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려움과 소망이 공존할 때
집에서 보내는 일과는 단순했다. 아침에 일어나 식사를 하고 이후 한 시간 정도 부모님과 가정 예배를 드렸다. 함께 찬양을 하며 말씀을 읽고, 깨달은 부분을 서로 나누고 기도했다. 이후 엄마는 가정에서, 아빠는 일터에서 주어진 일을 했다.
엄마, 아빠가 각자의 일을 하는 동안 나는 주로 집에서 책을 읽거나 누군가와 연락을 하고 만나며 시간을 보냈다. 그렇게 평온한 하루를 보내다가도 문득 백혈병으로 인해 사라져 버린 내 일상이 이대로 영영 돌아오지 않을 것 같은 두려움이 올라왔다. 형체 없는 두려움이 올라와 나를 삼키려 할 때마다 내가 할 수 있던 일은 말씀으로 마음을 지키는 것이었다.
“이 병은 죽을 병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함이요 하나님의 아들이 이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게 하려 함이라 하시더라”(요 11:4)
처음 입원을 했을 때 말씀 묵상 중 주신 말씀이었다. 죽을 병이 아니라고 하셨다.
백혈병으로 진단을 받고 투병을 하면서 멀게만, 그리고 막연하게 생각했던 죽음이 바로 내 앞에 있는 것처럼 가까이 느껴졌다. 그럼에도 그 상황 가운데 하나님께서 허락한 일만 내 삶 가운데 일어난다는 것과, 믿는 자들에게 죽음은 끝이 아니라 영원한 생명을 얻기 위해 거쳐야 하는 관문이라는 것이 (이미 믿고 있었지만) 더 마음 깊이 믿어졌다.
언제 죽어도 이상하지 않을 이 상황에 두려움도 있었지만 부활과 영생의 소망도 공존했다.
짧은 봄방학과도 같은 휴식 기간이 끝나고 다시 입원해야 하는 시간이 다가왔다. 입원 날이 가까워질수록 한숨도 늘어났다. 사정을 모르는 누군가는 “1차 치료 한 번 해봤으니까 괜찮을 거야!”라고 말했지만, 한 차례의 치료 경험이 있기에 더 겁이 났다.
이번에 입원을 하면 관해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다시 골수 검사를 할 것이며, 항암약을 투여하기 위해 오른쪽 쇄골 밑에 중심정맥관을 삽입할 것이다.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치료를 받았던 1차 치료와 달리, 한 차례의 치료 경험이 누적되었기 때문에 더 겁이 났다.
생명과 직결된 이 상황은 피할 수 있다고 피할 수 있는 것도, 즐길 수 있는 수준의 고통도 아니었다. 그렇다고 그 상황에서 우울해하기보다 입원해서도 즐겁게 보낼 만한 것들을 찾기 시작했다. 무료한 병실 생활을 그나마 잘 버틸 수 있도록 내 취향의 컬러링북과 많은 색상의 색연필을 구매했다. 그리고 가볍게 읽을 책 몇 권, 병실에서 신을 신발과 그 신발을 꾸밀 장식도 구매했다. 그리고 스스로를 계속 다독였다. ‘괜찮을 거야.’
입원 하루 전. 챙겨야 하는 물품 목록을 하나하나 적었다. 필요한 것만 챙겼는데도 어느새 캐리어가 가득 찼다. 살기 위해 내일이면 병원으로 다시 들어가야 한다. 밤늦게 침대에 누웠다. 도통 잠이 오지 않았다. 퇴원 후 집에서 보냈던 평온한 시간은 이제 끝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