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7. 엄마를 위한 선물

부모수저론의 무용함

by Mira

청년문제를 다루는 프로그램을 보다 보면 불편해질 때가 있다. 한 인간이 온전히 자기만의 시간 속에서 고뇌하고 찾아야 하는 문제를, 마치 공공 시스템으로 해결해야 한다는 듯한 논조 때문이다.


사회가 구조적으로 접근해야 할 문제와, 인간이 내면에서 고뇌하고, 뚫고 일어서야 할 문제는 다르다.

내면의 힘을 기를 틈도 없이 문제 해결을 대신 찾아주겠다는 정책이 성공한 것을 나는 본 적이 없다.


나는 젊은이들을 위해 무언가를 해주겠다는 정치인을 의심하는 마음으로 본다. 과연 그가 청년들의 니즈를 제대로 알까? 본인의 경험으로 예단하고 있지는 않을까?


취업과 내 집 마련이 정말 청년들에게 최우선의 과제일까? 나는 잘 모르겠다.

나라면, 세상의 무한한 가능성과 동시에 존재에 대한 무서운 책임감을 먼저 알게 해주고 싶다.


필요한 것이 있으면 부모나 정부부터 바라보는 마음이 아니라, 운동화 단디 메고 밖으로 나가 스스로 찾는 자세 말이다.


먹고사는 일은 결코 가볍지 않다. 남의 돈을 받는 고통을 알아야 한다. 그래야 언젠가 내가 타인에게 월급을 주는 입장이 되었을 때, 역지사지할 줄 아는 인간이 된다.


청춘의 시기뿐 아니라, 인간의 전 생애가 눈물과 고통을 요구한다. 장년기에 접어들면 모든 것이 저절로 이루어질 것 같은가? 내 입에 들어가는 밥 한 숟가락이 다 부모의 눈물과 한숨으로 지어진 것이다.


‘인생은 부모빨’이라는 어떤 젊은이의 글을 읽은 적이 있다. 내가 아무리 노력해도 부모 잘 만난 친구 팔자를 따라갈 수 없다는, 나름 설득력 있는 주장이었다. 공감의 댓글도 엄청 많이 달렸다.


그러나 그 논리를 그대로 뒤집으면, ‘내가 지금 요 모양 요 꼴인 것은 전부 부모 탓’이라는 말이 된다.


너무 비겁하지 않은가.


가족이라면, 적어도 사회에서 휘두르는 잣대보다 더 크고 따뜻한 마음으로 서로를 아껴야 그 의미와 기능을 다하는 것이다. 어쩌면 그보다 더 날카롭고 독이 든 비수를 가족에게 휘두를까. 그런 생각에서 벗어나지 못하면, 점쟁이처럼 예언하는 게 결코 행복해질 수가 없다. 행복은 감사할 줄 아는 마음과 소중히 여기는 마음에서 자라난다.


날 때 붜 주어진 것은 당연한 것이고 부족한 것은 부모가 채워주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마음에서 결코 행복이 자라지 못한다.


작가 알랭 드 보통은 현대인의 불안이 이전 세대와는 다른 특징이 있다고 했다.


신분이 세습되던 시대에는 모두가 저마다의 한계를 분명히 인식하고 태어나 살다 죽었다.

아무리 노력해도 달라질 게 없었다.

부모가 대장간이면 나도 대장간에서 시작해 거기서 끝난다. 목동의 자식은 목동이 되고, 농사꾼의 자식은 땅에서 태어나 거기서 죽는다.


서로 비교할 필요도 없고, 운명을 개척해야 한다는 막중한 짐도 없었다. 그저 생긴 대로 살다 죽으면 그만이었다.


그런데 세습 제도가 폐지되고, 각자 노력한 만큼 ‘무엇인가’ 될 수 있는 시대가 열리자 상황은 달라졌다.

개인의 노력이 운명을 바꿀 수 있게 된 것이다.

다시 말해, 노력하지 않으면 국물도 없게 된 시대가 되어버린 것이다.


부모나 운명 뒤에 숨을 여지가 없다.

자신의 재능과 노력, 그리고 운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시대다. 인류는 세습을 거부하고 내 노력으로 운명에 베팅하는 선택을 한 것이다.



인간의 비극은 자기에게 유리한 것은 쉽게 잊고, 불리한 것·결핍된 것에만 천착한다는 데 있다.

나는 ‘부모수저론’이 그런 논리적 모순의 함정에 빠진 자의 어리석음이라고 생각한다.


가장 비겁한 태도는 내 인생의 문제에 대해 타인을 비난하거나 탓하는 것이다.

내가 아무리 아파도, 아무리 돈이 없어도 티 내지 않고 살았던 것은 마지막 자존심만은 지키고 싶었기 때문이다.


나는 그것을 DIGNITY라고 부른다.


사업 실패로 모든 걸 잃은 나의 부모는 수저로 치면 무엇일까?

1회용 포크쯤 되려나?


한국은 불과 80년 전만 해도 세계 최대 빈국, 전쟁의 잿더미였다.

그 조상들이 지금의 대한민국을 만들었다.

그 찢어지게 가난한 사람들이 도대체 무슨 일을 했길래?


경제적으로 완전히 실패한 내 부모를 보면서 나는 돈이 얼마나 중요한지 배웠다. 돈이 있고 없고에 따라 가까워지고 멀어지는 인간 군상을 보았다.


돈의 유무에 따라 중요한 것과 중요하지 않은 것들이 뒤바뀌며, 본질은 종종 가려지고 현상만 춤을 춘다.

그래서 나는 더욱 사물과 사건의 핵심을 보는 눈이 생겼다.


퇴직하게 되면 나는 우리 엄마에게 좋은 시계를 선물하고 싶다. 다이아몬드가 콕콕콕 박힌 롤렉스 시계를 엄마 손목에 채워드리는 장면을 상상해 본다.


그건 인생의 질곡을 현명하게, 때로는 바보같이 견뎌온 엄마에 대한 존경이자 애처로운 마음의 표현이다.

엄마의 눈물과 통곡과 한숨을 기억한다.

나는 그것들이 다이아몬드처럼 빛나도록 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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