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ime is Mine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골목길.
나는 이불을 펴고 잠자리에 든다.
동네를 떠돌던 강아지와 고양이들이 하나둘 내 품으로 파고든다.
거리에서 잠들지만,
따뜻하고 조용한 숨결이 가득하다.
꿈이었다.
나의 공포
나는 절대빈곤에 대한 포비아가 있다.
정말 땡전 한 푼 없이 거리를 떠도는 노숙자나 길고양이들에게서
내 공포를 본다.
아버지의 사업이 부도가 나고,
스무세 살의 나는 사회로 내던져졌다.
그때 깨달았다.
부모가 잃은 것은 단지 돈이 아니라,
내가 기댈 힘이 1도 남지 않았다는 걸.
돈은 곧 인격이었고,
힘이었고,
울타리였다.
관계의 핵심이자, 동기의 근원이기도 했다.
돈과 함께 사라지다
돈이 사라지자, 사람들도 사라졌다.
부모님의 곁을 떠나는 이들은
그냥 조용히 떠나지 않았다.
모욕을 남기고 갔다.
살가웠던 친척들은
우리가 혹시 도움이라도 청할까 봐
거리를 두었다.
퉁명스러운 말투와 싸늘한 눈빛.
“얘, 누가 보면 아직도 너 부잣집 딸인 줄 알겠다.”
스무 살 남짓한 내가 마주한 현실은 그랬다.
부모님은 돈만 잃은 게 아니라,
평생 쌓아온 거의 모든 것을 잃었다.
때로는 자식인 나조차
부모를 부양해야 한다는 책임감에
숨통이 졸리는 듯한 답답함을 느꼈다.
내 인생에 희망이 없다고 느낄 때는 더욱 그랬다.
하지만 내 인생에 로망이 생기고,
경제적으로 조금 안정되었다고 느낄 때는,
부모님이 오래오래 건강하게 함께 해주시길 소망한다.
돈으로 할 수 있는 일 중
제일 좋은 건 이런 거다.
미식가인 엄마와 맛있는 음식을
가격표 보지 않고 먹을 수 있을 때.
(물론, 엄마는 자꾸 가격을 물어보시지만.)
가난의 냉정한 얼굴
돈이 사라지면,
관계도, 존엄도, 온기도 함께 사라진다는 걸
나는 너무 일찍 배웠다.
사람들은 작은 이해관계 앞에서
얼마나 치졸하고 냉정해지는지도.
부모님을 돕는 일,
수억이 드는 것도 아니었다.
그동안 받아 간 것의 반의 반만 돌려줘도
충분했을 텐데.
아빠의 도움을 제일 많이 받았던 친척이
제일 먼저, 그리고 제일 차갑게 변하더라.
돈이 없어도 행복할 수 있다고 말하는 사람을 보면
굳이 반박하고 싶지는 않다.
다만 나는 바란다.
다시는 내 인생에서
경제적 문제로 인해 고립되거나
무시받는 일이 생기지 않기를.
그리고 혹시나,
그런 상황이 다시 찾아올지도 모른다는 공포는
꿈에서 저런 장면을 만든다.
그런 꿈으로 밤새 시달린 아침에 계좌를 확인한다.
확실한 금융치료가 된다.
경제적 자유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에서
전쟁의 잔혹함을 견딘 스칼렛이
레트 버틀러의 품에서 외친 대사를 기억하는가.
“나는 다시는 배고프지 않을 거야.”
나도 그 마음이었다.
나는 돈을 버는 것만큼
돈에 휘둘리고 싶지 않았다.
누군가 돈이 있다고 해서,
누군가 돈이 없다고 해서
달라지는 나 자신을
나는 견딜 수 없을 것이다.
돈은 자유를 위한 도구이지,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다.
돈이 목적이 되면
나는 또다시 돈의 노예가 된다.
회사 노예로 산 걸로도 충분하지 않나.
돈으로 사는 시간
돈을 벌어서 만든 경제적 자유는 정말 달콤하다.
하고 싶지 않은 일을 돈 때문에 억지로 하지 않아도 된다.
상대하고 싶지 않은 사람을,
생계 때문에 억지로 상대하지 않아도 된다.
누군가 정한 시간에,
누군가의 허락을 받아
그 자리에 앉아 있지 않아도 된다.
돈으로 사는 시간.
그것을 내 마음대로 쓸 수 있다는 건
정말 사치스럽고 화려한 일이다.
밀려드는 업무 속에서도 단 한 줄이라도
나의 문장을 쓰려고 시간을 쪼갰다.
주말의 가장 큰 행복은 하루 종일
피아노를 치듯 키보드를 두드리며
나만의 문장으로 원고를 완성하는 일이다.
돈과 시간
나는 요즘,
돈과 시간이 동시에 드는 일을 선택해야 하면
돈으로 시간을 산다.
시간이 드는 일은 가급적 미니멀하게 관리한다.
큰 의미 없이 멀리 가는 일,
하나마나한 대화로 끝나는 만남들은
모두 없앴다.
돈을 벌기 위해
남이 시키는 일을 하는 건 이제 졸업이다.
(특히 저녁 회식, 노노)
이제는 경제적 자유 시스템이
나를 먹여 살리고,
시간은 전부 내 것이 되었다.
나는 돈과 시간 중에,
시간이 더 탐난다.
돈으로 타인의 마음을 살 수는 없다.
하지만 내 마음이 쉴 시간을 살 수는 있다.
그리고 그 시간은, 아주 아주 럭셔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