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ORK]W129. 자기 앞의 길

어마무시한 야망

by Mira

나에게 글을 쓴다는 건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방식이었다.


특히 회사에서 잘 이해되지 않는 상황,

억울하고 슬픈 일,

내 행동과 이유, 잘못과 변명,

원망과 분노까지—

모두 글에 쏟아냈다.


그게 커피를 마시거나 담배를 피우는 것보다

훨씬 더 선명한 탈출구였다.


그렇게 쓴 글이 무려 20년치다.

하지만 내 블로그엔 아무도 오지 않았다.

내 글에 공감하는 사람이 이렇게 없다니!

놀랍지도 않았다.


오히려 고요한 장소에 글을 남기는 게 더 좋았다.

홍보도, 해시태그도 전혀 없는

공개적이면서도 지극히 사적인 공간.


무작정 쏟아내던 글을 쓰다가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준비하는 퇴직 과정을 기록해 보면 어떨까?”


그렇게 메뉴를 만들고

조금씩 글을 쌓아갔다.


쌓이다 보니,

이걸 나만의 콘텐츠로 만들어도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독자들을 후킹 할 만한 제목을 고민하다가

누구나 원하는 것을 떠올렸다.


바로,

〈출근 없어도 월급이 있는 삶〉


그 제목으로 나는 브런치 작가가 되었다.

블로그와는 달리 라이크가 꾸준히 달렸다.


혼자 세운 목표, 100편.

업로드하는 동안은

독자의 무반응에 위축되거나

“내가 왜 이걸 하지?” 하는 회의감을 원천 차단했다.


그냥 아침에 일어나면 양치질하듯,

무조건 썼다.

막 썼다.


90편이 넘어가자, 이 원고가 바로 내 퇴직 생활을 위한 디자인이라는 걸 알았다.

그래서 중간에 제목을

〈Design for Retirement〉 로 바꿨다.


원고의 흐름대로

퇴직 이미지가 선명해졌다.

이대로라면 퇴직 후의 공허함이나 허탈감,

소속 부재로 인한 고립감보다는—

새로운 일에 도전하는 설렘이

훨씬 더 압도적이다.


꼭 남들이 알아주는 결과로 이어지지 않아도 괜찮다.

이렇게 글을 쓰는 시간 자체가,

정말, 정말 좋다.


퇴직을 준비하는 30년 차 직장인의 이야기는

모두의 이야기인 동시에

오직 나만의 경험과 감각이 끌어낸 문장이다.


인터넷 검색하면 나오는 정보 요약은

나보다 잘하는 전문가들이 훨씬 많다.


하지만—

나만큼 절실하게,

애처롭게,

멍청하게 시행착오를 겪은 이야기는

아마 없을 것이다.


나는 돈과 인생에 대해, 우아하고 위트 있는 글을 쓰고 싶다. 고상한 이상가나 예술가들이 돈 이야기를 꺼리는 것과는 달리.


일상의 생활에서 철학의 용도와 의미를 부여한,

알랭 드 보통의 통찰과 표현력 그리고 유머.


가끔은 이런 생각을 한다.

이 주제를 보통이라면 어떻게 다루었을까?

하루키라면?

빌 브라이슨이라면?


나는 그들의 에세이를 읽으면서 정말 많이 웃었다.

아무리 심각한 문제도

그들의 언어에서는 웃음이 터져 나왔다.


나도 그런 글을 쓰고 싶다.

사람들을 웃게 하고 싶다.


그것이 내가 작가로서 품는 어마어마한 야망이다.


성공한 커리어나 소득으로

나를 증명하지 않아도 괜찮은 나이다.

그래서 한결 가벼운 마음.


비로소,

내가 가야 할 길 위에 서 있다는

안도감도 든다.


뒤돌아볼 것도 없고,

의심할 것도 없고,

대단한 기대도 없다.

그냥,

가보면 되는 길.

my life, my way

작가의 이전글[LIFE] L128. 극내향형대문자볼드 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