 하지 못했지만) 식사 시간을 제외하고 거의 침대에 누워서 보냈다. 어느덧 무균실 생활이 익숙해지고 무균실 담당 간호사들과 친해져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매일 똑같은 일과였다. 새벽 4-5시 사이에 중심정맥관에서 채혈을 하고, 체온을 재고, 왼쪽 골반 쪽 환부를 드레싱을 했다. 하루에 두 번 오전과 오후에 주치의 교수님들이 매번 내 상태를 확인했다. 항암 부작용으로 기운이 없어 누워서 시간을 보냈다.
어느 날은 출퇴근 시간에 창가에 서서 밖을 바라봤다. 멀리 사람들이 바쁘게 오가는 모습이 보였다. 불과 몇 주 전만 하더라도 저 사람들 사이에서 지냈는데 무균실이라니... 당장이라도 병원복을 벗고 나가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