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호와 이레: 모든 것을 예비하시는 하나님
퇴원하는 날 아침이 되었다. 주치의 교수님은 퇴원을 시켜주지만 아직 호중구 수치가 낮기 때문에 가능한 음식을 익혀서 먹고 일주일 후에 있을 외래 진료 전까지 외출을 삼가라고 하셨다. 오전 회진이 끝나고 항암약 투여를 위해 오른쪽 쇄골 밑에 삽입한 중심정맥관을 제거했다. 30~40cm 정도 되는 길고 얇은 관이 몸에서 나왔다. 관을 제거하고 그 부위를 모래주머니로 눌러 한 시간 정도 지혈을 했다.
무균실에서 지혈을 하는 동안 병원에 도착한 부모님은 퇴원 수속을 밟으셨다. 치료비가 꽤 나왔는데 내 소식을 들은 어떤 분이 치료비를 후원하고 싶다고 병원으로 직접 연락을 주셔서 많은 금액이 감면되었다.
한 시간이 지나 지혈이 다 되었다. 환자복을 벗고 밖으로 나갈 준비를 했다. 미리 구매해 둔 편한 추리닝과 신발, 가발을 엄마를 통해 전달받아 갈아입었다. 자유롭지 못한 무균실 생활을 벗어나 자유를 얻은 것이 기쁘면서도 몇 주 뒤에 또다시 치료가 시작될 걸 알기에 마냥 기뻐하지도 못했다. 캐리어에 한 달 넘게 사용한 물건들을 다 정리했다.
나갈 준비를 다 마쳤음에도 아침에 찍은 엑스레이 결과가 늦게 나와 오후 1시가 지나서야 퇴원을 할 수 있었다. 무균실을 나가기 전 간호사 선생님들께 감사 편지와 선물을 드렸다. 밖으로 나가기 위해 무균실을 통과하고 이후 간호 통합 병동을 지나야 했다.
한 달 넘게 좁은 무균실이라는 좁은 공간에서만 생활하다 그보다 조금 넓은 병동으로 나왔을 뿐인데 그 공간이 무척이나 넓게 느껴졌다. 그리고 마침내 두꺼운 병동 문이 열렸다.
36일 전 처음 저 문을 열고 들어가 입원을 했는데 36일 만에 문을 열고 나왔다. 퇴원 수속을 끝낸 엄마와 아빠가 문 밖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말없이 서로를 꼭 끌어안았다.
서로 각자의 자리에서 고생한 걸 알았기에 그저 고생했다, 감사하다는 말뿐이었다.
차에 짐을 다 실고 로 몇 시간을 달려 전주에 도착했다.
집이 낯설게 느껴졌다.
백혈병으로 진단받기 1년 전, 15년 이상 살던 집이 물난리가 났다. 그 당시 엄마 아빠는 몸만 겨우 건사하고 모든 살림살이를 버려두고 근처 원룸에 한두 달 피신해 있다가 지금의 아파트로 이사를 왔다.
이사를 하고 명절 때 두 번 정도 짧게 머문 공간에 앞으로 쭉 살게 될 거라 생각하니 기분이 이상했다. 모든 것이 변했다. 이런 상황 가운데 엄마는 1년 전 물난리가 나서 이 집으로 이사한 것도 감사하다고 말했다.
이전에 살던 집은 단독주택이었다. 마당이 있어 엄마가 좋아하는 꽃도 많이 심고, 아빠가 블루베리도 포도도 심어 계절이 바뀔 때마다 풍경도 바뀌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그렇게 엄마 아빠의 정성으로 예쁘게 가꾸었던 집은 내가 아프기 1년 전 갑작스러운 폭우로 크게 피해를 입었다. (자세히 이야기하자면, 엄청난 양의 폭우로 인해 쓰레기더미가 물에 휩쓸려 집 앞 공터 수로가 막혔고 공터 바로 앞 우리 집에 물이 다 넘어와 말 그대로 물바다가 되어 급하게 이사를 했다.)
그 집은 참 예뻤지만 오래되어 여름 장마철이 되면 곰팡이가 피기도 해서 환자가 지내기에는 적합하지 않은 곳이었다.
엄마는 “네가 지금 이렇게 아픈 상태에서 그 집에 들어가면 힘들었을 텐데 작년에 물난리가 나서 아파트로 이사한 게 다행이다. 여호와 이레(준비하시는 하나님).”라며 준비하시는 하나님을 찬양했다.
엄마의 그 말에 ‘그렇네…’라는 생각을 하긴 했지만 한편으로 물난리도 겪지 않고, 아프지도 않고 살던 곳에서 계속 지내도 좋았을 텐데… 하는 씁쓸한 마음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