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8. 경제적 자유

연봉 이상으로 성장한 머니트리

by Mira

자산이 얼마고, 월 현금 흐름이 얼마면 경제적 자유를 얻었다고 할 수 있을까?

사람마다 상황이 다르니, 딱 정해진 숫자는 없을 거다.


그래서 나는 **‘월급만큼의 현금 흐름이 이어지는 구조’**를 꿈꾸었다. 그리고 이제, 그 성과가 가시적으로 보이기 시작한다.


아직 몇 개의 허들을 넘어야 한다.

여전히 긴장되고 불안하다.

하지만 아무 준비도 되지 않은 상태에서 요즘 같은 분위기를 맞이했더라면 정말 숨이 막혔을 것이다.



아주 가까운 친구나 동료들에게도 이런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 내 예측이 틀릴 수도 있고, 자랑할 만한 성과도 아니었으니까.

처음 투자에 눈이 트였을 때는 복음을 전하는 마음으로 후배들에게 전했지만 아무도 같이 행동하지 않았다.


잠깐 귀를 기울이다가도 각자의 일상으로 돌아가면 그뿐이었다. 씨를 뿌린 농부의 마음처럼, 작은 씨앗을 뿌리고 숲을 상상하기도 했다. 그러나 예측하지 못한 날씨로 농사가 헛수고가 된 해도 있었다.


그 정도 실패를 했으면 포기할 만도 했지만, 나는 멈추지 않았다. 나는 항상 빠른 포기를 하는 편인데.

절약으로 손실을 메웠고, 천 원짜리 커피를 망설이던 그 여름의 공기를 아직도 생생히 기억한다.

그만큼 절박했다.



겉으론 평온해 보였던 시절에도 나는 알았다. 언제든 예고 없이 불행은 찾아올 수 있다는 것을.

회사의 시간은 유한했고, 승진의 벽은 단단히 막혀 있었다. 운이 좋아야 정년까지 버틸 수 있다는 사실도 알고 있었다.


모자란 업무성과에 스스로 위축되기도 했다. 30대엔 회사를 벗어나고 싶었지만, 40대가 되니 이직이 답이 아니라는 걸 알았다.

시키는 일을 잘하는 것만으로는 끝내 당해낼 수 없는 게임이었다.


그래서 나는 회사를 벗어날 다른 길을 찾았다.

투자를 통한 머니트리를 키우는 일.

엑셀도 못하고 산수도 약했지만,

손가락 발가락을 다 동원해서라도 내 인생을 플러스로 만들어야 했다.



내 뇌를 월급쟁이의 그것에서 투자자의 뇌로 바꾸기 위해 노력했다. 환율을 공부하고 금리가 오르고 내리는 이유, 감가상각을 이해했고, 소비는 통제하고 투자는 열어 두는 사고로 전환했다.


적금조차 귀찮아했던 내가

부동산, 연금, 미국 주식, 가상자산까지 차례대로 공부하고 투자했다. 적립식 투자는 시간과 복리의 마법에 힘을 받고 예상을 넘어서기 시작했다.


그런 성과가 쌓이자 점점 퇴직이 두렵지 않고, 오히려 기대가 된다. 회사에서 벗어나 나 하고 싶은 일만 하고 살아도 된다고 생각하면 가슴이 설렌다.


물론 수많은 퇴직 시뮬레이션을 했어도 여전히 불안은 남아 있다. 투자라는 건 늘 불확실성을 견디는 일이니까.



그런데 인생도 마찬가지더라.

변수는 랜덤으로 발생하고, 불행은 가장 견디기 힘든 순간에 더 나락으로 끌고 간다.


고정적인 현금 흐름이 큰 의지가 되지만, 그보다 더 큰 믿음은 돈의 흐름과 속성에 대한 이해가 생겼다는 것과 위기상황에서도 어느 정도 대응이 되는 시스템을 구축했다는 것이다.


인생에서 가장 큰 리스크는

‘내가 무엇을 모르고 사는지조차 모르고 사는 것’이다.

내 결핍을 알면 채우려는 노력이 생기지만,

결핍을 느끼지 못하면 노력할 동기조차 사라지니까.



퇴직을 앞두고 나는, 회사에서의 연봉이상 성장한 머니트리를 신기하고도 감사한 마음으로 바라본다.


그리고 태어난 지 무려 50년이 지나서야

비로소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사는 삶을 꿈꾼다.


어릴 적에는 부모가 시키는 공부와 학교생활을 했고,

어른이 되어서는 회사가 시키는 일만 하며 살았다.


그런데 지금은 다르다.

내가 하고 싶은 일들이 머릿속을 가득 채우고 있다.


그 일들을 통해 대단한 성과가 나지 않아도

누구도 뭐라 할 사람은 없다.


이제는 그저 내가 나를 인정해 주면 된다.

꼭 뭔가를 이루지 않아도 되는 나이에,

놀 듯 일하듯 즐기면서 살 수 있다.


그것이 바로 내가 그려온,

퇴직 후 삶의 디자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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