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깐의 자유
저녁 식사를 하고 한참 부모님과 이야기를 나눴다. 샤워를 마친 후 방에 들어와 옷을 갈아입고 침대에 누웠다. 집이다. 병원이 아닌 집이다. 딱딱하고 좁은 병원 침대가 아니라 넓은 침대에 누워 잠을 청했지만 쉽게 잠들지 못했다. '집에 온 것이 꿈이 아닐까? 내일 아침 눈을 떴을 때 다시 병원이면 어떡하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생각도 잠시 갑자기 오른쪽 쇄골 아래부터 어깨 쪽으로 통증이 심하게 올라왔다. 아마 퇴원하면서 중심정맥관을 제거할 때 문제가 있었던 것 같았다. 안방에 있는 부모님은 이미 깊이 잠들어 있어 깨우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몸은 집으로 돌아왔지만 병원에서의 생활 패턴이 남아 있어, 병원에서 채혈을 하던 시간인 새벽 4시 반쯤 저절로 눈이 떠졌다. 쇄골 아래로 빠져나온 중심정맥관이 만져지지 않았고, 채혈도 하지 않는다는 사실에 비로소 집에 돌아왔다는 실감이 났다. 집이었다. 병원이 아니다.
퇴원할 때 호중구 수치가 500도 되지 않았기 때문에, 집에서도 무균실에 있을 때 처럼 모든 음식은 익혀서 그리고 가족과 공간도 분리해 식사를 해야 했다. 갑자기 삼시 세끼를 모두 준비하고 집안 살림까지 맡게 된 엄마도 힘든 시간이었다. (엄마는 청소와 정리는 잘하지만 요리는 유독 어려워한다. 마음 같아서는 직접 요리를 하고 싶었으나 호중구 수치가 낮을 때는 감염 위험이 크기 때문에 요리도 금지 된 상황이었다.) 엄마는 매 끼니마다 고기, 나물, 잡곡밥 등 정성이 담긴 음식을 만들었다. 병원에서는 시간이 그렇게도 가지 않더니, 집에서 보내는 시간은 어찌나 빠른지 특별한 일을 하지 않아도 빠르게 흘러갔다.
퇴원한 지 일주일이 지난 날, 첫 외래 진료가 있었다. 새벽 6시에 출발하는 KTX를 타고 병원으로 향했다. 진료 한 시간 전 채혈을 하고 대기하다 진료실에 들어갔다. 담당 교수님은 호중구 수치가 많이 올랐다며 이제 먹고 싶은 것을 마음껏 먹어도 된다고 하셨다. 그리고 열흘 후 다시 입원해 다음 치료를 시작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열흘이라니, 너무 짧은 시간이었다. 교수님은 지금 상태로 보아 관해가 잘 된 것 같지만, 정확한 확인을 위해 입원하자마자 골수검사를 해야 한다고 하셨다. 그 결과에 따라 관해가 유지되면 바로 공고 치료를 진행하고, 관해가 되지 않았을 경우 다시 관해유도 치료를 해야 한다고 설명하셨다.
혈액종양내과 진료를 마친 뒤, 왼쪽 골반 부근 환부 확인을 위해 외과 진료도 받았다. 외과 교수님은 환부를 손으로 눌러 확인하시더니 수술까지는 필요 없고 매일 연고만 잘 바르면 된다고 하셨다.
호중구 수치가 올라 집에만 있지 않아도 되고, 음식도 자유롭게 먹어도 된다는 말을 듣고 집에 도착하자마자 외식을 했다. 약 두 달 만에 먹는 외부 음식이었다. 다시 입원하기 전까지 주어진 시간은 열흘뿐이었다. 엄마는 그 짧은 시간 동안 부지런히 나를 바깥으로 데리고 다녔다. 오랜만에 병원과 집을 벗어나 자유롭게 시간을 보내다 보니 잠시나마 내가 환자라는 사실을 잊을 수 있었다.
그동안 만나지 못했던 친한 친구들도 만났다. 친구들은 내 발병 소식에 놀라기는 했지만, 아프기 전과 다름없이 평소와 똑같은 시선으로 나를 바라봐 주었다. ‘병’이 아닌 ‘나’로 대해주는 친구들이 고마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