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L206. 퇴직은 미니멀 프로젝트

Form Follows Function.

by Mira


디자인 미니멀리즘


화려한 바로크와 로코코 시대를 지나, 마침내 예술과 디자인은 미니멀리즘에 도달했다.

장식을 지우고 기능만 남긴 디자인. 마치 게르만 민족이 특허를 낸 듯한 단단한 질감의 세계.


독일 출신 디자이너들—디터 람스, 바우하우스, 르 코르뷔지에—가 이 양식을 구축했다.

그 흐름은 지금까지도 현대 디자인의 골격처럼 영향을 미친다.

스티브 잡스가 맥킨토시를 디자인할 때 디터 람스를 참고했다는 건 이미 유명한 이야기다.


북유럽 디자이너들의 존재감도 만만치 않다.

한국 신혼부부 집에 거의 기본 옵션처럼 달려 있는 루이스 폴센의 PH 5,

그리고 폴 헤닝센과 아르네 야콥센의 단정한 조명들.

미니멀하고 모던한 ‘북유럽 감성’의 상징들이다.


Form Follows Function.

형태는 기능을 따른다는 이 문장을, 요즘 나는 라이프스타일에 그대로 가져와 보고 있다.




미니멀리즘 라이프스타일


요즘 나는 거의 수도승처럼 산다.

무언가를 해야 한다는 압박 없이, 아침에 떠오르는 대로 움직인다.


주로 청소와 정리를 한다.

마일즈 데이비스를 크게 틀어놓고 물건을 비워내다 보면 묘한 쾌감이 있다.

몇 번이나 반복한 뒤 깨닫는다.

이 물건들을 사지 않고 S&P 500을 샀다면 어땠을까.

감가상각되는 물건에 왜 그토록 열정을 쏟았을까.


디자인이 ‘형태는 기능을 따른다’라면,

소비는 **‘감가상각을 따져라’**가 나의 결론이다.


배달이나 인스턴트식품도 줄였다. 짜고 달고, 쓰레기도 너무 많이 나온다.

적당한 밥과 나물, 단백질 한 가지면 충분하다.


생필품도 재고 1~2개면 된다.

당일 배송 시대에는 팬트리를 꽉 채워둘 이유가 없다.

물건이 자리를 점령하지 못하게 관리하면, 그 공간에 햇빛과 허브향, 요가 매트가 들어온다.




생각의 미니멀리즘


집에 쓰레기를 쌓아두는 사람들 얘기를 종종 본다.

나는 물건을 잘 버리니 집은 비워가는데,

정작 머릿속에는 왜 이렇게 많은 쓰레기가 쌓여 있을까.


답도 없는 생각에 지칠 때는 이렇게 한다.

실행이 필요한 생각은 즉시 처리한다.

그렇지 않은 생각은 머릿속 쓰레기통에 넣어두고 밤마다 비운다.


망설이거나 결정장애가 올 때 쓰는 나만의 전략도 있다.

반반 전략.


예를 들어, 여윳돈이 생겼을 때

쇼핑을 할까, 투자할까, 대출을 갚을까?

오래 고민하지 않는다.

1. 장바구니에서 가장 원하는 물건 하나만 산다

2. 일부는 투자한다

3. 일부는 대출 상환에 넣는다


투자가 루틴이 되면서 이 전략이 자연스럽게 자리 잡았다.

한정된 자원을 나누면 후회가 덜하다.




생활의 미니멀리즘


의미 없는 약속과 연락을 정리하자 시간이 남았다.

그 시간으로 충분히 쉬고, 몸을 돌보고, 마음을 돌본다.


여유가 생기니 오랫동안 미뤘던 독서도 다시 시작되었다.

좋아하는 작가의 책을 쌓아두고, 과자 먹듯 야금야금 읽는 기쁨.


외출하는 날엔 할 일을 몰아서 처리하고,

한 주에 2~3일은 완전히 비워둔다.

조급함도, 촉박한 일정’도 없다.

시간이 제 온도를 찾는 느낌이다.



집중력


미니멀한 생활을 만들고 나니,

정말 중요한 일에 매일 도달할 수 있는 집중력이 생겼다.


나는 그 시간에 종목을 공부하고, 리밸런싱을 통해

성장하는 자산과 월 현금 흐름을 선별한다.

시간에 쫓기지 않으니 머리는 맑고 마음은 평온하다.


예약이나 약속 시간도 원래 시간보다 20~30분 일찍 도착한다.

일찍 도착하면 나만의 시간이 생기니까.

스마트폰 하나면 어디든 나의 사무실이 된다



퇴직은 미니멀 프로젝트다.


퇴직을 준비하며 알게 된 사실.

내 삶을 가볍게 만드는 일은

돈보다, 명함보다, 계획보다 먼저였다.


미니멀리즘은 퇴직 이후의 기술이 아니라,

퇴직을 설계하는 기술이다.

그동안 ‘당연히’라고 믿어온 것들을 하나씩 꺼내

불필요한 것들을 걷어낸다.


버리고 비우는 일은,

결국 지키고 싶은 것들을 남기기 위한 기술이다.

좋은 디자인이 에센셜 한 기능과 감성만 남기듯

좋은 인생도 같은 원리로 완성된다.


내가 비우고 싶은 것은

혼란스러운 감정, 타인의 기준이다.

그 자리에

온전히 **나만의 성(城)**을 짓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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