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nglishman in New York
아주 어릴 때부터 나에게는 혼자 앓는 두려움이 있었다. 학교 생활도 이렇게 힘든데, 사회생활을 할 수 있을까? 회사라는 곳에서 잘 적응하며 살 수 있을까?
나의 디폴트 감정은 언제나 비슷했다.
이 세상은 낯설고, 나는 어딘가에 잘못 착륙한 에일리언 같았다.
사람들의 사고방식,
사람을 대하는 매너,
즐겨하는 이야기—
그 모든 것들로부터 나는 멀리 있었다.
국민 예능도, 국민 MC도 왜 웃기는지 알지 못했다.
천만관객이 드는 영화를 영화관에서 본 적도 없고, 아카데미의 영광에 빛나는 영화도 내 취향이 아니면, 안 본다. 연예인의 연애뿐 아니라 남의 연애 이야기에도 전혀 관심이 없다.
그러니 이런 주제로 나누는 스몰토크에서 나는 언제나 할 말이 없다
그래서 어려서부터 고민이 많았다.
스팅의 노래 〈Englishman in New York〉처럼
나는 언제나 낯선 곳의 이방인 같았다.
그러니 과연 내가 경제력을 갖춰 부모님으로부터 독립할 수 있을까? 사회에서 내 책상을 찾고, 밥벌이를 제대로 할 수 있을까?
혹시 이대로 침대 밖으로 나가지 못하고,
영영 히키코모리로 남는 건 아닐까?
이런 걱정이 코끼리처럼 나를 짓눌렀다.
그 걱정이 무색하게,
지금 나는 54세 디자이너.
30년 차 직장인으로 살고 있다.
내 책상도 찾았고, 밥벌이도 한다.
승진은 못 했지만,
아직도 현역으로 일하고 있다는 것이
가끔은, 꽤 좋다.
나는 돈과 경제 감각이 있는 사람들의 눈빛을 좋아한다. 날카롭고, 숙고하는 그 표정에는 탐욕의 감정과 계산기가 착착 돌아가는 소리가 묻어난다.
남자든 여자든,
나이가 많든 적든,
스스로를 경제적으로 책임질 수 있을 때
비로소 어른이 된다.
그에게는 어린아이 같은 칭얼거림도,
자신 없어하는 수줍음도 들어설 틈이 없다.
왜냐하면 사회에서 돈을 번다는 건,
초원에서 사냥을 하는 사자의 심정으로 달리는 일이기 때문이다.
우유부단하게 망설이면 사냥감을 놓치고
우물쭈물하다가 내가 먹힌다.
그런 정글 속에서
아직 죽지 않고 살아남은 나.
약간의 프라이드를
가져도 괜찮지 않을까.
나는 여전히 이방인의 무드로 살아간다.
사람들이 거부감 없이 받아들이는 관습과 ‘국민** ’ 같은 것들에 여전히 관심이 없다.
그래도
세금도 항상 잘 내고,
대출을 연체한 적도 없다.
나는 투자를 통해 세상을 배우면서 분주하게 움직인다. 그러다가도 여전히 히키코모리처럼
혼자 깊은 내면의 세계로 가라앉기도 한다.
나는 국적 없는 이방인 같지만—
나름 착실한 잉글리쉬 맨 인 뉴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