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L232. 당근살림

당근으로 배우는 감가상각의 의미

by Mira

1. 살림살이는 당근에서


누군가에게 필요 없는 물건이

누군가에게 필요한 물건으로 바뀌는 일.

이 컨셉의 플랫폼은 당근이 최고.


평소 사고 싶었던 로망템을 주로 산다.

르쿠르제 무쇠팬에서 입지 않은 새 옷.

심지어 졸전으로 받은 꽃다발을 싸게 파는 경우도 있다.

좋아하는 발사믹 식초와 올리브오일을 집 앞까지 가져다주는 분도 있고.


똑같은 거래를 하는데, 사람들마다 다른 방식과 태도를 관찰하는 것도 재미있고.

로망템을 백화점에서 시원하게 사는 것도 재미지만,

당근으로 저렴하게 사면, 접근할 수 있는 아이템이 무궁구진.

살림살이의 스택트럼이 확장된다.



2. 당근러의 자세

나는 수납 도구를 사는 것보다

수납해야 할 물건을 줄이는 데 더 집중한다.

텅 빈 공간의 여백을 좋아한다.

정말 필요하거나 갖고 싶은 것은 대충 사지 않는다.

당근의 고정구매 아이템은 이렇다.


향초: 정가 대비 70% 저렴한 경우도 있다.

이솝 화장품: 허브 향이 좋아 만족도가 높다 : 백화점에서 하나 살 예산으로 당근에서는 2~3개 득템

불리 화장품 : 취향의 편차때문 인지, 선물로 받아서 포장도 뜯지 않은 새 제품이 많다.

핸드크림 : 손 케어에 진심이라 가방마다 핸드크림을 넣어 놓는다.

집에서도 손 닿는 자리마다 핸드크림이 있다. 핸드크림은 이솝이나 르라보, 그 외 브랜드도 언제나 오케이.

올리브 오일, 발사믹등 고정적인 소비가 높은 식재료


액세서리나 가전제품처럼 감가상각이 높은 아이템은 무조건 당근부터 본다.

다이슨도 여기서는 다이소 수준

(약간 과장하자면)

무조건 소비 욕망을 억누르지 않고

필요하고 갖고 싶은 걸 가성비 있게 사는 방식이 좋다.

약간의 탕진잼도 추구하고.



4. 감가상각의 감각


당근의 가격과 구매 회전율을 보면

요즘 소비자들이 선호하는 템이 어떤 건지 한눈에 알게 된다.

드부이에 프라이팬은 거의 품절이고

명품 화장품의 스페셜 에디션은 거의 현금이다.

빈티지 시계나 에르메스 액세서리도 환금성이 좋다.


옷은 아무리 명품이라도 감가상각이 가장 크다.

이건 것을 생활의 감각으로 익히면

내가 소비하는 물건의 감가상각을 본능적으로 파악할 수 있다.


도보로 20~30 분 걸리는 거리에서 직거래를 하면

매일 산책의 동기가 생겨서 좋다.

목적 없이 걷는 것도 좋지만,

예쁜 물건, 좋아하는 아이템을 찾아 출발하는 당근산책은

요즘 내가 가장 즐기는 루틴.



5. 휴먼 터치

당근러가 되어 짧게 스쳐 지나가는 사람들을 보면

가끔 이런 생각이 든다.

아, 사람들은 정말 아기자기하게 산다.

각자 자기만의 리듬으로,

별일 아닌 일에도 진심을 쓰면서 산다.

그게 괜히 흐뭇하다.


나는 차가 없어서 큰 물건이나 무거운 물건은 거래가 쉽지 않은데,

“제가 집 앞까지 갖다 드릴게요” 하고

별로 어렵지 않은 일이라는 듯이 도와주는 판매자도 많다.

이런 순간엔 인간에 대한 신뢰가 살짝 회복된다.


반면, 송장 번호 확인 후 송금하겠다고 하면

기온이 갑자기 영하 10도로 떨어지는 사람들도 있다.

그런 사람과는 두 번 이야기하지 않는다.

그냥 패스.

회사에서든 당근에서든

자기 손해 볼까 봐 안달하는 타입,

자기 입장만 최우선으로 두는 타입과는

내 인생의 1초도 쓰고 싶지 않다.


택배비 1,000~2,000원으로 실랑이하는 사람도 패스하거나

그냥 내가 내고 끝낸다.

그 2,000원 아끼자고 감정 소비하는 쪽이

훨씬 큰 손해다.


그리고 과학적으로 증명된 사실이 있는데,

그런 푼돈 아껴서 큰 부자 되는 사람 없다.


돈이라는 건

작은 데 집착해서 버는 게 아니라

작은 데서 감정 낭비를 줄이고

큰 데에 집중할 때 성장한다.


결국, 에너지는 쓰는 곳에 따라 인생의 모양을 바꾼다.

당근을 하다 보면 그게 더 잘 보인다.


당근은 중고 물건을 사고파는 플랫폼인 동시에

사람들이 서로의 일상에 아주 잠깐 등장했다가

사라지는 작은 무대 같은 매력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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