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품로고보다 티커
한창 투자에 몰입해 있던 시절,
그래도 트렌드를 사랑하니까, 내가 좋아하는 브랜드 마르지엘라의 플래그십 스토어에 갔다.
150만 원짜리 타비 구두를 신어보며 내 안의 나와 깊은 대화를 나눴다.
“타비 슈즈를 신는 즐거움 vs 월 투자금을 늘리는 리워드”
새로 오픈한 매장은 마르지엘라의 영혼이 가득했고, 거기 있는 모든 물건을 다 가져오고 싶었다.
나는 수십 켤레를 신어보다가.
그냥 나올 수는 없어서
작은 향수 하나만 계산하고 나왔다.
셀러의 눈빛이 아쉬움으로 번지는 표정이 아직도 기억난다.
명품 로고와 티커
전에는 명품 로고만 봐도 가슴이 콩닥콩닥 뛰었다.
Salvatore Frregamoo
의 붉은색과 흘려 쓴 듯한 필기체의 아우라!
그런데 어느새 주식 티커를 보면 가슴이 설렌다.
브랜드와 종목 선정
30대의 나, 마음은 온통 에르메스에 빠져 있었다.
샤넬도 아니고, 루이비통도 아니고.
가죽과 패브릭의 조화, 균형이 완벽한 에르백.
그게 나만의 잇백이었다.
20년 동안 주구장창 들어서, 지금은 상태가 조금 메롱해졌지만. 버킨백은 아름답긴 하지만 너무 무거워서 이제는 나의 위시리스트에서 사라졌다.
구찌나 루이비통에는 별로 끌리지 않았다.
대신 로로피아나의 절제, 샤넬의 걸크러쉬 정신, 프라다의 모던함이 매력적이었다.
언제나 내 마음의 탑티어는 에르메스와 로로피아나였다.
종목을 고르는 기준도 비슷하다.
내가 공부하고, 가방을 하나씩 모으듯
투자 종목을 하나씩 늘려가는 과정—
그게 짜릿하고 흥미롭다.
더 이상 신상 브랜드 가방에는 살짝 무심해졌다.
감가상각을 생각하면, 한번 더 생각하게 된다.
리서치의 즐거움
리서치 과정에서 내가 가장 즐기고, 또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건 혼자 상상해 보는 시간이다.
디자인할 때 키워드를 놓고 브레인스토밍 하듯, AI를 탑재한 ‘휴머노이드’라는 단어를 두고 관련 산업을 유추한다.
ETF부터 조심스럽게 접근하다가,
느낌이 오면 적립식으로 매수한다.
6개월 단위로 수익률을 체크한다.
아침에 일어나 샤워하고 양치질하듯,
투자 루틴도 기계적으로 반복한다.
꾸준한 투자 시간과 복리의 콜라보레이션
그런 시간이 1년, 2년을 지나
8년, 9년이 되었다.
산수저능아인 나의 포트폴리오에도
수익률이 1000%를 넘는 종목이 생겼다.
물론 “좀 더 많이 살 걸” 하고 후회한 적도 많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그게 결국, 나의 XXS 간 사이즈에 맞는 선택이었다는 걸.
투자금이 작아 팔자를 고칠 큰돈은 아니지만,
내 방식에 대한 자신감을 주는 건 분명하다.
나의 니즈는 단순하다.
가난으로 무력해진 노후에 대한 두려움을 해소하는 것.
외제차를 사고,
플렉스 하는 게 주식 투자의 목적은 아니다.
(솔직히 하고 싶다, 나도… 하지만)
그보다는,
혼자 늙어갈 내 노후가 찬란했으면 하는 욕망이 더 강하다.
마르지엘라도 좋지만,
투자는 더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