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의 ㅊ도 몰라도 열정만 있으면 됩니다
“네? 서비스를 종료한다고요?”
회사에서 담당하던 서비스가 급작스레 종료 결정되어 그 업무를 맡았던 우리 팀은 해체되었다. 서비스 런칭 멤버로 합류하여 서비스를 탄생시키고, 나름 안정적인(주관적일 수 있음) 서비스로 자리매김하던 서비스 5년 차에 일어난 일이었다. 과장 조금 보태 내가 낳은 자식과도 같은 서비스를 종료해야 하는 상황은 나의 지난 5년의 시간까지 부정되는 느낌이기도 했다. IT 기업 특성상 TF의 형성과 해체가 빈번히 일어나지만 보통 겸직 발령이기 때문에 본체가 속한 팀은 잘 유지되기 마련이다. 그렇기에 서비스 종료에 따른 온전했던 팀의 해체가 주는 무게감은 아주 많이 달랐다. 회사도 서비스의 종료는 처음이어서 우리 팀이 서비스 종료 TF 역할까지 해야 했다. 서로가 안녕을 준비할 여유도 없이, 슬픔을 느낄 틈도 없이 서비스를 ‘잘’ 종료하는 데에 전념하느라 어느 때보다 바쁘고 씁쓸한 마지막 6개월을 보냈다.(그때 그 시절 우리의 서비스 종료 프로세스가 현재 다른 서비스 종료 TF에도 메뉴얼처럼 사용되고 있다고 한다.)
어느 팀엔가로 발령이 날 것이라는 소문(아무도 명확하게 이야기해 주지 않았기에)은 들었지만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게 될지, 합류하게 된 팀에는 잘 적응할 수 있을지 등 새로운 변화를 앞둔 불안감은 나날이 커졌다. 그때 동호회 회장에게 메신저를 받았다. 신청했던 사내 여성 풋살 동호회에서 2기 멤버를 모집하게 되어 대기를 걸어 둔 분들부터 연락을 취하고 있다고. 얏호! 지금 기억에 거의 1초 만에 가입하고 싶습니다! 라는 답을 보냈던 것 같다. 그해 일어난 일들 중 가장 행복하고 짜릿한 순간이었다고 지금도 말하곤 한다. 동호회 모집 글을 접하게 된 건 우리 팀 멤버 대다수가 그렇듯 <골 때리는 그녀들> 프로그램을 통해 여자 축구에 대한 관심이 높아져 아지트(회사에서 사용하는 업무용 소셜 커뮤니티 서비스)에 검색을 하다 우연히 발견하게 된 것인데, ‘축구의 ㅊ도 몰라도 열정만 있으면 됩니다.’라는 문구에 질러 보자 생각했다. 생각이 많아지던 불안한 시기에 가진건 말 그대로 열정과 시간뿐이었던 난 뭐라도 해보자 싶었던 것이다. 이미 모집이 마감된 글이었음에도 추후 언제라도 충원하게 되면 연락 주십쇼! 라고 남겼던 기억이 난다. 회장의 연락을 받았던 시점에는 언제 신청을 했었는지 기억이 안 날 정도로 우울한 날들의 연속이었지만, 2022년의 마지막을 좋은 기억으로 마무리할 수 있게 해 준 터닝 포인트가 되어 주었다.
새로운 팀으로의 합류 그리고 새로운 동호회의 시작. 모든 것이 낯선 환경이라는 공통점이 있었지만 그 속에서 느껴지는 분위기는 사뭇 달랐다. 이미 온전했던 팀에 합류하게 된 나를 보는 저들의 어색하고 경계하는 듯한 눈빛. 평화를 깨 버린 사람이 된 것 같아 내가 어떤 사람인지 스스로 보여 주고 증명해야 팀원으로 받아들여질 것 같은 불공평함이 있었다. 비슷한 시기에 합류하게 된 팀카카오는 정반대의 분위기였다. 물론 어색함의 시간은 있었지만 함께 합류하게 된 ‘동기’가 있어서 주는 든든함과 같은 선상에서 시작한다는 공평함이 아주 큰 위로가 되었다. ‘이 사람들 내가 뭐라고 이렇게 반겨 주고 환영해 주는지’ 바닥으로 떨어져 가던 내 자존감을 구제해 준 원년 멤버들의 따뜻한 분위기에 마음속으로 여러 번 울컥했다.
재미없고 불안정한 일상에서 시작하게 된 풋살이라는 취미는 그만큼 소중했고, 잘하고 싶었고, 그렇기에 모든 게 다 좋았다. 영하의 날씨에 얼굴이 벌개지고 발가락 끝에 감각이 없어도 아이마냥 행복했고, 땀이 흥건한 채 판교역으로 돌아가는 그 십 분 사이에 오가는 피드백과 고민의 시간들은 회사에서의 고민보다 훨-씬 진심이었다. 모두 직장인이기에 저마다의 스트레스가 있을 텐데도 이렇게 소중한 시간을 내 취미 생활에 진심을 다하는 모습들이 감동스러울 때도 있어서 함께 모인 이 시간이 더 재밌고 행복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아무도 시킨 적 없는 나 혼자만의 칭찬 릴레이가 시작되었고, 어떤 순간에도 “잘했어! 좋았어! 나이스!”를 외치는 31번이 되어 갔다. 회사 일에 지친 날에도 훈련은 절대 사수했고, 서로에게 긍정의 에너지를 주고받으며 격려하는 시간 속에서 저 바닥에 있던 내 자존감도 어느새 회복해 갔다. 어쩌면 가장 자존감이 낮았던 시기에 시작하게 된 취미여서, 내가 듣고 싶은 말을 우리 멤버들에게 많이 해 줬던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 당시 나는 열정을 쏟아부을 곳이 필요했고, 그곳이 다행히도 팀카카오라서 좋았다.
돌이켜 보면 반년의 기다림 끝에 단순히 내 순번이 되어서 동호회에 들어가게 된 것이었지만 내 대기 번호가 더 늦었더라면, 회사 일이 바빠 동호회에 가입할 마음의 여유가 없었더라면, 아마도 그해 겨울은 누구보다 춥고 속상하게 마무리되지 않았을까. 다 이렇게 되려고 그랬나 보다- 하는 생각이 든다. 역시 인생은 타이밍이라 했던가!
톡(talk) 치면 골(goal)!
2022년 12월 새로운 멤버로 합류하게 되었고, 새해맞이 팀 훈련이 한창이던 즈음 여러 경기를 경험할 수 있었다. 볼 컨트롤부터 패스, 드리블 등 기본기도 없던 시절이었지만 나는 골대 근처에 서 있다 소위 ‘얻어걸린’ 골들이 있었다. 꽤 많았다. 지금 돌이켜 보면 키퍼부터 시작된 전개가 픽소 - 아라 - 피보로 연결되었고 우연히 내 발끝을 스쳐 골로 이어진 것이었지만, 몇 차례 터진 골과 카메라를 향한 골 세리머니에 맛을 들리며 내가 ‘에이스’가 된 느낌을 받았었다. 우리 동호회 슬로건인 ‘톡 치면 골!’이 나에게 하는 말인가 싶을 정도. 이게 내 발목을 잡을 줄은 몰랐다.
부지런히 아카데미 수업을 출석하고 팀 정기 훈련도 참여하면서 한창 기본기를 다지던 때, 경기에서 간간이 골을 넣는 경험을 하다 보니 내가 꽤 잘하는구나 착각하게 만든 것이다. 노력하는 시간과 실력은 비례한다는 룰이 풋살에도 적용되는 말이구나 싶었다. 하지만 올 것이 왔다. 자존감과 자신감이 한창 높아질 무렵이자 풋살을 시작한 지 약 일 년쯤 되던 시기에 플랩에서 주관하는 O-PTL(Office - Plab Team League) 대회에서 우리 팀은 우승을 했고, 나는 그날 밤 오열했다.
예선 리그 여섯 경기 중 나는 두 번의 선발, 한 번의 교체가 예정되어 있었지만 결과적으로 내 출전 시간은 십 분 남짓으로 마무리 되었다. 앞 세 번째 경기까지의 경기 결과로 인해 엔트리가 현장에서 실시간으로 바뀌었던 것. 승점을 가져다줄 최강 멤버로 엔트리가 전면 수정되었다. 열심히 맞춰 본 킥인, 코너킥 전술 하나라도 한번 성공해 보자 다짐했던 날이었건만 준비해 간 내 ‘연기’를 발휘할 시간은 없었다. 모든 경기를 할 때 구장과 친해지는 데 유독 시간이 좀 필요한 우리는 대회가 열릴 풋살 구장에 조금이라도 익숙해지고자 경기 일주일 전 그곳에서 시뮬레이션까지 하는 철저함까지 갖췄었는데! 저 구장 어떤 부분이 미끄러운지 나는 이미 아는데! 그걸 보여 줄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던 것이다. 당시 판교 여성 직장인 일등 풋살팀 타이틀을 가진 우리팀이었기에 대회에 임하는 멤버들의 마음은 어느 때보다 진지했고, 그때 당시 팀 코치도 우승을 위한 열정이 가득했다. “우리 팀이 좋은 결과를 내는 게 중요하지, 그게 팀 스포츠지!” 라고 생각했기에 이 모든 결정과 상황이 이해는 갔다. 그렇게 나는 대부분의 시간을 경기장 ‘밖’에서 목소리가 갈라지도록 우리 팀을 응원했다. (결국 우리 팀은 우승 타이틀을 유지할 수 있었고 나는 한 번의 선발 그리고 한 번의 교체로 경기를 마무리하였다.)
우승 메달을 목에 걸고 일등을 자축하는 뒤풀이가 끝난 후 하루 종일 쌓인 묵은때를 벗기러 샤워 부스에 들어간 순간, 눈물이 왈칵 쏟아져 내렸다. 나름 성장하고 있다 생각했던 내 실력을 하나도 발휘하지 못한 날, 우리 팀이 우승을 한 것이다. 대회 당일 아침 일찍 모여 철저히 준비했던 워밍업부터, 언제 교체 투입될지 모르니 콜 받으면 바로 튀어 나갈 수 있을 정도의 호흡을 유지하기 위해 우리 팀을 응원하다가도 경기장 밖에서 스프린트를 이어 가던 시간이 있었기에, 팀의 우승에 내가 기여한 바가 없다는 사실에 속상함이 가장 컸던 것 같다. 이날의 감정은 꼬리에 꼬리를 물어 풋살에 대한 자신감 하락으로 이어졌다. ‘무조건 선발’ 그룹은 아니지만 ‘교체 멤버 앞 순위’ 정도는 된다고 생각했던 내 자만감이 결국 나를 바닥으로 끌어내렸다. 벤치 멤버가 된 건가 싶은 생각이 처음으로 들었던 순간이다. 그날 이후 모든 것이 바뀌었다. 아카데미 수업을 들어도 나 혼자 제자리걸음인 것 같고, 멤버들을 향한 긍정 에너지를 주기엔 나조차도 긍정적이지 못했던 시기. 야근을 피해 훈련에 참석하려 애쓰던 노력과 의지도 한풀 꺾인 상태로, ‘톡 치면 골’이 되던 나는 그렇게 풋살과 잠시 멀어져 갔다.
나는야 여러분의 푸바오
팀카카오도 뉴 시즌을 맞이했다. 새로운 멤버들의 합류! 특히 서비스 종료 상황에서 헤어지게 된 동료이자, 지금 회사에서 처음 사귄 동갑 친구 율리아와 함께 풋살을 하게 되면서 그 어느 때보다도 긍정적인 자극을 많이 받고 있다. 업무에서 멀어지니 연락할 일도, 점심을 같이 먹는 일도 줄어들 수밖에 없었는데, 이제는 같이 업무하던 때보다 공통 관심사가 많아지면서 사무실보단 풋살장에서 얼굴 보는 날들이 늘어나게 되었다. 내가 팀카카오에 합류한 지 몇 개월 안 된 때였다. 한창 개인 SNS에 풋린이 생활을 마구 올리던 때에 “젤다, 나도 팀카카오 들어가고 싶어! 신입은 언제 받는대? 잘하는 사람도 많아 보이고 나도 팀카카오 유니폼 입고 뛰고 싶은데…” 또, O-PTL 우승 사진을 자랑하던 때에는 “와 미쳤다 팀카카오! 젤다 신입 언제 충원한대…? 주장한테 DM도 해 봤는데 아직 계획이 없다고는 하더라…” 그리고 그 후에도 “젤다! 나 훈련받는 팀이랑 팀카카오랑 친선이라도 한번…” 그랬다. 누군가에게는 부럽고 가입하고 싶은 동호회일 텐데. 잠시 멀어져 볼까 했던 고민은 율리아 그리고 새로운 멤버들의 합류와 함께 자연스레 접어 두게 되었다.
‘한 해 동안 밝은 에너지와 넘치는 열정으로 멤버들에게 행복을 주는 보물이었던…’
2023년 팀카카오 송년회에서 ‘푸바오상’ 그리고 ‘엔젤 보이스상’을 수상했다. 개인적으로는 팀 우승보다 값진 상으로 기억에 남는다. O-PTL 이후 소규모 레슨이라는 것도 시작했는데, ‘무조건 선발’ 그룹에 속하는 멤버들도 팀 훈련 외에 개인적으로 시간과 돈을 투자해 꾸준히 연습하고 있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된 것이다. 나는 그들만큼의 노력이나 하고 선발로 투입되길 바랐던 것인가 싶을 정도로 지금 생각하면 지난 날의 눈물이 조금 부끄러울 정도다. 일자 패스부터 드리블, 슈팅 자세까지 기본기부터 다시 다지고 있던 즈음, 한 해를 되돌아보는 자리에서 내가 추구했던 가치–행복 축구–와 가장 부합하는 상을 받게 된 것이다. 풋살에 대한 열정이 잠시 식었던 때라 조금 뜨끔하기도 했지만, 이 년 전 처음 팀카카오에 들어와 칭찬 릴레이를 이어 가던 그때의 그 마음가짐을 되새기게 된 순간이었다.
아직까지도 미숙한 드리블과 부정확한 패스가 나오긴 하지만 적어도 나는 요즘 행복하다. 개인 실력에 대한 욕심이나 출전에 대한 갈망은 이젠 조금 내려놓았다고 해야 할까. 주 1~2회 마음을 같이하는 사람들이 모여 땀 흘리고, 서로를 응원하고, 후련한 마음으로 집에 돌아가는 그 시간들에서 서로 좋은 에너지를 주고받으면 그걸로 됐다, 라는 생각이다. 이게 진정한 ‘행축’ 아닐까? 결혼식을 앞두고 이 주 전까지도 팀 훈련, 오 일 전까지도 개인 수업을 받을 정도로 다시 재미를 붙이게 되었다. 퇴근 후 풋살 수업 또는 친선 경기가 있는 날이면 운동 가방을 떡하니 회사 데스크에 올려 둔다. 나 오늘 칼-퇴 해야 하는 날임을 대놓고 알리는 전략적인 움직임이자, 누군가 퇴근 직전 내 자리에 업무 논의를 하러 온다면 ‘젤다 오늘 풋살 가는 날이구나. 내일 얘기하자’라는 말이 나오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난 오늘도 누군가에게 “잘했어! 좋았어! 나이스!”를 외치러 가야 하니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