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6. 히키코모리를 위한 집

실내 미니허브가든

by Mira

정년퇴직이든, 그전에 희망퇴직이든.

여유 있는 현금흐름을 만들기 위해 얼마나 많은 머니트리를 시도하고 시뮬레이션을 했는지 모른다.


AI가 성격이 좋으니 망정이지,

만약 내가 사람에게 똑같은 질문을 오만사천구백팔십 번쯤 던졌다면, 아마 나를 한 대 때렸을지도 모른다.


나는 불확실성에서 가능성을 찾는 모험을 계속했다.

동시에 정서적 준비를 할 필요가 있었다.

20년 가까이 이어 온 직장생활의 루틴이 사라진 내 일상은 과연 어떤 모습일까? 무기력해지거나 목적을 상실한 공허함에 사로잡힐까?


업무 지시나 요청을 받아 움직이던 내가, 과연 자율적으로 하고 싶은 일을 하는 루틴을 만들 수 있을까. 이 핑계 저 핑계 대면서 게으름을 피우지는 않을까? 과거에 연연하면서 앞으로 나가지 못하는 건 아닐까?


소속이 사라진다는 것은 단순히 명함이 없어지는 일이 아니다. 사회적 맥락에서 빠져나왔을 때 나는 어떤 느낌일까.

막연하고 두려울까?

자유롭고 신날까?


히키코모리 기질을 타고난 내가, 과연 집 밖으로 나가기는 할까? 결국 집 안에만 처박혀 폐인으로 살아가게 되는 건 아닐까?


사실 내가 혼자 상상한 내 인생의 가장 비극적인 시나리오는 바로 그것이었다. 요즘 사회 문제로 부각되는 히키코모리 청년들의 이야기를 들으면, 정말 남 이야기 같지 않다. 이불 밖을 무서워하는 게 나와 똑같다.


나는 나를 먹여 살려만 했으니까 이를 악물고 밖으로 나가 사람들을 상대하고, 집으로 돌아오면 그대로 뻗어버리는 생활을 무려 30년째 하고 있는 거다.


만약 먹고사는 문제가 그럭저럭 해결되었다면, 아마 나도 침대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그들과 똑같은 모습으로 늙어갔을지도 모른다. 나가고 싶어도 나가는 법을 잊은 채.


그런 나의 성향을 내가 제일 잘 알기에, 집에서도 즐거움을 찾을 수 있는 그림을 그려본다.


로즈메리, 민트, 파슬리, 라벤더 향이 번지는 집.

집 안에 작은 미니 가든을 만든다.


필요하다면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 집안 전체에 정원 콘셉트를 넣는 것도 괜찮겠다. 마치 더현대 서울의 실내 가든을 축소해 들여놓는 것처럼.


그런 공간에서 화분을 가꾸고 고양이와 뒹굴뒹굴한다면, 비록 히키코모리라고 해도 무기력하거나 스스로를 방치하는 상태가 아닌 집순이 모드가 되지 않을까.


적어도 내 집은 ‘폐인 동굴’이 아니라 ‘허브 가든이 되겠지.


또 하나의 로망은 바로 조명이다.

허먼 밀러부터 아르테미데까지, 내가 좋아하는 디자이너 조명을 미니 가든 속에 가로등처럼 심어 두고 싶다.


바로 그런 럭셔리 라이프와 취향의 추구를 위해서, 돈이 필요한 거다.


돈을 쥐고 아까워서 쓰지 못하는 부자는 내 컨셉이 아니다. 상속할 대상도 없으니, 이 돈은 다 쓰고 가야 한다. 내가 쓴 만큼만 내 돈이다.


도대체 하루에 얼마씩 써야 고민할 정도로,

50대에게 남은 시간은 많지 않다.


내가 좋아하는 공간, 내가 원하는 취향, 내가 행복해지는 루틴에 돈을 쓰는 것. 그게 내가 준비한 모든 시뮬레이션의 최종 시나리오다.


나의 취향 실험실 같은 집에서 나는 꽤 바쁠 것 같다.

답답해서 외출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 않을 만큼,

공간을 내 취향으로 가득 채워 나만의 정원을 만들고 싶다.


퇴사 시뮬레이션은 단순히 퇴직 후의 생활비 조달만의 문제가 아니다. 남은 생에 대한 새로운 접근이자 끝을 향해 가는 여정을 스스로 기획하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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