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레기차 피하다 똥차와 만남
1. 자기 인식
상담 프로그램을 보다 보면, 나는 내담자가 자기 이야기를 풀어내는 방식을 유심히 듣는다. 논리와 주장 속에 그 사람이 자신의 문제를 얼마나 직시하고 있는지가 드러난다. 거기서 ‘이 사람은 극복하겠구나’ 혹은 ‘아직은 좀 어렵겠구나’ 하는 감이 온다.
나도 정신과 상담을 받았다. 처음 보는 닥터에게 내 이야기를 털어놓는 건 쉽지 않았다. 나는 마치 수사를 의뢰하는 것처럼, 검사에게 범인을 잡아달라고 하는 심정으로 말을 꺼냈다. 육하원칙에 따라 최대한 객관적으로 정리해 전달하려 했다.
내 말소리를 내 귀로 들으면, 난처할 만큼 비논리적으로 느껴질 때도 있다. 논리가 비약하거나 엉뚱한 방향으로 흘러가기도 한다. 그럼에도 한 가지 중요한 열쇠는 ‘나에게 무언가 문제가 있다’는 인식이다. 문제의 원인을 외부에서만 찾지 않는 태도, 나 스스로를 관찰하려는 태도 말이다.
타인이나 환경 때문만은 아니다. 이 정도의 가족 문제나 직장 문제는 누구나 겪을 수 있지만, 번아웃이 오거나 출근 자체가 고통스러울 정도로 예민하게 반응하는 나는 건강하지 않다 — 그렇게 인정하는 순간이 첫걸음이었다.
남은 건 결국,
나를 쥐어뜯고 있는 나와 나 자신뿐.
2. 전조증상
놀라운 건, 많은 사람들이 선택을 하기 전에 이미 충분히 전조증상을 경험했다는 것이다. 상처를 준 대상이 누구든—가족이든, 배우자든, 연인이든—오래전부터 위험신호가 있었음에도 그를 선택한다.
연인 시절 폭력을 행사한 연인을 두고 ‘결혼하면 변하겠지’라는 희망으로 결혼을 택한 여자. 충분히 다른 선택을 할 여지가 있었음에도 스스로 구렁텅이로 걸어 들어간다. 그리고 대부분 그 이유를 ‘사랑’이라고 한다. 목숨의 위협당할 정도의 폭력을 겪고도.
이 과정에서 반복되는 자기 합리화의 언어가 등장한다. “이번만 참자”, “이번은 그냥 넘어가자”, “내가 더 잘하면 달라질 거야” 같은.
그것은 경고음을 잠재우는 진정제가 되어, 작은 신호들을 무시하게 만든다. 진짜 문제는 회피하고 그림자와 사투를 벌인다.
3. 이기적 유전자의 비이기적 선택
하나의 불행에서 벗어나려다 또 다른 불행으로 달려가고, 그 끝에서 파멸을 맞이하는 비극은 고전 소설의 중요한 모티프이기도 하다. 현대의 상담프로그램에 나오는 거의 모든 이야기들이 그리스 신화의 플롯과 다르지 않다.
나는 그 심리적 요인에 주목한다.
그럴 만한 가치도 없는 대상에게 끊임없이 애정을 갈구하고, 그것이 충족되지 않았을 때 분노하거나 절망한다. 단순한 집착일까?
진화적으로 보면 인간은 생존에 유리한 선택을 하도록 설계되어 왔다. 그런데도 왜 자기 파괴적 길을 택하는가? 여기에는 몇 가지 심리적 설명이 겹친다.
• 반복강박(repetition compulsion) — 과거의 상처를 ‘해결하려는’ 마음으로 같은 상황을 재현하려 하는 경향.
• 불안형 애착(attachment insecurity) — 안정된 애착을 형성하지 못한 사람이 애정의 증거를 얻기 위해 위험한 관계를 붙잡는 경향.
• 자기 존중의 결핍 — 스스로를 존중하지 못하면, 타인의 부적절한 태도조차 ‘내가 감당해야 할 것’으로 받아들이게 된다.
예를 들면, 가정을 돌보지 않고 경제적으로도 무책임한 남편과 여러 아이를 낳으며 삶을 이어가는 여자의 경우, 혹은 자신의 가치를 존중하지 못하고 계속 불평하는 아내에게 매달리는 남자의 경우, 단순한 ‘사랑’ 이상의 복잡한 결핍과 학습된 패턴이 작동하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 이것은 사랑이 아니다. 자기 파괴일 뿐이다.
나를 파괴하는 것에는 그 어떤 의미도 두지 않아야 한다.
4. 빌런은 누구?
문제의 원인이 모두 타인이나 외부에 있다고 믿는 경우가 있다. “회사만 그만두면, 상대가 나를 사랑해주기만 하면, 그 환경에서 벗어나기만 하면…” 이런 자기 주문 같은 논리는 대개 또 다른 불행으로 이어진다. 거의 과학의 법칙처럼.
쓰레기차를 피하려다 똥차를 만난다는 속담이 딱 그런 상황을 묘사한다. 불행의 대상만 바뀌었을 뿐, 내 안의 문제는 고스란히 남아 있기 때문이다.
‘지 팔짜 지가 꼰다’는 말은, 결국 불행한 결과가 뻔한 선택을 반복하는 인간의 아이러니를 웃프게 표현한 것이다. 나 역시 오랜 우울과 번아웃을 겪으며 깨달았다. 내 인생의 진짜 빌런은 타인이 아니라 나 자신이었다.
나는 나를 부정하고 끊임없이 몰아붙이며 우울과 불안을 키웠다. 번아웃 한가운데서, 존재 가치를 부정하고 질책하던 목소리가 다름 아닌 내 안에서 나온다는 사실을 마주했다. 그 인식은 고통스럽지만 결정적이었다.
불행을 멈추는 시작점은 외부가 아니라, 나 자신을 직면하는 데 있다. 거기서부터 내 팔자를 내가 다시 펼칠 수 있다.
MANUAL : 불행의 반복을 멈춘다
1. 전조증상
나는 작은 불편함과 불안의 신호에 반응하기로 했다.
. “이번만 참자”라는 합리화를 경계했고, 무엇이 불편했는지 조용히 기록하는 습관을 만들었다.
감정을 언어로 담으면 문제가 더 선명히 보였다.
2. 자기 응시
스스로를 몰아세우는 목소리가 들릴 때, “지금 나는 나를 공격하고 있구나” 하고 알아차렸다. 그 인식만으로도 마음의 고리가 조금 느슨해졌다.
3. 새로운 경험
늘 반복하는 생활 패턴 대신 작은 변화를 시도했다. 카페에서 글을 쓰거나, 다른 길로 산책을 나서는 정도로 시작해도 좋다. 사소했지만, 익숙한 길에서 벗어나는 경험은 생각보다 큰 차이를 만들었다.
4. 상담과 글쓰기
혼자서는 자기 패턴을 보기 어려웠다. 그래서 믿을 만한 사람에게 내 이야기를 털어놓기도 했고, 글로 적어 스스로 객관화하기도 했다. 글쓰기는 내 마음을 거울에 비추는 가장 친밀한 시간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