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rt. Time
장수 리스크
불과 100년 전만 해도 인간의 평균수명은 40대였다.
이제는 100세 시대.
급속한 초고령 사회는 이전의 인간이라면
굳이 고민하지 않았을 문제를 산더미처럼 던져준다.
40대 후배들의 조부모는 거의 100세로 생존해 있다.
그 조부모를 보며 부모 세대를 보면,
“우리도 최소 120세까지는 살 것 같다”는 말이 나온다.
문제는 형제가 없거나 하나뿐인 세대.
자신의 노후도 막막한데 부모님까지 감당해야 할 상황이라면, 머리가 복잡해질 수밖에 없다.
정년은 60세,
40대 조기퇴직, 50대 희망퇴직은 흔한 일이다.
살아야 할 시간은 몇 배로 늘었지만
근로소득은 한정적이다.
이런 상황에서
“나는 월급쟁이니까, 장사하니까 투자는 몰라도 돼”라는 생각은 그 자체로 리스크다.
시간을 잃는 사람들
“시간이 없다.”
투자할 시간도, 운동할 시간도 없다.
하지만 어쩌면
본질적인 질문과 마주할 용기가 없는 건 아닐까?
“내가 알지 못하는 것“ 이 있다는 걸 인정하는 게 불편한 건 아닐까?
퇴준생의 정체성 훈련
40대 후반부터, 회사가 아닌 곳에 있으면 불편했다.
약속이 없는 주말이 길고 지루했다.
나 자신과 단둘이 있는 게 어색하고 싫었다.
사무실에 앉아야 비로소 마음이 편했다.
특별나게 애사심이 있어서가 아니라,
‘회사’라는 공간에서, ‘회사원’으로 존재하는 내가 익숙해졌기 때문이다.
그때부터 내 시간을 다루는 훈련을 시작했다.
긴 연휴나 주말이면 퇴직 상태라고 가정하고
나만의 루틴을 만들었다.
1. 아침에 일어나면 무조건 샤워하기.
출근이 없으면 점점 게을러진다.
긴 연휴 뒤에는 머리카락이 엉켜서 빗기도 귀찮아진다.
2. 집에 혼자 있어도 예쁜 옷 입기.
“집에서나 입지” 하는 옷은 모두 버렸다.
밖에 나가도 어색하지 않은 라운지룩으로,
나 스스로에게 단정한 기분을 준다.
3. 무조건 외출하기.
백화점이나 몰을 걷는 것도 운동이라 생각하고
일단 밖으로 나간다.
카페에서 공부하는 시간을 만들며
스스로 집중력을 훈련했다.
이런 연습을 5년 이상 하다 보니
이제는 어디서든 글을 쓰고 공부할 수 있다.
소음 속에서도 오히려 집중이 된다.
시간을 다루는 힘
내가 희망퇴직을 설레는 마음으로 기다리는 건,
‘경제적 자유’와 함께 ‘시간을 다루는 자유’를 얻었기 때문이다
몇 년의 연습 끝에 겨우 도달한 감각이다.
시간을 다룬다는 건
‘미라클 모닝’을 실천하며 1분을 쪼개 쓰는 게 아니다.
이제 나는 느긋하고 여유롭게 삶을 즐기고 싶다.
초조함과 인정 욕구로 버텼던 인생의 전반부는
그걸로 충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