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L230. 쇼핑의 큐레이팅

옷장 속 장수템

by Mira


1.슬로우 샤핑


나는 물건을 살 때 남들이 보기엔 쉽게 사는 거 같지만,

정말 신중하게 리서치하고 마음에 쏙 드는 디자인을 발견할 때까지 몇 년이고 기다린다.


예를 들어 버터 케이스.

버터를 보관하는 케이스를 사는 데, 5년이 넘게 걸렸다.

색상과 디자인이 딱, 이거다!

하는 걸 찾지 못했다.


그러다가 자라홈에서 민트 그린의 버터 케이스 발견하고는

세일도 하지 않는 데 바로 구매.

무려 5년이 넘는 데이터가 축적되어 있기에, 그 가격과 디자인을 선택하는 데 망설임이 없었다.



2. 침대도 마찬가지


어쩌면 내 인생의 마지막 침대가 될지도 모르기에

머릿속 이미지와 딱 맞는 디자인을 찾았을 때 바로 구매.


헤드는 반드시 있어야 하는데

그 디자인이 너무 모던하거나 너무 클래식한 것 아니고

그렇다고 완전 빈티지 한 것도 아니고, 가죽이나 목재도 아니고...

마침내 약간 프렌치 무드가 깃든 원단 소재와 형태를 가진 침대를 운명처럼 만났다.

500만 원이나 하는 침대를 5분도 안돼서 결제해 버리니까,

판매 직원이 어리둥절.



3. 장수템들


옷장 속 장수 아이템들을 보면 평균 20~30년을 함께한 아이템이 많다.

30대 초반에 산 무스탕, 나의 유일한 무스탕,

카르티에 백, 에르메스 스카프, 루이뷔통 벨트와 타임의 코트들.


남들이 카르티에 시계에 열광할 때

나는 시계보다는 백과 지갑 같은 아이템에 더 매료되었다.

보석 전문 브랜드가 다루는 가죽 제품의 디자인은 보석처럼 빛났다.

아니, 보석을 착용하고 드는 장면을 디자이너가 상상하면서 만든 거 같았다.


카르티에 특유의 매트 블랙 레더나 버건디 컬러의 지갑은 30년 가까이 사용했다.

30년이 지나 재구매하려고 하니,

그 디자인은 단종인 데다가 가격은 무려 5배 이상 상승.

살 때는 통장에 지진이 날 정도로 큰 금액이었지만,

30년 동안 감가상각은 다 소진되었을 정도로 '뽕을 빼고도 남았다.'



4. 노 패스트 패션


쉽게 사서 싫증 나면 버리거나 팔아버리고 다시 사는 패스트 패션의 감각은 나와 맞지 않다.

신중, 신중하게 구매하고 나면, 거의 평생템이 된다.

특히 카르티에 백은 30대에 샀지만 앞으로 50년은 충분히 사용할 수 있다.

그 백 하나로 정장용 백에 대한 욕구는 다 채워졌다.

유행과 상관없는 나만의 시그니처 아이템으로.



요가 레깅스는 25년 전,

아디다스가 한국에 플래그 쉽 최초 오픈 할 때 사서 지금까지 잘 입고 있다.

레깅스 브랜드의 유행이 오고 가는 동안에도

나는 주구장창 아디다스 레깅스만 입었다.

그런 물건들에는 나의 스토리가 있고,

구매할 때 내 통장사정과 그날의 에피소드 같은 추억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이런 감정이 배어 있는 물건을 소중하게 아끼면서 사는 방식이 내가 생각하는 미니멀리즘 라이프.

비워 내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가장 좋은 것, 중요한 것을 걸러내는 것이 미니멀 라이프의 정수라고 생각한다.



5. 겨울 장수 아이템



겨울 코트 중에서 가장 오래된 것은 25년 된 돌체에 가바나 브라운 코트.

가장 최근에 산 것은 5년 전 타임 회색 더블 코트.

유행하는 핏이 아니라

내 몸에 딱 맞는 핏의 코트는 겨울 패션의 즐거움이다.

그리고 그 핏을 유지하기 위해

저절로 체중관리를 하게 된다.


25년 전에 산 에르메스 스카프 두 장.

블랙과 네이비로.

사용할 때마다, 그 색감과 디자인에 감탄하게 하는 아이템.



6. 럭셔리의 본질


파리에서 본 우아한 할머니들이 나달 나달 해진 에르백을 매고 있는 것을 보고

럭셔리의 본질이 무엇인지 홀로 깊이 생각했었다.


좋은 물건을 사서 손 때 뭍은 아이템을 내 것으로 만드는 것이 아닐까?

켈리백이 성공한 여자의 상징이지만 너무 무거워서 나는 노탱큐.

버건디 컬러 가죽으로 포인트가 들어간 캔버스 소재의 에르백은 나와 30대를 함께 했다.

가죽도 낡고 캔버스 천도 낡았지만,

가끔 30대의 열혈 워킹걸 느낌을 추억하면서 든다.



7. 인생템들


진주 목걸이

첫 월급을 받았을 때, 갤러리아 백화점에서 산 진주 목걸이.

지금은 사라진 덴마크 브랜드였는데

너무 오래돼서 진주가 다 벗겨졌지만, 나는 개의치 않는다.

시간이 만들어 낸 패턴이라고 생각한다.

돈 주고도 살 수없는.

그린 진주 반지,

좋아하는 작가가 디자인한 이 반지를 10년 전에 SNS로 처음 봤다.

대담하고 유니크한 디자인에 마음이 빼앗겼지만,

한참 긴축재정시절이라 마음에만 두고 있었다.

5년 전에 우연히 들어간 매장에서 그 반지를 발견하고는 바로 구매.

관에 들어갈 때까지 나에게 남을 반지.



8. 취향의 쇼핑, 간결한 인생


쇼핑의 기준을 유행이 아니라 자신의 취향을 기준으로 하면,

시간이 지날수록 시그니처 아이템이 된다.

그저 그런 옷을 매일 바꿔 입는 것보다

좋은 옷을 자주 입는 게 더 간지 난다.


특히 마흔이 넘은 여자에게 쇼핑은

양보다 질이다.


내가 그리는 옷장의 추구미는 옷으로 뒤 덮인 옷 무덤이 아니라

럭셔리 브랜드 매장처럼

정말 질 좋은 옷 몇 벌이 컬러별로 툭툭,

여유 있게 걸린 장면.


그 주위에 어울리는 슈즈와 모자, 벡트나 액세서리까지 준비되어 있는.

눈 감고 집어서 입어도

곧 나의 스타일링이 완성되는 그런 옷장.


내 인생도 그런 옷장 같으면 좋겠다.

불필요한 것 없이,

정확한 쓸모와 여유가 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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