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핍과 가난, 두려움
우울증
삶에 대한 의욕이 바닥을 치고, 기대하거나 바랄 게 하나도 없는 미래를 설정하고 살아가는 일은 고역이다.
깊은 우울증, 대인기피증, 불면증이 나의 히키코모리 기질을 더 강화시켰다.
침대에서조차 움직이기 싫었다.
왼쪽으로 누워있다가 다시 오른쪽으로 돌아눕는 것조차 귀찮았다.
화장실은 말할 것도 없고.
어느 겨울,
증세가 더 심해져 눈에 보이는 <정신과>에 무작정 들어갔다. 정신이 찢어지는 기분이었다.
인포메이션 데스크 직원은 냉담했다.
앞으로 3개월까지 예약이 다 찼다고 했다.
“그럼, 저처럼 증세가 갑자기 심해지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응급실로 가야죠.”
떠오르는 지난 일들은 심장을 후벼 파는 후회로 다가왔다. 현재는 간신히 벼랑 끝에 매달려 있듯 위태롭게만 느껴졌다. 미래는 검고 거대한 폭풍우가 몰려올 것처럼 불안하기만 했다.
남편도 없고 자식도 없는데,
내가 굳이 살아가야 하는 이유가 뭘까?
늦은 밤, 엄마가 벽에 머리를 짓이기며 통곡하는 소리.
팔십이 넘은 노부부가 서로에게 악다구니를 퍼붓고 발길질을 하는 걸 뜯어말리는 새벽.
출근하는 아침.
전철역까지 10분 거리—나는 3분 걷다가 쉬고, 2분 걷다가 주저앉았다.
하얀 고요가 깔린 사무실.
동료들을 돌아본다.
모두가 멀쩡해 보인다.
나의 내면은 지옥 속, 피 흘리는 검은 짐승처럼 울부짖고 있었다.
아무도 나에게 말을 걸지 않기를 바랐다.
전화도 오지 않기를.
그저 하루가 조용히 흘러가기를 바랐다.
정신과치료
나는 혼란스러웠다.
결핍에만 집중해서 우울한 건지,
우울하기 때문에 결핍만 바라보는 건지 알 수 없었다.
정신과 약을 먹고 상담을 받아도 3년 가까이 제자리걸음. 잠깐 좋아졌다가도, 맑은 하늘에 갑자기 몰려온 먹구름처럼 한없이 가라앉았다.
집중 상담을 받다가 지쳐서 중단했다.
닥터는 마지막에 이렇게 말했다.
“내면을 바라보고, 자신을 이해할 힘이 당신에게 있습니다.”
그런가? 나는 아무것도 하기 싫은데.
나의 내면에 집중하고, 왜 내가 나에게 치명적인 상처가 될 줄 알면서도 같은 일을 반복하는지, 나는 내가 왜 이렇게 싫은지에 대해 주로 이야기했다.
나를 불편하게 하는 것 이면의 어떤 이유.
나를 웃게 하거나 힘이 나게 하는 것의 의미.
꿈에 서 겪은 황당하고 스토리가 깊은 내면의 죄책감을 어떻게 반영하는지.
상담을 하면서도 나는 닥터가 나에게 흥미를 잃거나 지루해할까 걱정했다. 가장 적확한 표현으로 내 마음의 상태를 전하려고 했다. 마치 사건을 의뢰하는 것처럼, 검사가(닥터) 범인(우울증)을 빨리 잡기를 바랐다.
상담은 중단했지만, 스스로에 대한 질문은 멈추지 않았다.
지난 일?
후회하면서 거기에만 매달려 남은 시간을 다 보낼 건가.
미래?
그래, 얼마나 두렵고 무서운 미래가 기다리고 있는지 한번 보자.
현재?
나는 수입과 지출을 살피고 엑셀에 정리했다.
부정적인 감정이 차오르면 이건 감정일 뿐 실제가 아니라는 걸 기억하려고 했다.
퇴직하면 뭘 할 수 있을까?
아마도 침대에 쑤셔 박혀 하루를 보낼지도 모른다.
나의 결핍과 나의 항변은 서로 무섭게 쏘아대며 밤낮으로 싸웠다. 수면제를 먹어도 잠들기 힘들었다.
간신히 잠들어도 스릴러와 호러가 뒤섞인 꿈 속에서 진땀을 흘렸다.
생각의 전환
그러던 어느 날부터, 생각의 방향이 조금씩 달라졌다.
결핍에만 함몰되지 말자. 내가 가진 것을 최대한 활용할 방법을 찾아보자.
노트에 적고, AI와 시뮬레이션하고, 할 수 없는 건 내려놓았다. 할 수 없는 걸 하려는 마음을 내려놓고 할 수 있는 것에 집중해 보기로 했다.
마치 기획안을 짜듯, 반기별 목표와 액션플랜을 세밀하게 적었다.
희망사항을 문자로 써두고, 매일 읽었다.
그 작은 반복만으로도 앞으로 나아가는 기분이 들었다.
10년쯤 지나니, 가시적인 성과가 하나둘 보였다.
어떤 건 기대에 못 미쳤지만, 어떤 건 기대 이상이었다.
후회와 아쉬움, 자기 비하의 감정을 흘려보내고,
기대와 격려, 자기 수용의 감정에 더 집중했다.
나의 결핍
나는 절대적 빈곤 상태에 대한 두려움이 있다.
노부모를 끝까지 책임지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공포도 있다.
그 결핍과 가난, 두려움이
나를 성장시켰다.
퇴직 후를 더욱 꿈꾸도록, 나를 끝내 몰아붙였다.
나를 지옥으로 끌고 가던 것이 이제는 나만의 세계를 짓는 에너지가 되었다.
나는 이제 그 세계를 디자인하고, 매뉴얼을 설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