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속엔 길이 있었을까?
처음에는 아무것도 몰랐다. 모르는 것이 조금만 부끄러운, 몰라도 조금은 용서가 되는 시절이 있었다.
물어보기도 하고 자료를 찾기도하고 직접 부딪혀 알아내기도하였고.
그렇게 반복되는 경험을 하면서 나만의 자료가 쌓이고 나만의 삶의 방식이 생겨났다.
이 방식들을 만들어 냄에 있어서는 과거의 현자들의 기록과 현대의 과학적인 연구 결론들, 그리고 나의 경험을 최대한 객관적으로 종합하여 누구보다도 정확한 나만의 해결책을 찾았다.( 최대한 객관적이라고 나 혼자 생각하고 , 누구보다도 정확하다고 나 혼자 생각하는 나만의 방법을 찾았다 라고 표현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
현재의 문제를 해결하기에 적합하며 앞으로의 불확실한 미래에 대해서 가장 안정적인 방법이라 생각되는 모든 요소를 고려하여 내린 결론들.
아주 합리적이고 이성적이며 누구도 반박할 수 없는 그런 나만의 방식들, 누구도 반론을 제기할 수 없는 그런 해결책을 삶의 여러 방면에서 부딪히는 모든 문제들에 대해 나만의 방식을 찾았다.
이렇게 완벽한 해답을 갖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같은 문제를 해결하는데 있어서 타인과의 충돌은 왜 반복해서 발생하는 것인지 이해할 수 없었다.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불안까지도 다 해결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 있는데 왜 계속 다른 방법을 고집하는 사람들이 있는 것인지 이해할 수 없었다.
이 문제를 어떻게 저런 식으로 해결하려고 하는가에 대한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사람들..
서른즈음에는 그 부딪힘도 그다지 힘들지 않았다.
네가 잘 몰라서 그러는거니 그런 것까지 내가 신경쓸 필요도 없으니 네가 기어코 그렇게 하겠다면 그리 들어주겠다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십년만 지나면 모든 걸 포용할 줄 아는 사람이 되어있을테니까.
마흔쯤되면 세상의 모든 부딪힘도 웃어넘길 수 있는 사람이 되는 줄 알았다. 막연히 마흔이 되면 그렇게 모두들 살아가는 줄 알았다.
마흔이 지나면서 몸이 아픈 곳이 하나씩 생기면서 나이드는게 쉽지 않은 일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십년이라는 세월이 지나갔음에도 여전히 부딪히고 있는 나를 날마다 느끼고 있었다.
대체 불혹이라는 나이가 왔건만 포용과 사랑은 왜 내게는 오지 않는 것인가.
부딪힘 자체의 괴로움보다는 내가 이것밖에 안되는 삶을 살아왔고 부족한 인간이라는 것에 화가 났다.
어떻게든 이 부딪힘을 해결해보려고 책을 읽었다. 모든 종류의 책을 빼놓지 않고 읽었다.
이렇게 근거가 확실하고 합리적인 방법을 받아들이지 않는 타인을 이해하기 위해서 철학을 읽고 공부했고 심리를 이해하기 위해서 심리서적을 읽었고 괴로운 내 성격을 받아들이기 위해서 MBTI 전문가 자격증까지 얻었다.
과거 현자들의 좋은 말씀들을 읽고 그것을 마음으로 받아들이면 순간 큰 깨달음이 왔다.
이제서야 저 사람들을 이해할 수 있겠구나, 그리고 왜 내가 이렇게 그들을 대할 수 밖에 없는지를 마침내 깨달았다. 처음 그런 느낌을 가졌을 때는 이제 모든 고통에서 벗어날 것이라는 환희에 차 있었다.
며칠 지나지 않아 그 깨달음이라 여겼던 진리는 다시 일상의 무뎌짐이 되었고 나는 또 다시 분노하고 있었다.
그럴수록 더 많은 책을 읽었다. 오직 내가 답을 찾을 수 있는 곳은 그 곳이라 생각했기에.
책 속에 모든 길이 있을 것이며 내가 아직 모르는 것이 많아서 그렇게 분노하고 있다고 생각했기에.
가끔씩 책 속에서 또 다른 해답을 찾아내고 환희를 느끼는 순간이 찾아왔다. 이제야 정말 고통에서 벗어났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어김없이 그 깨달음은 계속 미끄러짐을 반복했다.
깨달음이란 내 마음의 환상이었다.
이젠 오십하고도 몇 년이 더 지났다. 살아온 날보다 살아있을 날이 더 짧은 나이가 되었다.
여전히 책 속에서 답을 찾고 있다.
지금은..
화려한 말로 나의 지식을 뽐내고 치장할 수는 있지만
내 마음속에서 절절히 끓어오르는 감정으로 경험을 한 그 하나가 없다면 수없이 많은 지식을 쌓아도 아무런 소용이 없다는 것을 배우고 있다.
책 속에 나 있는 길은 머리로 찾을 수 있지만 그 길은 마음으로, 진실된 마음으로 걸어야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